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inon Jul 11. 2021

일상의 조각을 조각하다. - 1

월급쟁이 쳇바퀴가 멈추지 않는 이유 중 하나     


소주는 뜨겁지.

월화수목금. 도레미파솔.

회사가 끓여놓은 뇌의 온도마냥 뜨겁지.     


맥주는 차갑지.

퇴근길 헛헛한 가슴 한 켠.

안 그래도 시려운데, 더 춥기는 그렇네.     


섞으니 딱 좋네.

소맥은 시원하다.     


주유구에 휘발유 콸콸콸.

월급쟁이는 소맥을 가슴에 털어 넣고,

소맥은 월급쟁이 가슴속 사표를

냉큼 뺏어 낼름 삼킨다.     


나쁘지 않은 거래.

금요일 밤의 카드 명세서 5만 7천 원.     


다시 월요일,

갚으러 출근한다.     


금요일은 또 찾아온다.

소맥과 함께.     


미용실에서     


남루(襤褸)를 입은 제자리걸음이

흩어버린 날들 속,

그래도     


이렇게 키워 자라게 한 것 있어,

그 3주, 3시, 3끼

헛되지만은 않았나.     


누추한 번뇌와

초라한 절망들아.

그 꼭대기로 밀려났기를.     


잘 가라.

싹둑.     


화석     


별것 달것 다 든 케이블 TV 채널들 속 헤매다

까마득한 옛적 푹 빠졌던 드라마 만났을 때,

화성에서 지구인 만난 듯 반가운 두근거림은...     


이내 착잡한 쓸쓸함이 덮는다.     


배우들 앳된 얼굴이 마냥 서글픈 건,

스물네 번 지구가 태양을 돌았던

시간의 걸음이 남겼을, 이 내     


얼굴과 영혼의 주름이 깊어졌다는

새삼스런 소스라침 속,     


그 씁쓸한 허전함이

마음 한 구석 치받는

둔탁함 때문인지.     


다시 못 가 볼 그 시절 이후,

스물네 시간이 삼백육십오 곱하기 스물네 번

지나는

그 동안.

그 동안(童顔)은 이리 되었고,

그 동안(童顔)이 이리 되는 동안,     


주인공 표정과 몸짓은 여전히 그대로

TV 속 박제라도 되었다만,


그때 내 꾸고 바라던 것들은, 지금

어느 땅 밑 돌(石)이 되어(化) 잠자고 있으려나.     


야근 뒤, 회사 앞     


달 닮은 가로등 빛에

미쳐버린 자태로 파들거리는 봄단풍.          


지쳐버린 두 눈 씻어주는

너.

참 고맙다.     


패턴의 늪     


숙취로 깨지는 머리... 맡

전화기의 잠금해제 패턴이

생각나질 않는다.     


아직 알코올에 젖은 채로 바빠지는 뇌는

아홉 개의 점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한 백번쯤 시도하니,

당황은 이내 공포가 된다.     


그리고는... 경건해진다.

술 탓이야... 이젠 끊으라는

경고야 이건.     


체념과 각오의 뒤죽박죽 속 까무룩...

낮잠을 깨우는 요란한

알람 소리 끄려는 무의식에     


덜 깬 잠,

손가락은 단번에 잠금을 풀었다.     


손가락이 머리를 이긴 순간,

습관은 무섭구나...

패턴은 무섭구나...

패턴이 패턴을 풀어버린 아이러니 속,     


아침의 금주 결심... 그대로니?

......

글쎄, 습관은, 패턴은 무서운 거라니깐...     


꼭대기를 향한 욕망에게     


그래 봤자 얼마나 높다고,

영원히 네 자리... 그런 건 없어.

결국에는,

언젠가는 도로, 도로(道路) 위에

내려앉을 그 발바닥에     


땀나도록 부지런한 건 좋다만,

양심까지 밟지는 말기를.

넘치는 욕심은 기다렸다는 듯 널 밟아 삼킬 테니,

다시 내려서며 또 만날 층층마다

곱고 부드러운 겸손만 남기기를.     


손아 손아 따뜻한 손아

(손잡고 나란히 걷는 두 딸아이에게)     


지금 너희 그대로.

절대 놓지 말기를.

계속 다정 하기를.

항상 함께 걷기를.

아빤 소망 한단다.     


토끼와 토끼와 토끼...?     


들꽃 사진을 찍으려 하니,

두 토끼가 토끼 인형과 함께 쪼르르 달려온다.     


매만지는 큰 토끼 손가락을

바라보는 작은 토끼 미소를

올려보는 들꽃 내음에

겨워 즐거운 인형 토끼...

라고 했더니,     


두 토끼가 말한다.

"걔 고양이야!"     


하룻길     


반듯하지 않다.

예쁘지도 않다.

오늘도 역시나 부끄럽다.     


울퉁하고 또 불퉁하여 못생긴

제각각 돌조각들,

제 멋대로 생기다 말아버린

하루 속 크고 작은 숙제들은

아침 소원대로 된 적 한 번도

없다.     


그래도     

안간힘과 헛수고

주거니 받거니 겨우 버틴 날

저물 때, 하룻길 조마조마 되짚어 보면     


빈틈 숭숭 허술할지언정

그 못난 돌조각들

저희끼리 사이좋게 자리 잡아

얌전히 박혀 있다니.     


깊은 한숨 스민 하루 어치 허둥지둥 속,

이러거나 저러거나 어쨌거나

세월에 올라탄 오늘이

파편들 퍼즐

돌길 위로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다.     


안과 밖의 연결고리

(키보드에게 바치는 감사의 편지)     


머리가 뱉고 마음이 쏟아

손 끝으로 흐르는 조각들,

주워 모으고 골라서 담는다.     


보이지 않는 것들

보여 주려

안에 숨은 것들

밖으로 펼쳐 내려     


열 손가락이 두들기는 아픔마저

경쾌한 리듬으로 즐겼을     


오늘 하루도, 너

참 수고 많았다.     


일요일인데... 미안쿠나.

이제라도 좀 쉬렴.

내일 아침 만나자.     


석양 앞에 선 구슬(玉)     


딱딱하고 차가운 겉이

전부인 줄 생각했지.     


어둠 탓이었지.     


빛이 내리고서야

눈이 열리고서야     


비로소 알게 됐지.     


부드럽고 따스한

네 품에 안긴 노을. 이제     


이 가슴 열어 환한 미소 채운다.     


사라지지 않는 어떤 것들     


웃음이나 울음이나 그리 단순하지만도 복잡하지만도 않을 것이다. 둘 또는 셋 정도 마음 색의 뒤엉킴. 즐겁고 뿌듯하고 기쁘거나, 슬프고 외롭고 억울하거나. 감정이 터져 나는 그동안의 시시각각 농도도 다를 것. 하루 종일 울어본 이는 아마 알 것이다. 새벽의 눈물과 초저녁의 눈물은 그 염도가 같지 않을 것. 마음에 펼친 도화지. 그 색이 더욱 짙으며 물감이 겹쳐진 자리의 느낌은 더 오래도록 남는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세월만큼 들이마신 공기 속 산소가 종잇장을 조금씩 산화시켜 색을 흐려지게 한다. 슬프고 감사한 일이다. 빛바래며 사라지는 웃음의 자취는 애석하고, 희미하게 흩어지는 눈물의 흔적은 다행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래지 않는 웃음과 여전히 선명한 눈물은 반드시 있다. 아마 자아가 소실되고 나서 다음 생까지 쫓아가지 싶을 정도로 강렬하고 뜨거운, 그런 웃음 또는 눈물.

작가의 이전글 사랑이 타오르고 남은 자리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