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exibility
2019년 초 파리 에펠탑 근처 식당에서 처음 본 사람과 나누었던 대화가 있었다. 우리는 그때 속이 울렁일 정도로 느끼한 양머리요리와 화이트 와인을 함께 먹으며 알지 못하는 서로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있었다. 그 사람은 아등바등 노력해서 무언가 이뤄내는 것보다 아무 어려움도 없던 것처럼 문득 나타나는 성공을 더 동경한다고 했다. 40만큼 하면 딱 40만큼 얻었던 나에게 잘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었지만, 나 역시 재능을 더 가치있는 것으로 여겨왔는지 모른다. 그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쩐지 그 말이 더 크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첫 학기 B는 질투의 대상이었다. 그는 눈에 띄게 깔끔한 발표를 했고, 교수님께서 요구하시는 범위를 한참 넘는 수준의 결과물을 보였다. 그의 지도교수가 도와주었기 때문이라고, 학부 전공이 같아서였기 때문이라고, 스윽-해도 꽤 괜찮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일거라고 맘대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다음 학기에 우린 우연한 기회로 가까워졌고, 하루는 정갈한 채식식당에서 저녁을 같이 먹게 되었다. 한 두 시간의 대화에서 나는 그를 질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지금까지 가까이에서 알아온 이들 중 가장 애쓰는 사람이었다. 잘하고 싶은 일을 잘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만 일상을 단단하게 지키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혹시 그에게 내가 알지 못하는 재능이 있다고 해도 상관없을 지경이었다. 무리하고 지치는 순간에도 어제 못한 일을 오늘은 해내겠다고 매일 다시 다짐했고, 힘이 완전히 소진되지 않도록 좋아하는 일들을 하는 것에도 부단히 애를 썼다. 요란하지 않은 그 성실함과 부지런함이 외유내강의 모습을 만든 것인가 생각했다. 똑같이 잘하고 싶은 마음에 비해 그렇게 최선을 다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쉽고 부끄러웠고, 아주 따뜻하고 신선한 이 음식을 나눠 먹는 이 사람과 더 가까워지고 싶어졌다. 그와 어울릴 수 있게 아주 애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B가 없었다면 오늘도 잘 마무리할 수 없었을 것이라 거의 확신한다. 우린 모든 것에 노오력만 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주변과 나를 지키면서도 최선을 다하고 싶은 일에 최고로 애를 쓰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 정도'만 하면 된다는 말에, '쉬면서 하라'는 말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찾기까지, 그 중요한 순간에 그를 만나게 된 것이 다행이고 고맙다. 나도 B처럼 이런 마음들을 부산하지 않게 표현하고 싶지만 어쩐지 자주 티가 났을지 모른다. 너 덕분에 아주 열심히 한 노력을 스스로도 귀하게 여기게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늘 이렇게 묻고 답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지? 나도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