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 Mon Nov 17. 2021

On My Own feet

12 Women. 12 Pairs of shoes. 12 Stories.

슈 프로젝트 네 번째 이야기.

On My Own feet


우리는 아무 직업 없이 일 년을 버틸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여행 자금을 모았다.  7년 전 지금의 남자 친구를 스페인에서 처음 만나고 우리가 캐나다 캘거리 (Calgary)에서 한 시간 반 거리의 캔모어 (Canmore)로 이사했을 때, 그와의 미래에 대한 계획은 더욱 진지해졌다. 우리의 계획은 이사 후, 첫 반년은 캐네디언 록키와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 (BC)의 산과 절벽들을 등반하고 나머지 반년은 유럽으로 이주하여 내가 꿈꾸던 직업인 TV 리포터로 일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또한 딸 출산 이후, 지루해진 남자 친구와의 관계를 리프레시하고 로맨스를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는 완벽한 기회이기도 했고 작년 말, 갑자기 사랑하는 부모님 두 분을 떠나보낸 내가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로 삼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가 막 새 모험을 떠나려고 했을 때, 남자 친구는 평생 원했던 직장을 구했고 여행을 잠시 미루기로 하고 대신, 나는 그를 지원하고 나의 어린 딸을 돌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1년 후, 우리는 마침내 여행을 시작했지만, 한 달 후 다시 캔모어로 돌아와야만 했다.  가파른 절벽을 클라이밍 하는 도중 나는 넘어져 내 왼쪽 발목이 부러졌고  당장 급한 수술과 몇 개월간의 집중적인 물리치료가 필요했다.  이 시기를 놓친다면 심각한 상태인 내 발이 완전히 정상 회복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여행자금은 나의 치료에 쏟아부어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차디찬 첫 캐나다의 겨울을 나의 낡고 오래된 캠핑카에서 겨우 두 살이 막 지난 딸아이와, 너무 늙어빠져 대소변도 제대로 못 가리는 13살의 반려견 레니, 그리고 시큰둥해진 남자 친구와 함께 회복을 시작했다.  여름 동안에는 간단한 취사와 샤워도 밴에서 가능했지만, 겨울이 오면서 아는 지인의 집 근처에 주차하고 화장실과 부엌을 잠깐씩 빌리기도 했다. 영하 30도가 넘은 어느 겨울밤, 캠핑 밴의 수도 파이프가 얼어버렸고, 신고를 받고 나온 타운 공무원들이 친구 집 앞에 주차한 밴을 캠핑카 주차구역으로 이동시켜 버려 , 나는 높은 밴에서 땅으로 발을 디딜 때마다  미끄러운 얼음과 쌓인 눈 위에서 더 많은 뼈를 부러뜨릴 위험을 무릅썼다.


시간이 지나서 내가 목발 없이도 걸을 수 있었던 첫날, 딸아이의 새 양말을 사러 밴프의 메인 스트리트로 걸어갔을 때  비싸 보이는 신발 가게 앞으로 지나가면서 스웨이드로 싸여있고 투박하지만 부츠 안에 플리스가 들어있어 따뜻해 보이는 겨울 부츠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 부츠는 너무 아름다웠고 거의 빈털터리가 된 나에겐 그림의 떡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내 주변의 선량한 사마리아인 같던 지인 중 누군가 몰래 사서 내 밴에 넣어 놓았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시작되면서 딸과 나는 작은 원룸으로 이사했고, 내 남자 친구는 계속 밴에 머물렀다. 미리 차디차게 식어버린 우리의 별거는 너무  끔찍했고  내 친구 중 한 명은 이런 상황을 전쟁 도중 참호에 숨어 사는 것과 비교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는 신뢰하기 힘든 남자 친구에게 계속 의지하고 있었고 끝내 그의 차디찬 시선을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시간을 주기로 하고 결별했다. 나는 나만의 돈과 어린 딸을 돌볼 수 있는 직업이 몹시 필요했다. 말 그대로 나는 다시 맨몸으로 자립해야 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겪었던 모든 일들 —  캐나다로의 이민, 딸 출산과 싱글맘이 되는 것, 사랑하던 부모님을 잃은 것, 그리고 나의 심각한 발목 부상은 내가 옛사랑의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나를 내몰았다.

몇 주후, 다행히 나는 밴프 센터에서 무대 매니저 일자리를 구했다.  면접을 준비하면서 제일 먼저 절뚝거리지 않도록 척추 지압사 (chiropractor)를 찾아가서 뼈를 다시 맞춰야 했다. 그 끔찍한 고통을 견디고 나서 나는 처음으로 아름다운 새 부츠를 신었다. 싱글맘으로서 첫해를 보내는 동안 그 부츠는 나의 버팀목이었다.


만약 내가 돈이 더 있었다면, 그 부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드럼 키트를 들고, 피아노를 옮기고, 무대 위에서 쉴틈없이 움직일 동안 부츠는 내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게 해 주었다.  한걸음 한걸음 고통 속에서 걷는 법을 혼자 배우게 해 주었고 내가 다시 두 발로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일 년 내내 매일 똑같은 부츠를 신고 다녔는데 물리치료사 말로는 그게 내가  빨리 낫게 도와줬다고 했다. 그 부츠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혼자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을 내게 확인시켜 주었고 나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언젠가는 너무 낡고 헤져서 다른 부츠가 필요하겠지만, 오늘도 출근길엔 어김없이 그 부츠를 신고 간다. 그리고 이제는 좀 더 자라서 나의 든든한 조력자가 된 딸을 생각하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 스토리는 워크숍에 참가했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허락을 받고 번역해서 올리는 글입니다.

간단한 글쓴이의 소개를 남깁니다.


작가 소개 Nurdjana de Rijcke


누르드자나는 스페인 등반 여행에서 만난 캐네디언 남자친구와 함께 살기 위해 6년 전 캐나다로 이주했다. 네덜란드에서 저널리스트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던 그녀는 캐나다 록키산맥에서 더 느린 속도로 생활하는데 익숙해 지고있다. 가족으로는 어린 딸이 있고 다시 재결합한 남자친구의 둘째 아기를 임신 중이다.


"인생의 파란만장한 시간이 지난 , 남자친구와 나는 우리의 삶과 험난한 관계에 활력을 불어넣어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전보다   곤경에 처했다. 발목을 심하게 다치고 나서 혼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비밀스러운 선한 사마리아인의 도움으로 다시 자립할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전 04화 My Super-Hero Boot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