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가 속도를 높일 때
강남대로를 건너는 새들은 어디로 가는지
저녁일까요 내일일까요
건너 건너편 혹시 찬송가인가요 불경일지도요
가는 길에 빵조각이라도 떨어뜨려 놓지 않으면 올 때는 어떻게 하죠 목소리가 내내 공중에 걸려 있겠죠 지금 함수를 만드는 거군요
무단 횡단할 때 무사히 건너려면 방정식의 해(解)는 몇 개나 될까요 노트북 펴 놓고 주가지수 맞추기를 하는 건가요 주문한 짜장면이 5분 내로 배달될 확률은 얼마나 될지 점심 내기할래요?
연필로 무수히 찍어도 비껴가는 점들
길거리에서 아는 사람을 만날 일은 웃고 있는 내 마음이 표정을 읽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대한이 막 지난 오늘의 볕은 또렷하지만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써도 여전히 겨드랑이 속으로 찬바람이 쉭쉭거리고 얼굴은 자꾸 숨네요
바람이 칼날이라면 햇살은 뜨거운 톱날이에요
바게트 빵집 창은 흑백 화면처럼 고요하고 주유소 앞엔 철가방 든 오토바이만 가득합니다 볼륨을 올려 주세요 부릉부릉 사건 파일은 있나요 기억 창고에서 꺼냈지만 이미 묻어 버린 우물입니다
당신의 빙벽 두께는 얼마나 되는지요 숭숭 뚫려 있습니다만 그럼 누구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 들여다볼 수 있단 말이지요
그림자 진 곳곳에 덮개처럼 앉은 딱지들
키보드가 속도를 높일 때마다
리셋증후군 날개들이 쭈뼛쭈뼛 돋아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