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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흘린 눈물

비는... 바람이 흘린 눈물이다.

by rainon 김승진

바람이 흘린 눈물


실비가 흩날린다.

눈가를 적신다.


바람아. 너도 우네.


다행이지 뭐야. 나 혼자 슬픈 건 아니니.


바람이 흘린 눈물 2


세찬 빗방울 고이니,

웅덩이는 기쁘다.

가슴 텅 비었던 마른 나날들...

오늘만큼은 외롭지 않겠어.


내게 가득한 너희들아.

고마워. 참 많이.

나를 적셔

채워줘서.


바람이 흘린 너님들.

내일이면 햇볕에 흩어져

다시 바람 타고 가버려도,

많이는 서운하지 않을게. 나.


그 눈물에 서렸다 여기 남은

네 서러움, 그 향기들.

또 너흴 기다릴 내 그리움과

다정한 짝 될 테니까.


바람이 흘린 눈물 3


칠흑 속 피뢰침이

홀로 담담히 벼락을 기다리다가,

구름이 던진 칼날 저 혼자 맞는

온몸 다 깨지는 고통을


삼키며 지긋 깨문 입술 생채기 옆으로

바람이 지나다가,

네 아픈 외로움 나는 알 수 있어,

눈물로 감싸 덮는다.


바람이 흘린 눈물 4


지금 너 흘려야 하는 것들 다

멎는 날 그 아침에


처마 끝 남은 자투리까지

말라 흩어지고 나면,


경쾌한 웃음 갈아 입고

먹구름 틈새 비집고 헤칠


네 해 맑히는 춤에 깨어나

영롱하게 찾아올


눈 부서져도 좋으니, 세상 제일 예쁜 빛.

나는 기도하며 기다림.


바람이 흘린 눈물 5


우산만큼 어깨 사이 더 멀어지는 아침.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 고, 사이드 미러가 말한다.


네 눈물이 가린 나뭇잎 가여워하는

마음의 눈빛마저 흐려지지 않도록...

너 흘린 조각들, 오늘은 다시 데려가 주렴.


바람이 흘린 눈물 6


잊으려고 흐를까,

잊을 수 없어 흐를까.

이 안에 담을게, 그 눈물에 녹아든 너의 것들.


그래도, 흐름 속에 야위어가는 너

지나간 자리에

묵은 먼지 씻긴 땅 위의 모두가


촉촉한 얼굴로 기다리는 건

네 등 타고 날아올 거라는

뜨겁게 찬란한, 다시 미소.


그치지 않는 울음은 없잖니.

이제 그만

무지개를 데려오렴.


바람이 흘린 눈물 7


오늘은 웃음 닮은

타닥 내리는 소리.


왈츠 추며 잔디 밟고 같이 열어,

통나무집 벽난로에 장작 타는 소리.


마주 앉아 마주친 눈빛 비친 잔 위로

포도주 방울 내리는 소리.


그립던 님 드디어 만나

벅찬 가슴 적시는 눈물 소리.


바람이 흘린 눈물 8


머뭇거리다,

투두둑거리다,

다시 머뭇거리다.


늦은 오후 내리다 말다 비.


오늘 바람이 흘린

눈물.

발목 잡은 건


앙다물고 꾸역꾸역

안으로 삼킨

사무친 서러움인가.


땅 위 어떤 초저녁 잠

깨울까 조심스러운

슬퍼도 참 고운 마음인가.


바람이 흘린 눈물 9


밤새 쏟아진 서러움 모조리

흘러내리고 남은 응어리

조각들, 방울져

뚝뚝 속.


묵묵 속,

슬픔의 잔가지 걷어내며

이제 좀 나아졌니...?

잔잔해진 바람 토닥이는


빗물받이 홈통은


다 알아버린

바람의 아픔

그대로 감싸 안아

흐느낌이 흐를 수 있게

내어 준 길, 제 속으로 젖어 스며든


눈물 향기에

뒤따라 취해 든다.


바람아. 넌

하늘 날며 슬픔 잔향 떨쳐내겠지만,

볕 들지 않는 여기 내 안에 밴 네

눈물 조각들... 언제 마를까. 그래도,


원망하지 않아.

네 아픔, 내가 끌어안아 비워줄 수 있게 해 줘서

나는

고마워.


바람이 흘린 눈물 10


하늘은 잿빛이건만

구름으로 구겨

바람 위 떨군 빗물은

색깔이 없고


오늘 이 마음 깊이

핏빛 아픔이 토한

설움 가득 눈물방울도

그 너머 세상 그대로 비쳐 보이듯이


잿빛 구름을 바람이 녹이고 난 하늘도

핏빛 응어리 터뜨려 다 비워낸 마음도

그리 무색(無色)하기를.


담담히 무심히


그 무엇에도 물들지 않는

단단한 투명함으로

초연히 일어서서


오늘 바람이 흘린 눈물

내일 햇살 머금은 바람으로 씻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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