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때 섬마을과 도시의 문화지체 현상으로 가장 많이 변화된 나의 모습은 자존감 저하, 열등감 상승이었다. 섬마을에서는 선생님, 동네 어른들의 칭찬으로 어깨를 세우며 거리를 활보했고, 마을 전체가 듣는 방송을 통해 반공 방첩에 관한 웅변가로 섰으며, 새마을 운동을 실천하는 실천가로 세워졌다. 한마디로 나의 전성기였을까?
여기서 말하는 도시는 서울 사람들에게는 시골로 불리는 소도시임에도 나에게는 너무 큰 세상이었다. 도시에 와 보니 상황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의 성적은 중간 정도 수준에 불과했다. 두 번째 시험에서는 상위권에 가까이 가긴 했지만, 과외를 하며 선행학습으로 열심을 내는 친구들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지리를 알지 못해서 어딜 가든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섬마을 사투리로 인해 친구들의 우스갯거리가 되지 않으려 신경을 쓰다 보니 말은 자동으로 소멸될 지경이었다.
나는 중학생이 되면 나아지겠지 하고 기대를 하며 기도했다. 라디오를 통해 중학교 배정 발표가 되는 날 우리 가족은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방송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온몸이 떨고 있었다. 그러나 중학교 배정이 원하는 곳,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되기를 바랐지만 나의 기대는 무너지고 말았다. 한 가지 희망마저도 깨지고 있었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쯤 걸리는 먼 곳에 있는 사립학교로 배정되었다. 당시 뺑뺑이를 돌려서 추첨을 했는데 운이 없는 손을 가진 것에 대해서도 나의 자존감은 점점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너무 속상했다. 그래서 울고 말았다.
다행히 나의 연약한 자존감이 조금씩 상승되는 곳은 교회였다. 친구가 한번 가보자고 내민 손을 잡은 내 선택은 행운이었다. 친구를 보내준 분의 은혜가 감사할 따름이다. 교회에 가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의 삶이 멋있었기 때문이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대신해서 죽음을 선택한 그 사랑과 우정에 말할 수 없이 감동을 받았고 나도 누군가를 대신해서 의로운 죽음을 죽어야겠다는 마음이 솟구치는 경험을 했다. 너무나 어려운 선택이라는 것을 두고두고 느끼고 있지만 그때는 의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어왔다.
섬마을에는 땔감이 나뭇가지였다. 그런데 도시는 연탄을 사용했다. 연탄에 불을 붙이는 것도 신기했고 연탄을 갈아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연탄 타는 냄새는 콧속으로 자주 들어왔다. 집에서도 동네 골목을 지날 때도 연탄이 타면서 나는 냄새가 있었다. 그 냄새는 밥이 익어가면서 나는 냄새와 섞일 때 환상적인 향이 되었다. 나는 그 냄새가 싫지 않았다. 좋아했다. 부엌에서 연탄아궁이에 가까이 가서 양말을 말리기도 하고 쥐치포를 굽기도 하고 어떨 땐 쫀드기를 굽기도 했다. 맛을 내는데 특효가 있는 향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냄새가 생명을 앗아간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나도 그 냄새로 인해 하늘나라로 일찍 갈 뻔한 일이 있었다.
신체검사를 한다고 통보를 받은 전날은 날씨가 추웠다. 목욕탕을 갈 형편이 안되어서 집에서 목욕을 하려고 준비를 했다. 목욕탕이 없는 집이었고 부엌에서 큰 고무통에 물을 채워서 목욕을 했다. 아주 아주 옛날이니 상상이 되지 않을까요? 물을 끓이고 바람이 들어오는 곳을 막았다. 산소를 차단한 것이다. 어리석고 무지한 행동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목욕을 마치고 옷을 입었다. 그런데 자꾸만 주저앉게 되었다. 그리고 ‘왜 이러지?’ 속으로 생각했다. 온몸에서 힘이 빠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엄마를 불렀다. 그런데 엄마는 내 소리를 못 듣는 것 같았다. 내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들었던 ‘연탄가스 맡고 사람이 죽었다.’라는 말이 머리를 가늘게 스쳤다. 그리고 죽을힘으로 소리를 쳤다. 그리고 쓰러졌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방으로 옮겨져 있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만 늦게 발견되었으면 그만 뉴스에 나올 사건의 주인공이 될 뻔했다. 김치국물을 들이켜고 추운 공기를 마시자 정신이 돌아왔다. 연탄가스 흡입의 사건은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나의 일화 중 하나가 되었다. 그래도 석유보다는 빨리 회복되었다. 그 후에도 내 인생에 한 번 더 연탄가스 중독의 경험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시골과 도시의 차이는 여러 가지로 나를 당황케 했지만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에 비춰 볼 때 필요불가결의 만남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덤으로 살아가니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