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inon Jul 11. 2021

노래의 날개 끝에 더하는 편지 - 1

명곡에 덧붙이는 헌시(獻詩)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 이문세


라일락 꽃향기에 취한

그 미소에 다시 취한

수줍은 설렘이

고백.

     

마음 갈피로 햇살 스며온

그토록 찬란하던

봄.


아주 잠깐 동안만이

지나고.


떨어지는 라일락 꽃잎 사이로

붉어진 눈시울이 떨친 한 방울에

녹아 사라진 봄의 미소가


잠시 머물던 그 자리.

잎사귀 그늘 아래

그래도 사랑.

다시 라일락 꽃 기다린다.


오래된 노래 - 스탠딩 에그


인사동 파전집

막걸리 잔 부딪치며 함께 웃던

어리던 날이 언젠가 있었더라.


그날의 흑백사진 불사르고 돌아서는

발자국 끄트머리에

미처 지우지 못해 남긴

멜로디가

기억 가장자리에

끈질기게 붙었더라.

    

파전 부치는 기름 내음 타고

흐르던 그 노래.

그리움이 타다 남은 그을음이 그린

가슴속 오선지 위에서 숨 쉬다

눈송이 내려앉을 머리카락처럼

희미해질 또 다른 어느 날.

    

오래된 노래보다도

더 오랜 나날 지났을 언젠가 그날.

    

다시

우연의 장난으로

혹여 우리 마주친다면, 아무 말도 없이

다시

서로의 잔을 채우자.

   

결국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닌 흔적으로 남았으니.

    

부딪치지 못하여 스치다 만 인연도

인연이라.

다시 막걸리 잔 부딪치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 노래에

미소만 얹자.


민들레 홀씨 되어 - 박미경


잘게 부서져서라도

너에게 날아갈 수만 있다면.

   

바람 흩뜨림에

티끌로 조각나

어딘지 알지 못할 곳들로

나 산산이 사라진대도

    

그 한 조각만 부디

네게 닿을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

끝내 물거품 된대도

알지 못할 어느 땅 위에 내려

다시 피어나

     

다시 불어올 바람 날개 위 올라

다시 너를 향할 날을

다시

기다리리.


두 가지 향기 - 오태호


새벽 두 시, 편의점, 캔맥주.

비에 젖은 담배에 불을 붙이자

치지직 독한 타르향,

함께 타드는 것은 눈물 고인 심장.

     

계절이 남기는 아픔이

계절에 젖었던 환희를

무심히도 짓밟고 나면,

    

기억의 꼬리에 새겨진

향기는

계절에 스며 숨어 있다가

    

지구가 한 바퀴를 더 돌면

기다렸다는 듯이 또

계절의 냄새로 가슴을 후비겠지.

    

몽롱한 장마, 빗물 향기 사이로 번지는

네 머리카락 샴푸향.


떨쳐낼 수 없는 두 가지 향기를

떨치려, 타르향으로 덮어버리려

비에 젖은 담배에 또

불을 붙인다.


사랑, 그 숨 막히던 순간 - 에피톤 프로젝트


새벽 한 시 반

가로등 아래 숨죽이며 흩날리는 눈송이

얼어붙은 골목길

살며시 덮을 때

더 살포시 덮어온

입술, 따뜻함에...

멎어버린 숨과

멈춰버린 시간

     

...... 그리고 다시... 어느

 

새벽 한 시 반

가로등 불빛 적시며 흩뿌리는 빗줄기 속

벅찬 가슴 묵묵히 지켜보아온

골목길도 아파할 때

안녕, 잘 가... 마지막 함께 우산 속

입술, 따뜻한 건... 볼 타고 흐른 눈물...

멎어버린 숨이 기억할

영원으로 잠겨갈 그 시간들

     

그렇게 두 번 숨 막히던 순간을 남기고... 사랑은......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 - 산울림


4월이니까.

하늘은 맑았다.

봄바람이 밀어주는 구름 미끄럼 타고

1년 중 가장 멋진 태양이 그 맑음 속 누벼 헤엄쳤다. 

    

눈이 부셔서

어차피 눈물은 났을 것이다.

봄의 절정이 뭇 살아있는 것들의 탄성 즐기며

땅 위 모든 생명에게,

맘껏 그를 마시라 허락하던 날

어차피 눈물은 났을 것이다.


봄이 춤출 적에

나무 관(棺)을 살라먹는 불꽃도 덩달아 춤추던

봄날.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날이라서

어차피 눈물은 났을 것이다.

 

떠나보냄의 순간보다 더 아픈 것.

떠나보냄의 순간을 뒤로하고 떠나야만 한다는 것.


봄의 축제, 그 불꽃이 서쪽 하늘로 잦아드는

초저녁 집 앞 골목길.

무너져 내리는 가슴에 다시 폭우 쏟아질 적에도

끝내 비는 내리지 않았다. 

   

돌아가는 뒷모습에 안녕!

듣지 못할 인사를 영원 속으로 목놓아 던진 그날.

그토록 찬란하던 하늘 아래,

그 사람, 멀리 하늘 소풍 가던 날.

어차피 눈물은 났을 것이다.

4월이니까.


거짓말 같은 시간 - 토이


신촌, 카페.

늘 우리 앉던 소파 옆으로 걸린

커다란 벽시계 나뭇결에는

진한 커피향 품고

네 웃음과 내 수줍음이 배었을 것.

머그잔이 피어내는 커피향

김 서린 웃음에

온 세상 새로 태어나 함께 웃었을 것.

     

널 만나러 바쁜 마음이 발걸음 종종

신촌역 계단 오를 때,

지상에 쏟아지던 그

눈물 나도록 화사한 햇살 맞던

너의 미소가

......

눈물이 되던 밤.

달빛은 눈치 없게도 영롱하던 밤.

널 두고 돌아서 내려온 신촌역 계단

모퉁이 돌아서 터진 흐느낌 삼킬 때

굳은 발걸음 떼는 신발 위로 떨어지는 눈물

이 순간이 제발 거짓말이기를...   

  

신촌......

카페......

이제 홀로 앉은 그 소파 옆 벽

늘 우리 내려보던

벽시계 딸각거리는 초침이 말한다.

이제 다... 거짓말이 되어버린 그 시간들. 

    

아니야. 그 흩어진 시간 그때는

거짓이 아니었다고.

너도 나도, 우리

거짓 아닌 무엇으로 남을 거라고.


그저 걷고 있는 거지 - 신해철


걷고 또

걷다 보면 꼭

만날 거라 생각했다.

  

환상과 욕망이 꿈꿔 온

오아시스

샘물에 지친 발 담그고

아늑함 누릴 거라 믿었다. 바보 같게도.

 

오아시스. 그런 건 없다는 것.

주제넘은 욕망이 그려낸

허상의 환상

모래로 깨져 흩어진 이 길 위

 

돌아갈 곳도,

도착할 데도,

주저앉을 힘도 없어서

   

그냥 걷고 있다.


소나무 - 바비킴


영혼

뜨겁게

이세상을

흠뻑적시고

여기뿌리내렸다

하늘로뻗은가지로

못다이룬그꿈피어나

바람을찔러깨우는각성의

푸른

바늘

되어

살아숨쉰다


시를 위한 시 - 이문세


생각이 흘린 눈물

펜 끝에 떨어져

한 방울 잉크로

사뿐 내려앉으면

     

동서남북 마음 걷는 길로

춤추며

그 사람

그리며 그리는 펜의 노래

     

읽지 않을 것 알면서도

종이비행기 접어 날리니

뱅그르르 허공 돌다

다시 책상 위에 툭

     

툭 주저앉은 시린 마음

괜찮다 토닥이며

수줍게 펼치고  


아무도 모르는 시

밤하늘에 읊조리며

끝내 전하지 못한 말들이여

   

별빛 메아리 되어

그가 잠든 창가

은은히 비추기만을 바랄 뿐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 140일. 부끄러움만 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