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권조 Apr 26. 2024

부산 가는 길 : 5일 차

음성 ▶ 괴산


4일 차까지는 아침에 일어나면 숙소에서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앞으로 어쩔 계획인지 동영상을 촬영했는데 5일 차부터는 그런 영상이 없었다.


하루에 한 마디, 한 문장 정도라도 기록했으면 좋았으리란 생각을 한다. 물론, 그랬더라면 여러 말 가운데 하나를 고르느라 힘을 꽤 썼을 터다.

멋? 패션? 이해할 수가 없네

기억하기로 손수건은 주로 목, 손목, 가방에 묶어 사용했다. 목에 묶을 때는 물에 적셔서 더위를 쫓을 때고, 손목에 묶어서는 걸으며 틈틈이 땀을 닦는 데 사용하다. 그리고 사진과 같이 가방에 묶었을 때에는 무슨 기능이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


뒤에서 차를 달리는 운전자의 시야에 잘 보이기 위함인가? 싶지만, 안전을 위해 차를 마주 보는 방향으로 걸으니 그럴 리는 없겠다. 아마 기분을 내기 위함이었지 않을까.


오전 10시를 조금 넘겨 숙소에서 나왔다.



육령교에서 바라본 금석저수지

사진의 장소를 찾기 위해 무극저수지와 가장자리를 따라 뻗은 음성로를 이리저리 로드뷰로 다니며 살폈으나 찾지 못했다.


사진에 주소나 상호 등이 표시되지 않았을 때엔 위치를 추적하는 일이 한껏 번거로워진다. 지도 어플에서 출발지와 목적지를 설정했을 때 안내되는 경로는 최단거리일 때가 많으나, 나는 그렇게까지 효율적으로 걷지 못했다.


끝내 저수지를 가로질러 가는 로드뷰에서 같은 풍경을 찾았다.

걸으며 촬영한 영상을 보니 종종 도로 위에서 분기점을 만나는 때가 있다. 운전을 하는 입장에서야 고속도로로 이어질 가능성을 점치겠으나, 당시 내게는 그런 개념이 부족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도 또는 지방도를 따라 쭉 걷던 중에 굽은 길과 곧게 난 길로 갈래가 나뉘면 우선 곧은길로 가는 일종의 습성을 가진 점이었다. 당연하게도 처음 여행을 떠났던 때에 얻은 경험이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상식이겠으나 내게는 누구나 아는 사실을 어렵게 체득하는 습성 또한 존재한다.



춘천역에서 내려 첫 도보여행을 떠난 때였다. 자동차 지도책을 챙겼고 기차역에서 관광지도도 확보했다. 그러나 국도, 지방도 등등 도로에 대한 개념이 없던 나는 멀쩡히 국도를 따라가다가 갈래길을 만났다.


아스팔트 포장이 된 길이 정면으로 쭉 뻗었고 옆으로 돌아들어가는 흙길이 있었다. 나는 지도와 길의 모양을 비교했으나 판단이 쉽지 않았다. 과연 무엇이 국도일까, 내가 다음 목적지로 가려면 어느 길을 가야 할까 고민하던 나는 놀랍게도 흙길을 걸었다.


걸을수록 길 좌우에 논밭이 나오고 작은 돌다리가 나왔으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크게 의식하지 못했다. 그러다 마을 주민과 눈이 마주쳤다. 아마 밭을 살피던 어르신으로 기억하는데, 나를 보고 꽤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주된 감정은 분명 경계심이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나, 당황한 나는 도망치듯 걸었고 자연스레 방향을 잃었다. 심지어 나중에는 길도 없는 산을 타고, 포도밭에 들어가 헤매기도 했다. 오르막을 걷다 보니 멀리 산을 뚫어 길을 낸 터널과 터널을 다니는 도로가 있었다. 물론, 고가도로였고 나는 땅에서부터 50미터까지 점프를 할 수 없었기에 발을 돌려야 했다.


마을 전체에 낯선 냄새가 퍼졌는지, 곳곳에서 소가 울고 개가 짖었다. 나를 쫓아 달리는 개도 있었으나, 다행히도 달아나는 외지인을 끝까지 추격하지는 않았다.


그 후로, 길을 보는 눈에 몇 가지 생각을 더하게 되었다.




그저 국도는 돈을 들여 포장을 하고, 마을 길은 그렇지 않다는 개념으로 이해할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인체 해부도를 단계별로 보았을 때에 마을 안에 난 길은 일종의 모세혈관이다. 분명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해부도는 보통 커다란 뼈만 표시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관광지도에 국도는 표시되어도 마을 길은 표시되기가 어렵다. 어쩌다 이야기가 이리로 샜을까? 이런 집중력이니 아마 당시에도 흙길을 골랐을 테다.



안보관광을 온 일행이 있었다

국도에서 자연스레 이어지는 감우재 전승기념관을 발견했다. '감우재'라는 무관이 관련되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감우재에서 '재'는 고개를 뜻했다. 6·25 전쟁 때 음성 지역에서의 승전을 기념하는 곳인 모양이다.


점심 즈음이었고, 기념관 화장실이 개방되어 있어서 세수를 하고 열을 식혔다.




쓰다 보니 또 길어진다. 그렇지만, 4일 차처럼 나누어 쓰다 보면 어느 세월에 부산에 도착하나 싶어 약간 개인 소장용 사진집을 만드는 기분을 내기로 했다.

운전 중에 읽을 정도의 동체시력이라면 특전부사관이 될 수 있다는 뜻일지도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는 내면의 의지
괴산 진입!
묘하게 이질적인 '준코 오시는 길'
인근에 소재한 육군학생군사학교의 행군로로 사용되는 모양
임꺽정로에 소재한 괴산군 농업기술센터, '활기차고 풍요로운 괴산건설' 문구는 이제 볼 수 없다.
오후 5시에 먹는 저녁

저녁식사를 하기에 이른 시간이었지만, 식당은 이용할 수 있을 때 이용하는 것이 좋다. 훈련소 입소 전에 마시지 않았던 탄산음료처럼 깊은 후회가 될 수 있다. 물론 평범하게 볶음밥을 좋아하기도 한다.


식당에는 나 말고 두 명의 손님이 더 있었다. 어깨너머로 듣기에, 둘 다 화물 운송을 하는 듯했다. 그런데 업계인들끼리 하는 나름의 괴담이 있는 모양이었다. 밤이 되면 초등학교 운동장의 조각상이 움직인다더라 하는 이야기와 비슷한 뉘앙스였다.


자세한 흐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약간의 상상을 더하면 대강은 이렇다.




화물기사 A 씨가 냉동식품 따위를 실어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달리던 중에 뭔가 이상해서 차를 멈추고 화물칸을 확인했는데, 냉동 기능에 문제가 생겼더랬다. 그런데 장치 고장을 고려하더라도 지나칠 정도의 악취가 나더란다.


무슨 일인가 싶어 화물을 하나씩 확인하다가, 여행용 캐리어 정도 크기의 스티로폼 상자를 발견했다. 그리고 악취의 정체를 확인하려는데 사람 손가락이 보였더란다.




하필이면, 저 부분을 쓰던 중에 일시정지했던 유튜브가 절로 재생되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여하간 결말이 분명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올해 납량특집은 자체적으로 마무리해도 되겠다.

이제 보니 이동경로와 위치를 특정할 만한 게 있으면 사진부터 찍은 모양
지금은 (구. 산막이시장)이라고 되어 있다.
의도한 것인지, 문을 열고 사진을 찍어서 얼굴이 비치지 않는다.

영빈장여관은 더 이상 지도에 검색되지 않아 폐업한 줄 알았더니, 영빈모텔이 되어 있었다. 오른쪽 사진은 왜 찍었는지 모르겠으나, 아마 판다 조형물이 신기했던 게 아닐까.


결과적으로, 해당 중국집 사진을 찍은 덕에 숙소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다. 중국집은 아직 영업 중이었고 숙소 옆에 위치했다. 로드뷰를 보면서 떠올린 것인데, 사진을 영빈장여관 입구 왼쪽에는 영빈장목욕탕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부산까지 정리가 마무리되면 개인적으로 사진첩을 하나 만드는 것도 좋겠다 생각이 든다. 그렇게 괴산에 도착하며 5일 차 마무리!

이전 06화 부산 가는 길 : 4일 차, 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