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에 덧붙이는 헌시(獻詩)
라일락 꽃향기에 취한
그 미소에 다시 취한
수줍은 설렘이
고백.
마음 갈피로 햇살 스며온
그토록 찬란하던
봄.
아주 잠깐 동안만이
지나고.
떨어지는 라일락 꽃잎 사이로
붉어진 눈시울이 떨친 한 방울에
녹아 사라진 봄의 미소가
잠시 머물던 그 자리.
잎사귀 그늘 아래
그래도 사랑.
다시 라일락 꽃 기다린다.
인사동 파전집
막걸리 잔 부딪치며 함께 웃던
어리던 날이 언젠가 있었더라.
그날의 흑백사진 불사르고 돌아서는
발자국 끄트머리에
미처 지우지 못해 남긴
멜로디가
기억 가장자리에
끈질기게 붙었더라.
파전 부치는 기름 내음 타고
흐르던 그 노래.
그리움이 타다 남은 그을음이 그린
가슴속 오선지 위에서 숨 쉬다
눈송이 내려앉을 머리카락처럼
희미해질 또 다른 어느 날.
오래된 노래보다도
더 오랜 나날 지났을 언젠가 그날.
다시
우연의 장난으로
혹여 우리 마주친다면, 아무 말도 없이
다시
서로의 잔을 채우자.
결국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닌 흔적으로 남았으니.
부딪치지 못하여 스치다 만 인연도
인연이라.
다시 막걸리 잔 부딪치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 노래에
미소만 얹자.
잘게 부서져서라도
너에게 날아갈 수만 있다면.
바람 흩뜨림에
티끌로 조각나
어딘지 알지 못할 곳들로
나 산산이 사라진대도
그 한 조각만 부디
네게 닿을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
끝내 물거품 된대도
나
알지 못할 어느 땅 위에 내려
다시 피어나
다시 불어올 바람 날개 위 올라
다시 너를 향할 날을
다시
기다리리.
새벽 두 시, 편의점, 캔맥주.
비에 젖은 담배에 불을 붙이자
치지직 독한 타르향,
함께 타드는 것은 눈물 고인 심장.
계절이 남기는 아픔이
계절에 젖었던 환희를
무심히도 짓밟고 나면,
기억의 꼬리에 새겨진
향기는
계절에 스며 숨어 있다가
지구가 한 바퀴를 더 돌면
기다렸다는 듯이 또
계절의 냄새로 가슴을 후비겠지.
몽롱한 장마, 빗물 향기 사이로 번지는
네 머리카락 샴푸향.
떨쳐낼 수 없는 두 가지 향기를
떨치려, 타르향으로 덮어버리려
비에 젖은 담배에 또
불을 붙인다.
새벽 한 시 반
가로등 아래 숨죽이며 흩날리는 눈송이
얼어붙은 골목길
살며시 덮을 때
더 살포시 덮어온
입술, 따뜻함에...
멎어버린 숨과
멈춰버린 시간
...... 그리고 다시... 어느
새벽 한 시 반
가로등 불빛 적시며 흩뿌리는 빗줄기 속
벅찬 가슴 묵묵히 지켜보아온
골목길도 아파할 때
안녕, 잘 가... 마지막 함께 우산 속
입술, 따뜻한 건... 볼 타고 흐른 눈물...
멎어버린 숨이 기억할
영원으로 잠겨갈 그 시간들
그렇게 두 번 숨 막히던 순간을 남기고... 사랑은......
4월이니까.
하늘은 맑았다.
봄바람이 밀어주는 구름 미끄럼 타고
1년 중 가장 멋진 태양이 그 맑음 속 누벼 헤엄쳤다.
눈이 부셔서
어차피 눈물은 났을 것이다.
봄의 절정이 뭇 살아있는 것들의 탄성 즐기며
땅 위 모든 생명에게,
맘껏 그를 마시라 허락하던 날
어차피 눈물은 났을 것이다.
봄이 춤출 적에
나무 관(棺)을 살라먹는 불꽃도 덩달아 춤추던
봄날.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날이라서
어차피 눈물은 났을 것이다.
떠나보냄의 순간보다 더 아픈 것.
떠나보냄의 순간을 뒤로하고 떠나야만 한다는 것.
봄의 축제, 그 불꽃이 서쪽 하늘로 잦아드는
초저녁 집 앞 골목길.
무너져 내리는 가슴에 다시 폭우 쏟아질 적에도
끝내 비는 내리지 않았다.
돌아가는 뒷모습에 안녕!
듣지 못할 인사를 영원 속으로 목놓아 던진 그날.
그토록 찬란하던 하늘 아래,
그 사람, 멀리 하늘 소풍 가던 날.
어차피 눈물은 났을 것이다.
4월이니까.
신촌, 카페.
늘 우리 앉던 소파 옆으로 걸린
커다란 벽시계 나뭇결에는
진한 커피향 품고
네 웃음과 내 수줍음이 배었을 것.
머그잔이 피어내는 커피향
김 서린 웃음에
온 세상 새로 태어나 함께 웃었을 것.
널 만나러 바쁜 마음이 발걸음 종종
신촌역 계단 오를 때,
지상에 쏟아지던 그
눈물 나도록 화사한 햇살 맞던
너의 미소가
......
눈물이 되던 밤.
달빛은 눈치 없게도 영롱하던 밤.
널 두고 돌아서 내려온 신촌역 계단
모퉁이 돌아서 터진 흐느낌 삼킬 때
굳은 발걸음 떼는 신발 위로 떨어지는 눈물
이 순간이 제발 거짓말이기를...
신촌......
카페......
이제 홀로 앉은 그 소파 옆 벽
늘 우리 내려보던
벽시계 딸각거리는 초침이 말한다.
이제 다... 거짓말이 되어버린 그 시간들.
아니야. 그 흩어진 시간 그때는
거짓이 아니었다고.
너도 나도, 우리
거짓 아닌 무엇으로 남을 거라고.
걷고 또
걷다 보면 꼭
만날 거라 생각했다.
환상과 욕망이 꿈꿔 온
오아시스
샘물에 지친 발 담그고
아늑함 누릴 거라 믿었다. 바보 같게도.
오아시스. 그런 건 없다는 것.
주제넘은 욕망이 그려낸
허상의 환상
모래로 깨져 흩어진 이 길 위
돌아갈 곳도,
도착할 데도,
주저앉을 힘도 없어서
그냥 걷고 있다.
한
영혼
뜨겁게
이세상을
흠뻑적시고
여기뿌리내렸다
하늘로뻗은가지로
못다이룬그꿈피어나
바람을찔러깨우는각성의
푸른
바늘
되어
살아숨쉰다
생각이 흘린 눈물
펜 끝에 떨어져
한 방울 잉크로
사뿐 내려앉으면
동서남북 마음 걷는 길로
춤추며
그 사람
그리며 그리는 펜의 노래
읽지 않을 것 알면서도
종이비행기 접어 날리니
뱅그르르 허공 돌다
다시 책상 위에 툭
툭 주저앉은 시린 마음
괜찮다 토닥이며
수줍게 펼치고
아무도 모르는 시
밤하늘에 읊조리며
끝내 전하지 못한 말들이여
별빛 메아리 되어
그가 잠든 창가
은은히 비추기만을 바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