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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w김정숙 Jul 15. 2024

허무한 꿈

다섯 살 여자아이의 대범한 선택

1960년대 어린아이의 선택은 과감했다.


예순이 넘은 지금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시간을 갖다 보니 입꼬리가 올라가기도 한다.


엔돌핀이 발산되면 이런 기분일까? 좋다.


작은 아이 인생의 파노라마를 이룬 기억들이 한 장 한 장 되살아나서 기쁨과 즐거움만 남겨 줄까? 


슬픔, 부끄러움, 즐거움도 되새김질되겠지!


그 추억 속의 아이를 만나러 간다.      



1966년 다섯 살 여자아이는 작은 섬마을의 소꼴에서 살고 있다.


마을의 큰길은 배가 드나드는 곳 부두에서부터 좌우로 나 있다. 


한쪽은 동편마을 다른 한쪽은 서편 마을로 나있다. 


두 길을 가다 보면 약간 높은 지역 소꼴 마을에서 만난다.


동편길을 가다 보면 왼쪽 위쪽에 학교가 있다.

 

마을의 유일한 위엄 있는 건물이며 명물이다. 


초등학생이 되기까지는 동경하는 곳이다.


어린아이의 걸음으로 한참을 가다 보면 샘터가 나온다. 


동편과 소꼴 마을사람들이 함께 쓰는 공동우물이다.


이곳부터는 남쪽인 소꼴 마을의 시작이다.


남쪽마을 초입에 네 채의 집은 큰길 아래쪽에 위치해있고 아이의 집은 그중에서 마지막집이다. 


아이의 집을 지나서 대여섯 채의 집은 큰길 위쪽에 있다.


부두의 반대편 정남 쪽에는 산과 가까운데 여러 채의 집이 오밀조밀 붙어 있다.


가장 가운데 있는 집, 가장 크고 넓은 기와집, 그곳은 최부잣집이다.     



아이는 왜 그런 약속을 했을까?


아이의 집은 쌀이 없다. 논이 없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논농사를 짓는 집은 부자에 속한다.


부자는 몇 가구 되지 않는다.


섬마을은 분화구처럼 생겨서 가운데 부분만 논이다.

 

논이 있는 집 사람들은 쌀밥을 먹을 수 있다.


아이네는 밭이 조금 있다. 그래서 쌀밥은 아주 특별한 양식이다.


쌀밥은 마을의 애경사 같은 행사가 있을 때나 제삿날에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아이는 쌀밥의 맛은 안다.


쌀밥을 먹으려면 논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손가락을 걸고 말았을까?  

   

아이의 집 앞에는 논이 있다. 


사립문까지 달려 나가면 논이 펼쳐진다. 


그 논의 주인은 최부잣집이다. 


집 앞에 좁은 길과 논을 경계로 도랑이 흐르고 있다.


도랑에는 올챙이, 개구리, 우렁이, 미나리 등이 자라고 있다.

 

아이는 도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는 도랑은 자신이 주인이라고 여긴다.   

  

가끔씩 논에서 일을 하는 최부자 할아버지를 만나곤 한다. 


아이의 시야로 논을 바라보면 광활한 대지다.


대지의 소유자를 부러워하며 바라본다.     




장난에 걸려든 날을 아이는 어떻게 지날까?


그날도 아이는 달음질하여 사립문을 잡고 선다.


눈앞에 넓게 펼쳐진 논을 바라본다.


눈앞에 최부자 할아버지가 보인다. 


할아버지는 논에 심어놓은 벼가 잘 자라고 있는지 살피시는 일을 하고 계신다.


초록빛으로 펼쳐진 벼가 빛나고 있다.


할아버지를 본 아이는 너무 반갑게 인사를 한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응, 우리 수기 인사도 잘하네!”


“헤헤~”


아이는 어느새 할아버지의 말벗이 된다.


할아버지에게는 아이와 동갑인 손자가 있다고 한다.


“너, 우리 집 손자며느리가 되어 줄래? 그러면 이 논은 다 니 거야.”


아이는 쌀밥이 먹고 싶었다.


우리 가족에게 쌀밥을 먹여줄 수 있다는 할아버지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네!”


“그럼, 우리 손가락 걸고 약속하자.”


“네!!”


아이는 손자며느리가 어떤 의미인지 모른 채 논의 주인이 부러워 그만 손자며느리가 되겠다고 약속해 버린 것이다.


아이는 “우리 손자며느리~”라고 할아버지가 웃으며 부를 때 너무 좋았다. 


아이는 부자로 예약된 것이다.


쌀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이유이다.


아이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손자며느리가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아이는 자라서 학교에 갔다.


할아버지는 만나면 언제나 아이를 부를 때 ‘손자며늘아~’했다.


그런데 점점 할아버지가 부르는 그 말이 부담스럽고 부끄러워졌다.


같이 학교에 다니는 손자가 밉기까지 했다. 도저히 친해질 수가 없었다.


아이의 진심은 부자가 되어서 쌀밥을 먹고 싶기는 했으나 손자며느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는 할아버지와 손가락을 걸고 한 약속을 어겨야 하는 부담감이 커졌고, 

그래서 할아버지를 피해 다녔다.


아이가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알고 할아버지는 이후로는 다정한 목소리로 아이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손자는 아이의 고종사촌 동생과 결혼했다.


사촌 여동생이 최부자의 손자며느리가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할아버지 대신 손자는 아이에게 우스갯소리를 한다. 


“너는 할아버지의 손자며느리야!”


아이는 손가락을 걸며 약속한 속마음이 부끄러워 싱겁게 웃는다.     



 -가난한 약속-

최부잣집 할아버지와 손가락을 건다.

쌀밥이 먹고 싶어서

“손자며느리 되어 줄래? 날마다 쌀밥을 먹을 수 있어”

“네, 좋아요!”

“그럼, 우리 손가락 걸고 약속하자!”

“네, 좋아요!”

할아버지와 손가락을 걸었다.

손자며느리가 되기로 

쌀밥이 질리도록 먹고 싶어서.     

철이 들면서 쌀밥보다 중요한 양식을 발견하면서 

약속을 파기했다.

할아버지께서도 돌아가셨다.

이젠 사촌 여동생이 쌀밥을 많이 먹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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