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채굴기 04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송 Sep 17. 2024

마분지

마분지



              

구기면 말의 콧김 소리가 난다

힘껏 달려온 뒤끝

비강에 비벼지는 거친 숨

     

종이 한 장은 들판의 일부분이다

살펴보면 억새풀이나 개양귀비

밀 싹들이 밀집되어 있다

마분지에다 자음과 모음을 파종하면

훗날 밀 싹 들쑤시고 억새풀과 개양귀비를

샅샅이 뒤져야 비로소 찾을 수 있다  

   

골똘하게 씹고 

또 씹은 뒤끝이야말로 한 줄의 문장이 되듯,

말이 여념 없이 되새김질한 배설로 

만들어진다는 마분지

그 옛날 어떤 그림에선

말똥 냄새가 나기도 했을 것이다 

    

고삐처럼 바투 잡은 글

안장처럼 온편한 글 

발고리처럼 중심 잡힌 글도 

다 마분지 배경에 누렇게 기록되어 있다    

 

말똥 속엔 마부의 땀 냄새나 휘갈기던 채찍의 각도

적당히 소화되다 만 건초들의 아우성과 

독기 어린 가시가 남아 있을지 모른다

그것들을 잘 걸러 내면 

바람이 헤집은 마분지 행간에도

배추흰나비 날아들 터     


편자를 박은 제목들이

책 표지마다 야무지게 매여 있다               

이전 03화 깊이에 대한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