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inon Jul 11. 2021

힘없이 작은 것들을 향한 작은 응원

육교     


한 뼘씩 하늘 가까워지며 만나는

거기 또 다른 하루의 걸음들.     


저 많은 채소 나물 다듬느라

새벽잠 버렸을 할머니 다디단 졸음 깨우는     


다섯 살 배기 울음은

뭐가 그리도 갖고파 저리도 서러울까.     


혼내다 어르다 지친 엄마 곁 스치며

학원 수업 늦을까 종종대는 공시생 품 안     


문제집 손때를 힘내라 쓰다듬는

은은한 오후 햇빛이 서쪽 구름 사이 잠겨 들면     


다시 한 뼘씩 지상을 덮는 땅거미로

잦아드는, 고달픈 하루 어치 삶의 조각들.     


낮잠 깬 가로등에게 소곤소곤 들려주며

기억 서랍 열고 고이 담는다.     


버스 정류장 벤치     


새내기 회사원 지각 동동 발도

이력서 쥔 실직 가장 타는 속도

닫아 말아 떡볶이집 아줌마 고민도

졸린 눈 비비는 재수생 폰 속 영단어도     


이 하루 거기 앉았을

이름 모를 사연들

다들 집으로 향할 때,     


다시 빈자리에 내린 투명한 밤

끌어안으며 기다린다.     


어김없이 이따 내릴

이슬 촉촉 햇빛아.

모두의 그 어깨

희망으로 감쌌으면...     


착한 소망 덮고서

거기 항상 너는 있다.     


마을버스 막차     


목덜미에 맺힌 땀방울들

기사복 깃을 적실 때,

알바 첫 출근 딸내미 염려로

가슴속은 더 젖는다.     


과속방지턱 덜컹 에

출렁 휘청 넘어질 뻔

더위에 더 취해 얼굴 불콰한 할배가

뱉은 혼잣말 욕설은 귀로 삼켜     


못 들은 척,

흰 장갑 오른손은 다시 기어를 올린다.     


아스팔트 곳곳 패인 구불구불

시골 밤길 호젓해 정겹구나... 는

핸들 밥 먹기 전 얘기였지.     


파스들 덕지덕지

운전대 쥔 왼팔 어깻죽지

오늘따라 더 아우성이네만,     


막차 종점 거의 다 와,

쑥스럽게 건네는 캔커피 하나.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단골 여고생 맑은 목소리, 참 고마우면서도     


얼추 나이 비슷하겠네.

이 녀석, 밥은 먹고 일하는 건가...

마음은 다시 아릿...     


운전석만 아니라면

버스 좌석은 이리도 편하구나.

집까지는 55분.     


쪽잠 청하며 감은 눈꺼풀 위로

위로 같은 식솔들 얼굴

희미하게 번진다.          


아침의 눈빛 대화

(자동차 아래 웅크린 길냥이와 주고받다.)   


거기서 잔 거니?

    그런 거 같아.

배는 안고파?

    이제 슬슬 아침 거리 찾으러 가야지.

아직 졸려 보이는데...

    그건 너도 그래.

나 늦었어... 출근해야...

    알아. 시동 걸면 나가마.

이따 밤에 비 온대. 잘 곳 없으면...

    고마워. 저녁에도 여기 세워라.

어... 그래. 좋은 하루 보내고.

    응. 너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하루 잘 버텨. 사는 게 뭐 별거니?     


나의 이름은     


꽃이 졌다고

내가 다 진 것 아닌데,     


꽃을 잃은 나

알아보는 이 없다.     


내 이름도 라일락.

나는

라일락.     


6월, 흐르는 달     


아직 장마 전인데

이미 젖은 하늘가     


무엇 그리 서러워서

밤은 이리 촉촉하나     


새들도 잠든 한밤에

잠들지 못한 누군가     


아무도 모를 슬픔

살펴서 안아 주려     


유월의 밤... 위로... 慰勞

흐르는 달... 유월... 流月     


빗물만 말고 햇살도     


번뜩이는 유리 걸친 마천루.

햇빛 아쉽지 않아. 난.

이 안에 계신 귀한 분들

덥지 않으셔야 해.

도로 하늘로 가거라. 햇빛.     


빌딩 숲길 건너 연립주택 반지하.

간밤에 내린 세찬 빗줄기는

모든 것을 끝까지 남김없이

참 촉촉하게도 적셨다.

흘러넘치는 구름의 은총이여.     


빗물아. 네가 아래로 흐르는

딱 그만큼만 바랄게.

네 가시고 난 뒤 찾아오실

햇빛, 햇살도 부디부디

흐르거라. 넘치도록 아래로 흐르거라.     


그래도, 삶은 축복     


하늘의 색깔 궁금했던 잡초 씨앗이

쪼개지는 아픔 견디고 틔운 싹.     


키보다 높은 흙더미 간신히 헤치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 가로막은 보도블록 돌덩이

틈을 찾아 다시 어둠과 싸운 끝으로

드디어 열린

하늘.     


숨들여 크게 마시다

시도 때도 없이 구둣발에 밟혀도

나는 괜찮을래.

해가 저물면 발길 뜸해지겠지.     


그럼 나

까만 하늘 숨결이 안고 내려올

어제보다 조금 커졌을 달빛 바라보며

또다시 흐뭇하며

끝없이 감사할래.     


씨를 뿌리는 기도     


애당초 운명에 없었을

성공, 욕심 내지 않습니다.

내 것 아닐 요행이 가져다줄

성취, 탐나지 않습니다.     


이 좁은 품으로 다 안을 수도 없을,

감당함도 가당치 않을

넉넉함, 바라지 않습니다.     


아침 햇볕 손잡고 온 이슬아.

네 입 맞춘 흙, 향기 즐기며 바쁠 수 있는 이

두 손과 두 발이 그저 감사할 따름.     


다만... 하나만.

지금, 여기에 떨어지는

이 부끄럽지 않은 땀방울들, 꼭

이만큼만 싹트게 허락하소서.     


너에게 내리는 비가 되고 싶다.

(메말라 갈라진 땅 틈새 한송이 꽃을 위해)     


너무 작아서 미안해.

몇 방울 되지 않아도,

이 한 줌 빗물

네 하루 적실 수 있다면...          


아픈 하루 끝 꿈에 피어나라     


빗물에 부서진 햇빛

일곱 조각 찬란하듯     


산산조각 깨진 자리에서

피어나는 다시 아름다움     


오늘 아팠을 네 눈물

마른 베갯잇 끝 살짝     


토닥토닥 무지개가

어루만져 내려앉길     


낮은 <꿈>자리표     


내 꿈은 나중에 싹트게 하소서.     


지상에 가득한 간절한 소망들,

기도의 새벽이 흘리는 뜨거운 눈물

먼저 닦아 주세요.     


꿈 없는 잠은 그저 편안함이고

못 이루는 꿈, 저 홀로 행복할 수 있어도     


잠 못 이루는 근심의 끝이 부르짖는

처절한 몸부림의 호소,

더는 아프면 안 되니까요.     


세상 모든 상처가 다 씻기고 난

그다음 날에     


내 꿈은 맨 나중에 싹트게 하소서.

작가의 이전글 노래의 날개 끝에 더하는 편지 -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