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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on Jul 11. 2021

일상의 조각을 조각하다. - 2

아침 구내식당의 올드보이

(태어나 처음으로 쌍란 달걀 프라이를 만나다.)     


복권 살 필요 없겠어.

간밤에 꾼 꿈,

너였구나... 싶다가.     


내 뒷사람

흰자만 먹을까 봐 미안해지네.     


※ 작가 註) 영화 "올드보이"에서 사설 감옥에 갇힌 오대수가 배달 군만두에 딸려 온 젓가락이 세 짝인 걸 보고서 한 말. "아이고, 옆방 아저씨는 젓가락 한 짝으로 밥 먹겠구나.“     


편백     


잘리고 깎이는 아픔

채 멎기도 전에

조각되어 실렸던, 큰 배     


닮은 노란 장난감에

잠겼다 흩어질 때 까르르

해처럼 터지는, 동심들     


피어나 그리는 동심원

동그란 파장 잦아들면,

고단한 하루가 또 닫히는     


불 꺼진 키즈카페.

비상구 창백한 불빛 아래로

떠오르는 어렴풋 그 기억은     


아가들 젖내 스민 손때 위로

가물가물 스쳐가는 그때 내 살던

숲을 감싸던, 부서진 별빛의     


조각(片)들 하얀(白) 가루. 추억하는

하얀 조각 내 이름은

편백(片白).     


굿바이, 모니터


출근한 지 30분 만에, 3년 써 온 사무실 컴퓨터 모니터가 수명을 다했다. 급하게 작성하던 보고서는 먹지가 되어 버렸다. 당황과 다급 속에 전산팀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니터 브랜드가 뭐죠?" "...... 잠시만요." 천일이 넘게 코끝을 마주했던, 늘 눈 바로 앞에 있어왔던 모니터 브랜드 로고를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작별하는 날에, 3년 만에 처음으로 브랜드 로고를 유심히 본 것이다.     


모니터 교체를 마친 전산팀 직원은, 지난 3년간 날 가장 오래 쳐다보았을 내 원고지 겸 도화지를 들고 떠났다. 잠시 멍하니 앉은 채로, 떠난 원고지 겸 도화지의 이름(?)을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다 문득! 직원이 챙겨간... 하루아침에 "옛" 것이 된 모니터가 생각났다. 황급히, 이번에는 직접 전산장비실로 걸음을 재촉한 것은, 옛 모니터에 붙어서 함께 들려간 보안 필름 때문이었다. 그냥 무심히 버리기에는 적잖은 가격이다.     


문 열고 들어선 전산장비실 구석에는, 5분 전까지만 해도 날 바라보고 있던, 15분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었던 옛 모니터가 가만히 웅크리고 있었다.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았다. 선뜻 손을 가져가지 못해 잠시 주춤... 거리다 보안 필름을 뜯어냈다. 또 한 번 주춤했던 것은, 마지막 눈길을 건네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를 보면서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위해서였다.     


사무실에 돌아와, "새" 모니터에 떼어내 온 보안 필름을 붙였다. 이상하게도, 알 수 없게도 미안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달걀을 품은 라면이 하는 말     


아주아주 늦게 이제야 알 것 같으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

마음 곳간이 빈 것 아니외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

이미 다 가졌소 난,

더는 바라는 것 없어요.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원하는 것이

가난한 것이라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

마음 더 채울 빈자리가

가난하단 소리요.     


그리하여 내 가난한 마음은

이토록 가득하여

행복합니다.     


2357을 떠올리는 23:57     


1과 자기 자신을 빼고는, 그 어떤 수로도 나눠지지 않는 수를 소수(素數)라고 한다. 스스로 통째로 외에는 그 무엇에 의해서도 쪼개어지지 않는... 뭐랄까 고집 세고, 비집고 들어갈 틈 없는, 단단한 차돌 같은 한자리 소수. 아라비아 숫자 중에서는 2, 3, 5, 7 넷 뿐이다. 그런데 그 넷이 줄지어 선 이천삼백오십칠도 소수라는 사실. 2357. 23시 57분, 하루의 끝에 서서 거울을 본다. 오늘의 나 어떠했던가. 2357처럼 치밀하고 빈틈없이 하루를 채웠는가? 그 무엇으로도 조각낼 수 없는 단단함과 당당함으로 스스로를 대했던가? 손바닥 접시에 잠시 담기자마자 손가락 사이로 빠져 흐르는 물. 이제 세 방울 남았다.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며, 다시 손바닥 접시에 잠깐 쏟아질 하루 어치 물을 받을 준비를 하며 끝번호 2357 전화번호를 쓰는 그는, 또, 늘 그러하듯,

반성한다.     


부채가 추는 밤     


고스란히 하루를 되새기는

이 밤이 접고 펴는 탁. 탁.     


한낮의 부끄러움 감춰 숨겼다,

또 어떤 간간한 자랑들은 수줍게 열어

주름들이 그리는

하루 끝 춤사위.     


아파트 외벽에 박제된 주름이 닳아가는 시간

무심코 흐르는 세월이 새기는 영혼의 주름

밤의 부채는 오늘도     


저 홀로

바람결이 흔드는 이파리

그늘 입고 접었다 펼친다.     


내 잠속에 잠겨오라     


딱 하루만큼만, 우울하렴.

오늘만은 괜찮아.

비가 내려야 먼지가 씻기지.     


오늘이 닫히도록, 그 마음에

비 그치지 않거든...

내 잠 속에 잠깐 들러도 좋아.     


이럴까 봐 낮에 모아둔

두어 자락 구름 위

햇살 한 줌 펼쳐둘게

눈물 말리며 쉬고 가.     


세상의 천장

(2021. 6. 16.(수)의 일기)     


새벽, 소스라치는 아픔은

팔자에 부디 없기를 바랐던

응급실을

오늘의 팔자로 만들었다.     


온종일 쳐다본 건, 천장 셋.     


사이렌 소리에 잠긴

구급차 천장 보다가

들것에 실려 내린

응급실 천장 마름모 타일 옆으로

진통제 링거 방울방울 세다가

깨고 나서 다시 집,

불 꺼진 방 침대에 누워 바라본 천장까지

죄다 회색빛     


천장들에 가로막혀 모르고 지나친

오늘, 세상의 천장은

눈부셨다고 한다.     


네 살 천사와 풀꽃 송이 여섯의 미소를

그 안에서 마음껏 빛나도록

지켜 감싸 안은     


오늘, 구름 거니는 하늘은

눈물 나도록 찬란한 푸르름이었다.     


한잔 차로 여는 길     


따뜻한 한 모금

마음이 흘러나오는 길

촉촉하게 덥히고...     


보드라운 그 길 위로

다정한 말씨가 던지는

아늑한 눈빛.     


마음의 문

빗장

살며시 연다.     


몽당연필     


몽당연필만 한 일곱 살, 네 살.

제 손 뼘보다 긴 색연필을 갖고 논다.

종이 위 삐뚤빼뚤,

글자인지 그림인지.     


시간과 함께 자라는 쪼꼬미들,

손에 쥔 연필은 점점 짧아지는데.     


세월의 흐름에 앉은 것들아.

커져가는 건지, 꺼져가는 건지.     


잘 자. 딸들을 안아주고 집을 나서,

건넛집 노인네 밤 안녕을 살핀다.

오늘도 하루만큼 좁아진 어깨,

나날이 작아지는 일흔여섯 몽당연필.     


시간 등에 올라타 끝을 향하는 모두는

자라다가 사그라드나.     


오늘따라 마음 저릿한 핏줄들.

세 자루 몽당연필들아. 굿나잇.     


닫힌 입에는 파리가 날아들지 않는다.     


제 화를 순간 못 이기고 잘못 내뱉은 한마디는 총알이 된다. 듣는 이의 심장을 뚫는다. 그 마음에 난 구멍에서는 피보다 더 서러운 눈물이 흐른다.     


아차 싶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후회는 자책이라는 칼날 부메랑이 되어 말한 이의 심장도 할퀸다.     


삼켰어야 할 말 한마디는 두 심장에 상처를 남긴다. 화가 났을 때는, 일단 침묵.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했던 얼마 전 잘못을 깊이 뉘우치면서... 기억한다. 스페인 속담 하나.     

En boca cerrada, no entra mosca.

닫힌 입에는 파리가 날아들지 않는다.     


1분 뒤 쏟아지다.     


새벽 다녀간 빗방울들

아직 꽃잎 사이

고인 채로

아주 잠깐     


먹구름 틈 희미한 광채

두팔 벌려 맞는

짧은 위안

너무 잠깐     


그 잠깐 시샘하나

잔인하게

쏟아지는

다시 장마     


웃음 숲에 내리다

(별 모양 펜던트 전구들이 수놓은 캠핑장의 풍경)     


오늘은 더 별이 즐겁다. 반짝

터진 웃음 조각들

사뿐 내려앉아     


더불어 흐뭇하여 설렌

나무들 꿈 안으로

스르르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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