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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채굴기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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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송 Sep 17. 2024

깊이에 대한 단상

  깊이에 대한 단상

  



  눈이었다

  사람이 죽어도 고요했고 아우성은 허공의 그물에 걸렸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달라지는 색채, 또 하나의 면이었다  

   

  자전거를 탈까 KTX를 탈까 

    

  침묵을 찾아 나섰다 사막여우 한 마리가 모래언덕을 빠져나갔다 벌레들이 내 깊은 곳을 은밀히 기어다녔고 먼지를 뒤집어쓴 일기장이 깜박거렸다 일기장 끝에는 저물지 못한 한 사람이 딸려 나왔다

     

  끝을 본다는 것은 너머로 건너가는 것, 눈송이였다가 빗방울이었다가 발자국들이 선이 되어 깊이깊이 뿌리를 뻗는다 빗줄기 사이로 물고기가 내린다면 물의 무늬를 읽을 수 있을까 깊은 것은 또 다른 세계의 눈, 손바닥을 들여다보면 굵직한 운명과 갈라진 감정의 나뭇가지가 바람을 탄다 몸 깊이 박힌 무수한 뿌리들, 양팔을 벌리면 우주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   

  

  길게 뻗은 나뭇가지마다 날지 못한 새들을 키운다


  잘라내도 잘라내도 끝에 닿을 수 없는 길에서 눈은 한없이 깊어지고 오래 묵은 시간을 끌어올리면 잘 익은 오렌지 향이 난다    

  

  오늘은 어느 날의 마디인지

  눈 오는 사막 난 어디쯤에서 돌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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