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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날개 끝에 더하는 편지 - 2

명곡에 덧붙이는 헌시(獻詩)

by rainon 김승진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 잔나비


끝이 보이는 길일지라도

내딛기 시작하기를.


행여 마음 다치게 할까 저어하다

마음 닫히게 하지 말기를.


손 잡고 걷는 길가 풀꽃이 손짓하는

불꽃처럼 아름다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남기지 말고 들이마시기를.


그렇게 함께 걸어가는 길 위에서

후회 없을 뜨거움

느리게 식어가기를.


그렇게 함께 걸어가는 길 끝에서

후회 없을 고마움

천천히 고백하기를.


넌 또다른 나 - 이승철


나와 같지 않으며

나와 같은 너.


서로를 나누어

주고 또 받으며


네 안에 내가 서리고

내 안에 네가 서리어


하나같은 둘

둘인 하나


거울 앞에 선 너와 나는

거울에 비친 나와 너.


추억 속의 재회 - 조용필


함께한 시간이

흩어져 사라진

함께한 공간은

온몸을 에인다.


다시 꼭

만나고 싶은 너.

그러나


홀로만의 회상 속에서는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너.


민물장어의 꿈 - 신해철


세상에 넘치는 빛들

그 아주 작은 한 줌도

감히 탐나지 못하던

철저하게 처절한

체념의 깜깜한 늪


반지하 먹통 쪽방 쳇바퀴 위 구르던

컵라면에 소주 병나발 마냥

초라한 만큼 질기던

生은 死가 아닐 뿐

삶은 아니었다가


극한을 만난 절망도 제풀에 지쳐

맨땅에 스스로를 던져

산산조각 먼지구름 피어오를 때


라디오 스피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라는

질타가 건네는 위로

그 위로 흐르는 음표가


死의 아가리에 처박히려던 生을

삶으로 끄집어내었다.


봄날 - 방탄소년단


천천히


눈 감고 떠올려 보는 얼굴

주근깨가 몇 개였더라.

밤하늘 별을 세듯

그리움이 널 그리다

감은 눈꺼풀 검은 도화지에

스산한 눈물 느리게 번진다.


끝내 너 마침표 찍지 못한

너의 마지막 말

끝내 나 지울 수 없는

너의 마지막 말

아프게 매운 짠물 되어 가슴에 고인

마지막까지 잊지 못할 그 말들,


계속 이어가는 날이 온다면...

너와 나 함께 뜨거운 눈물로

얼어붙은 시간의 벽을 녹이는 그날


천국의 맑은 아침은 꼭

봄이리라.


닿을 수 없는 저편에서 서로가

보고 싶다 외치다

끝내 우리가 서로 다시

보는 날, 봄날


오리라.


기억이 부르는 날에 - 부활


기억이란...

누더기.

더는 부끄럽기 싫은

무의식의 부끄러움이 파내 버린

빈 구멍 그 틈으로, 외려

맨 살 드러나는 수치심의 도돌이표.


기억이란...

화려한 누더기.

찬란히 빛났던 어느 날의 벅찬

마음이 회상으로 덧칠한

그때 그 맑은 하늘보다도, 오히려 더 하늘스러운

켜켜이 감동 쌓인 추억은 바래지 않을 아름다움.


화려한 누더기 걸치고

내 잠 속으로 잠기는 23시 57분.

기억이 너를 부를 때

끝나버린 사랑과 끝없는 이별은

오늘 이 꿈속에서

아름다운 도돌이표 위로... 홀로 춤춘다.


소금인형 - 안치환


너를

알고

싶고

너만

안고

싶어

너의

품에

나를

던짐


이리도

행복한

녹아듦


네안에서

네안으로

너와함께


사라지면서

태어나리라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 이선희


우리 같이 채워 간 공책

교환일기

책장마다 묻은 손때

물끄러미 보다.


네 손가락 사이 펜 걸어간 페이지에

떨리는 손가락 다가서다.


함께한 날들

끝나지 않을 거라던 날들

가만히 떠올리다.


어느 늦여름 오후

노트 건네며

한낮 무더위 시들어가는

노을 품은 구름가 빛날 때

별보다 빛나던 반짝

네 두 눈

지금 눈앞에 그대로인

듯하다.


마지막 페이지

네 힘겨웠을 마지막

두 마디

사랑해... 미안하다.


그 위로... 툭

한 방울 번진 자국

하나 더 늘다.


다시는 펼치지 않으리라

책장 덮으며

혼잣말 또 거짓말 속삭이다.


발레리노 - 리쌍


나는 아픔을 모른다.


너만을 위한 이 무대

다 장조 선율 흐름에

세상 단 한 사람 기쁘게 하는

벅찬 행복의 힘으로 밟는


스텝 사이로

발가락 찢어져도

멈춤 없는 춤.


나는 아픔을 몰라야 한다.


너는 내 아픔을 몰라야 하기에

나도 내 아픔을 몰라야 한다.


네 얼굴에 미소가 시들지 않도록

썩어가는 내 발가락 시드는 날까지

멈춤 없어야 할 춤.


언젠가 조명이 꺼지는 날

내 발가락 힘 다하는 날

설마라도 혹시라도 잠시라도

날 가엾이 여길 지도 모를

네 얼굴에 미소 시들지 않도록


그땐

너는 나를 몰라야 한다.

음악 속 춤의 사위만

네 추억 어딘가 자리 잡고


널 위한 춤만으로

세상에 감사했던 발레리노

너는 기억 못 해야 한다.


너만을 위한 발레리노, 나는

아픔을 모른다.


해체를 위하여 - 김종서


가을날 아련한 달빛

흔들며 내 안으로 들어온

사람


마음 한가운데

그를 위해 마련한

방에


들어오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가버리는

사람


기다림과 그리움에 지쳐

홀로 에이는

가슴


이젠 그만하라고 외치며

빈 방 걸어 잠그고 외면하라 부르는

노래


해체를 위한 다짐도 잠시

노래가 끝나고

여기


언젠가 슬픔 달래러 위로를 찾아

이 방 찾을지도 모를 사람 위한

청소


빗자루 들고 속으로 눈물 삼키며 들어서는

마음 한가운데 그를 위한 텅 빈

방에


끝없는 기다림

변치 않을

끝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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