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
C에게.
아침운동을 끝내고 근처에 장을 보러갔어. 네 방에는 조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우린 주로 외식을 하거나 배달음식을 시켜먹곤 했지. 지금 내 방도 그 때 너의 방과 닮아있어. 하지만 늘 사먹거나 배달을 시키기엔 돈이 많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자주 장을 봐. 사실 지겨워.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다가 이 구절에서 잠시 멈췄어. "이 드라마(<홈랜드>)의 주인공도 그렇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수용하는 사회라면, 드라마의 주인공은 조금은 행복했을지도 모르고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회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예술이 인간의 생존 방식이 된다. 고통이 없다면 종교와 예술은 없을 것이다." (정희진,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 그때의 네가 가장 좋아하던 대화 주제는 종교와 예술이었지. 나는 영화가 그저 상상일 뿐이라고 지루해했어. 너는 아주 어려운 책을 자주 읽었고 나는 교수님이 가르쳐주는 것만 잘 외웠지. 모두에게 예뻐보이려고 애쓰던 나와 달리 넌 누군가의 매력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어. 각자가 가진 고집스러운 모습에서 나오는 매력. 그러게, 나는 그때 심지어 고집조차 없었네. 흐리고 흐려서 어디든 섞여들고 싶어했었네.
네가 나와 비슷해지고 내가 너와 비슷해지려는 순간에 우린 멀어졌어. 너와 함께하며 너를 닮아가는 내 모습이 좋아지는데 너는 나를 닮으려 했거든. 나는 내가 싫어지는 바람에 너도 싫어졌나봐.
오늘 밤엔 어지러이 펼쳐진 책, 방 곳곳에 소복하게 쌓인 먼지, 아무렇게나 널린 옷들과 조금은 큼큼한 냄새가 나는 방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또 너를 떠올렸어. 그때의 너도 이렇게 외로웠구나. 좁은 방에서 새벽에 절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넌 어떤 생각을 했어? 혹시 언젠가 정돈된 방을 누군가와 나누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을까? 너는 그 긴 시간들을 주눅들지 않으려 얼마나 애썼을까. 그 과정에 마음을 다해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때의 나는 오롯하게 혼자인 너를 이해할 수 없었어.
이제야 네게 바랐던 것이 너의 끝없는 고통과 외로움이었다는 사실을 알아. 내가 서울에서 누군가와 함께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도.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려는 너를 속물이라고 원망하던 내가 가장 속물적인 사람이라는 것도 이제야 겨우 알아. 3년이 지난 지금에야, 너와 비슷한 삶을 경험을 해보고 나서야. 경험 바깥의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요즘에는 거의 매일 너를 떠올리며 그때의 너와 비슷한 삶을 살아. 밤에는 꼭 영화를 보고 어떤 날은 누군가와 한 마디도 나누지 않기도 해. 집 안에만 있는 게 답답해서 카페로 자주 나갔던 너처럼 나도 단골카페가 생겼어.
그런데 우리가 그때 나눴던 대화와 제법 비슷하다고 느껴질 만한 대화를 이제 아무랑도 할 수가 없어. 그래서 모든 말을 나누는 대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살아. 내 안에 어떤 것들이 자꾸 쌓여. 말할수록 외로워. 네가 단지 사랑이 고픈 어린 애라고 생각해서 미안해. 이 마음은 사랑을 갈구하거나 고독을 즐기는 것 모두 아닌데.
지금의 네가 그저 조금은 덜 외롭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