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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on Jul 11. 2021

삶, 죽음을 이기는 찬란한 순간

할슈타트(Hallstatt)

(2015년 늦가을의 기억을 펼치다.)     


호수 속에는

똑같은 세상이 도사리고 있었다.     


내세(來世)로 들어가는

소름 끼치는 투명함이

실재(實在) 뺨치는 고혹스러운 자태로

뛰어들고픈 미친 충동에 손 내밀어 이끄는     


호수 위

자잘한 물결은 바람의 부채질이 그려낸

영롱과 몽롱이 함께 추는 유혹의 왈츠.          


그 선율에 취할 뻔.

가까스로 도망쳐 고개 들다 만난

교회 첨탑 위 하늘로 비행하는 한 줄기 바람결.     


그래.

뺨을 스치고 잎사귀를 토닥이는

공기의 유영(遊泳),

숨 붙은 자아만 자각할 수 있는 이 삶의 선물이라.

아무리 아름다운들 물속에는 없는 것이 바람이라.     


붙어 있는 목숨, 멋없어도 고마우며

다디단 바람결에 날리는 나뭇잎 왈츠 아래

올라탄 버스는

하늘과 바람의 향기를 오선지에 담았던

모차르트 살던

잘츠부르크로 달렸다.          


오늘이 사무치는 까닭

(6월 30일의 일기)     


지구가 태양 주위를

두배 더 빨리 달렸다면

오늘

어느 카페에서는

올드 랭 사인이 울리겠지.     


클래식 방송에서는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을

내보낼 거야.     


오늘이

달력 마지막 장을 찢는 날일 수도 있어.     


오늘 아침 그대가 맞은 태양

삶 속 최후의 해가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오늘의 그네 타기

그대 마지막 그네

그럴 수도 있잖아.     


그네

그대

영원하지 않아.

그넷줄

언제 끊길지 알 수가 없어.          


몽당연필의 기도     


스스로

스스럼없이

부러뜨리려 해도

더 작아질 남음이 없어라.     


작아지며 작은대로

살아왔기에

작다고 끊을 수도 없는,     


멈출 수 없는 게 삶인지라.     


짧아서

부러지지 않으니

끝까지 갈 수밖에, 쉼 없도록     


시간의 물결 올라타 숨 마시고 뱉어

파도의 가장자리까지

그리리라. 그리하리라.     


어차피 지워질 기억일지라도

기억하며     


접히지 않으리라. 마지막까지

걷다가 긋다가

영원으로 향하는 날에는     


내 그늘

남기지 않으리라.          


오지 않은 날들에게     


피할 수 없을 모든 잿빛들이

너무 짙지만 않기를...     


먹구름이 터뜨릴 수밖에 없을

빗줄기의 성남 앞에 담담할 테니

이 조그만 우산 찢지만 말기를...     


젖은 옷깃 털어낼 때 빗방울이

현관 앞 어슬렁거리는 개미에게

벼락 되지만 않기를...     


그리고     


혹시 다시 구름 걷힐

창공 푸른빛에 취해

폭풍우가 준 가르침

잊지 않기를.     


번개, 삶이 뿌린 빛

(버스에 아스팔트 깨져 금간 자리를 보다가)    


버스 때문이 아니야.     


새벽잠이 없어야 할 빌딩 청소 아줌마,

새벽 밟고 퇴근하는 빌딩 경비 아저씨.     


엄마 등에 업힌 갑돌이,

아빠 어깨 무등 을순이.     


시내버스 바퀴 타고 내려와

아스팔트에 새겨진

작아도 하찮지 않은 그

반짝이는     


목숨들.

무거운 거룩함.          


미용실에서 2     


'자라남'은 잘못 아닌데

'자라고 남음'이 무슨 죄라고...     


한 뿌리에서

네 아래로 생겨나 기뻤을

한 몸과의

예정됐던 작별

아프겠지만...     


삶을 허락받은 모두가

다 그러하니

혼자 슬플 일 아니야.     


...... 잘 가라. 어쩌면...

다른 모습으로 다시 만날 거야.     


연(鳶)이 날아, 연(緣)이 가도

(언덕에 올라 가오리연을 날리는 딸아이에게)     


날리고는 싶어도

날아가버리게 놓지는 않을 거야.     


하늘 향한 너의 춤

내 손바닥 위에서

내 눈 안에서만 즐거워야 해.     


하지만 아가야.     


그 어느 날

하늘 품 끝에 안길

그 분홍 꿈

널 떠날 때, 얼레에 맺힐 네     


눈물이

쉬이 마르기를.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열사(烈士) 님들의 넋을 기리며)     


갈림길에 선,

서슬 퍼런 결기.     


운명으로 정한 이 길로

딛는 걸음

혹여

흔들릴까 봐,     


뜨거운 눈물도 차마

흘러내리지 못해

멈춰 고였다.     


매섭게 맑은 눈동자 위로

스쳐가는

태산 같은 生의 기억들아, 더없이 고마웠다.

死는 한갓 깃털일 뿐.     


서릿발 지르밟고 던지는

마지막 순간은

영원이 되고,     


하늘도 내려앉아

고개 숙인 자리에     


얼음보다 차가운 순결은

그렇게

나무로 남았다.          


수요일 밤의 건배사     


캔맥주를 물구나무 세우고 보니,

선명한 유통기한 숫자들.     


넌, 네 끝이 언제인지를 아는구나.

모르는 나보다 어쩌면

더 오래 살 수도 있겠구나.     


알아도 몰라도,

끝이 있는 모든 것들을 위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이 없는 어떤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별처럼,

언젠지 어딘지 모를

끝으로

향해 항해하는     


별보다도

아름답게 빛나는

지금 + 여기를 위하여.     


건배.     


제비     


더는 부르지 못할 안녕으로

풀꽃 품에 잠든 여인아.     


내 가장 아득한 기억의 끝.

해 질 녘 개울가 곁 동산에서 손 꼭 잡고,     


다섯 살 아들에게 풀꽃 이름들 불러주던

아련한 그대 미소가,

다시     


새벽이슬로 잠시 내려앉아

활짝 꽃잎

펼쳤나 보오.     


먼저 피어났다 스러진 제 어미가 그리워

굽은 채 감은 눈을

뜨이려 다녀가신 게요.     


내일 아침

또 오소.

그대 보고파 나

다시 눈감고 있을 테니.     


애기똥풀은 줄기를 자르면 노란 액체가 뭉쳐 있는 것이 꼭 노란 애기똥과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다. 영어로는 셀런다인(Celandine)이라고 하는데, 이는 제비를 뜻한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제비가 알에서 부화할 때 눈이 잘 뜨이지 않아 어미 제비가 애기똥풀의 노란 진액을 물어다 발라주어 눈을 뜨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속뜻은 ‘어머니가 몰래 주는 사랑’이다.

(출처: 야생화 백과사전 봄편, 저자 정연옥)          


사사사     


삶.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잠,

그 속에서 잠깐 꾸는 꿈.     


꿈은

넷을 버릴 때

멈춘다.     


사(四) 사(捨) 사(死)     


<소유>의 소멸.

<관계>의 소멸.

<기억>의 소멸.

그리고,     


그 셋이 자라난 밭,

<자아>의

불가역적 소진(消盡).     


산다는 건,

관계 속 소유를 기억하는

자아의 꿈. 아주 잠시의

꿈.     


차가운 먼지     


죽음의 유혹에서 도망친 새벽을 딛고서,

다시 만난

저녁.     


가로등 빛에 물든 나뭇잎들

위로는,

찬바람에 올라탄

먼지들이

어지럽다.     


선택이든 운명이든

둘 중 하나뿐     


찬 먼지가 되거나

찬 먼지를 보거나     


내일도

바람 속 먼지들의 차가운 춤을

볼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도저히.     


낙엽이 썩은 자리로     


뙤약볕만 머리에 인 개미.

답답한 마음이 서두르는

발걸음은 애써

담담하지만.     


저녁거리 하나 없는 회색 보도블록,

왜 이리도 뜨겁냐. 막막하게 헤치다

잠시 멈춰, 흐르는 건 땀인지 눈물인지

휴... 더듬어 닦아내고.


떨어낸 땀방울 위로 떠오르는

어린것들 주린 배야.

그래. 가던 걸음 다시 재촉.

어찌 못할 모정(母情)이 끌어당긴,


집념의 종착역.

썩다 만 낙엽들 틈새엔 뭔가 있을 테지.

다행이다. 이제야

다리 좀 쉬어볼까.     


빗방울이 내리는 자리     


구름과 작별한 빗방울은

그 내릴 자리를

제 바람(願)대로 할 수 없을 것.

그저 바람(風)이 정하는

그의 마지막.     


구름 속 제 살았던

그 품성 닮은 곳으로

그 모양 기억하는

어느 바람결이

이끄는 것.     


빗속 담배연기로 뱉는

혼잣말.

그 어느 날 나는 어디로 내리려나.

꽁초 가득 재떨이 깡통에 뛰어드는

빗물아. 바로 나구나.     


그래도 기꺼울 테니, 하나만 바라자.

내 알고 아끼는

그 아름다운 모두는

늘 고운 봄 단풍 위에

보시시 맺히거라.     


씨앗은 꽃으로만 피는 것이 아니다.     


도라지꽃이 보고 싶어 사무실 옆 좁은 공터에 반줌 씨앗을 뿌렸다. 한 달이 지난 사이, 비는 예닐곱 번 흙을 적셨고, 햇빛은 스물 하고 서너 날이었다. 도라지 싹은 소식이 없다.     


서운하려다 감사하기로 한다. 굶주린 벌레가 갉아먹은 한 끼 식사였다면, 지나가던 새가 파먹은 간식이었다면, 그래도 그래서 더 다행이다. 눈요기보다 배요기가 더 요긴하니까.     


그렇게, 씨앗은 벌레의 숨결로 새의 날갯짓으로 꽃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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