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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남아빠 Jul 10. 2024

여친이 아내가 되자 내 사랑이 변했다.

** 이 글은 기존에 작성했던 사랑에 관한 글을 연재 글로 옮기면서 수정한 글입니다 **


최근 핫한 연애프로그램에서 한 남자분이 자신의 연애관, 사랑을 이야기한 게 여러 여성분들의 마음을 울렸다고 한다. 뭐 매일 상대와 한 번씩 뽀뽀를 해주며 사는 삶이랬던가.


아내가 들떠서 하는 그 얘기를 멍하니 듣다가 뜬금없이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결혼 전의 사랑과 지금의 사랑이 나에게는 의미가 너무나도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도 상당히 놀랐다. 일단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 이건 분명히 말할 수 있겠는데, 그 사랑의 느낌이 전과 너무 달라졌다. 


결혼 전의 연애는 큰 키워드로는 '설렘'이었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상대방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였다. 

그래서 헤어스타일을 관리하고, 나에게 어울릴만한 옷을 샀다. 운동을 하고 몸을 예쁘게 만들고 어학 공부도 하고. 그 모든 것은 상대가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결혼하고 사랑은 많이 달라졌다. 뭐라 한 두 마디로 표현하기는 힘든데, 굳이 거칠게 요약하자면,

나는 상대를 온전히 사랑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사람인데, 상대를 온전히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영화 장면 중에 '아 이게 지금 내가 생각하는 사랑인 거 같다' 하고 생각이 번쩍 뜬 장면이 있다.


그건 <달마야 놀자>에서 스님이 내 준 문제와 관련이 있는 장면이다. 

'깨진 독에 어떻게 물로 가득 채울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밑 빠진 독을 우물에다가 던져버리는 장면이 있다. 



깨진 독은 우물에 잠기자 물로 가득 찼다. 결혼 후 나에게 사랑이란, 밑 빠진 독 같은 상대를 내 작고 작은 우물에다가 던져 놓은 뒤 그 항아리에 물이 계속 가득 차서 찰랑일 수 있도록 하는 일 같다. 


구체적으로는 항아리에 물이 찰랑거리고 있는 그 상태가 사랑이 아니라, 그 밑 빠진 독이 내 우물 안에서 항상 가득 차 있는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수시로 기웃거리며 확인을 하고 수시로 우물에 물을 더 길어 넣고, 독이 항상 가득 차 있을 수 있게 우물의 모양을 바꾸는 과정. 그 행동과 노력들이 사랑인 거 같다. 


'내'가 아닌 다른 한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건, 생각보다 말 한 두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일이다. 뽀뽀를 하고 서로 손을 꼭 잡고 다니고, 이 모든 것은 사랑의 결과물일 뿐이다. 


진짜 사랑이란 건, 호수 위에 우아하게 떠 다니는 거처럼 보이지만 항상 바쁜 오리의 발처럼, 끊임없이 허덕이며 나를 바꾸려 노력해야 하는 일들이다. 


상대방의 온 세계를 다 끌어안아야 하는 일이고, 상대방의 세계를 끌어 안기 위해서 의외로 친숙하지 않은 나의 세계를 끌어안아야 하는 일이다. 




움츠리고 앉아 손톱 발톱을 깎고 있는 아내의 모습에서, 목이 살짝 늘어난 반팔 티를 입고 나를 보고 웃는 아내의 모습에서, 아기와 장난치고 웃고 있는 아내의 모습에서 '아 나는 사랑하고 있구나' 하고 느낀다.


하지만 그 사랑의 본질은 그 한순간의 장면이 오기까지에 있었던 나의, 그리고 아내의 수 없이 많은 노력들이다. 다만 그 숱한 노력의 순간들 중, 순간이 멈춘듯한 삶의 어느 한 장면에서. '나는 사랑하고 있구나'하고 잠시 음미할 뿐이다. 


아내 하나를 사랑하기도 작고 작은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아이도 사랑하려니 몸과 마음이 정신없이 바쁘다. 그런데 상대의 모든 것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어느 순간 문득 변해있는 나의 모습을 보니, 그래도 꽤 만족스럽다.


나는 아주 거대하게 밑이 빠져 있는 독일 텐데, 그래도 그런 나를 사랑하겠다고 아등바등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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