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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미월 Aug 04. 2023

옥수수와 어머니

  미금역 전철역 입구에서는 옥수수 냄새가 난다. 서울 시내를 오갈 때면 신분당선을 환승하기 위해 그 전철역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전철역 입구에서 낯익은 아주머니가 오늘도 한결같이 옥수수를 팔고 계신다. 한여름 폭염은 양산을 쓰고 부채질을 계속해도 이마에 땀이 맺히고 등줄기에 땀이 흥건하게 흐른다. 아주머니는 이런 날씨에도 불통을 옆에 달고 산다. 큰 솥 가득 옥수수를 넣고 잘 쪄진 옥수수는 두세 개씩 비닐봉지에 담아서 손님의 손길을 기다린다. 노랗게 잘 쪄진 찰진 옥수수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옥수수를 파는 아주머니가 일하는 주변 바닥에는 옥수수 껍질이 국산 옥수수임을 알리듯 수북하게 널부러져 있다. 가끔 비둘기가 쿠션같은 옥수수 껍질 위에 앉았다 가곤 한다. 아주머니는 한겨울만 빼고는 가을  봄  여름 내내 그 자리를 지킨다. 남편으로 보이는 분이 가끔 오토바이에 옥수수자루를 싣고 와서 내려놓고 간다. 아주머니라고 시원한 곳에서 편하게 쉬고 싶지 않을까.

 멀리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마지막으로 집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타는 정류장에는 옥수수 냄새가 공기에 스며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자연스레 아주머니의 표정을 살피게 된다. 미소가 귀에 걸리고 목소리가 밝은 날엔 옥수수도 거의 다 팔려 갈 무렵이다. 그런 날에는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오가는 사람은 많아도 옥수수가 팔리지 않는 날엔 아주머니의 얼굴은 시무룩하고 어둡다. 깜부기가 난 옥수수처럼 안쓰럽다.

 하루는 옥수수를 몇 자루 사서 버스에 올랐다. 마침 마을버스에 승객이 두 세명 타서 버스 안이 한산했다. 나는 맨 뒷자리에 앉았다. 집에 갈 때까지 참질 못하고 비닐봉지를 만지작거리다 옥수수 한 자루를 꺼내 반으로 잘랐다. 차장 밖을 보면서 옥수수를 조심스레 먹으며 갔다. 옥수수자루에 몇 알 남은 옥수수를 보다가 불현듯 이가 듬성듬성 빠진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고혈압이 있어서 치아를 함부로 건드리거나 시술을 하기 힘드셨다. 이가 군데군데 빠진 입에서 나는 목소리는 이 빠진 피아노 건반이 내는 불완전한 소리처럼 안스러울 때가 많았다. 성긴 옥수수알 같은 이로 음식을 드시던 생전의 모습이 떠오른다. 

  양계장을 하면서 텃밭 농사까지 짓던 부모님의 손에서 일은 떨어질 줄 몰랐다. 살림까지 도맡아 하는 어머니는 더 일 속에 파묻혀 사셨다. 여름이면 햇볕이 따갑기 전 이른 아침부터 밭에 나가서 잡초를 뽑고 농작물을 돌보셨다. 하루 저녁 자고 일어나면 밭이랑마다 잡초가 적군이 공습하듯 떼를 지어 몰려왔다. 비교적 옥수수 농사는 잘되었다. 비바람과 구름이 몇 차례 지나간 뒤 옥수수는 어머니 키보다 크게 자랐다. 철없는 나는 친구들과 옥수수밭에서 숨바꼭질 놀이를 하곤 했다. 잘 여문 옥수수를 따다 옥수수를 삶는 동안, 다 익기도 전에 솥뚜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찔러 보다가 어머니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잘 익은 옥수수를 물기를 빼고 쟁반에 가득 담아서 멍석 깔린 마당에서 별을 보며 먹는 옥수수 맛은 최고의 간식이자 꿀맛이었다. 북두칠성을 찾으며 손가락으로 국자 모양을 따라 그리고 물고기자리, 염소자리 등 별자리를 마음대로 그리며 하늘에 뜬 동물을 그리며 상상이 부풀었다. 가끔 어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를 듣다가 어머니 무릎을 베고 스르륵 잠이 들었다. 은하수가 흐르는 밤하늘에 달은 왜 그렇게 우리 집 쟁반처럼 크게 빛다던지 .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에 가족과 함께한 잊혀지지 않는 따스한 기억이다. 


 옥수수를 먹고 하모니카 부는 흉내를 내며 깔깔거리던 여름날의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마을버스가 집 앞에 도착했다. 옥수수 한 자루가 그리운 어머니를 불러오고 고향의 오래전 풍경을 불러온다.

 전철역 입구에서 옥수수를 파는 아주머니 앞을 지나칠 때면 어머니의 힘든 시절이 떠올라서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질 않는다. 이게 다 식구들과 먹고살자고 고생하는 일인데. 아주머니의 모습에는 세상의 어머니의 모습이 담겨있다. 

  옥수수와 어머니는 닮았다. 듬성듬성 여물은 옥수수알은 어머니 치아와 닮았고 옥수수를 다 먹고 난 옥수수자루는 평생 일만 해온 엄마의 거친 손과 닮았다. 

 그런가 하면 옥수수 껍질은 우리가 생을 다하고 갈 때 입는 수의(壽衣)의 색과 닮았다. 우리가 이 세상을 다하고 하직할 때 입고가는 수의는 옥수수 알맹이를 쪄내고 벗겨진 잎처럼 옥수수 잎에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색이 담겨있다.

옥수수는 찰지고 알이 고른 옥수수보다는 울퉁불퉁한 옥수수가 좋다. 어머니가 환하게 웃을 때 보이던 덧니를 닮아서다. 

 옥수수 한 자루를 보면 어머니의 일생을 보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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