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지하실로 망명했다.
나는 세 개의 공간에 산다. 집, 가게, 그리고 지하실!
사실 집과 가게는 하나의 공간이다. 집 한 귀퉁이를 개조해 밥벌이 가게로 쓰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두 공간을 애써 나눈다. 그래야 나에게도 생활과 생존, 가족과 타인, 편안과 노동을 구분할 여지가 있다.
소소한 자의식이라고?
시답지 않은 취향이라고?
사람들아, 비웃지마라!
자의식이든 취향이든, 그런 거라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왜냐고?
그것들 덕분에 나는 지하실에서 살 수 있게 됐으니까!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아주 오래 전에 지어진 단독주택이다. 보일러실과 각종 배관으로 가득 찬 지하실이 있다. 1년 전 이맘때쯤, 하마터면 그 지하실이 물에 잠길 뻔 했는데, 그 안에 있는 거대한 물탱크가 새기 시작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뚜껑을 열 수 있는 물탱크였다. 물을 다 채우려면, 2~3시간 이상 물을 받아야 할 정도였다. 펑크 난 물탱크는 당연히 철거해야 했다. 그런데도 나는 새로운 물탱크를 들여놔야 할지를 놓고 설비업자와 옥신각신했다. 설비업자는 기존 방식대로 물탱크를 새로 설치하자고 했고, 나는 다른 대안을 찾자고 했다.
“사장님!”
설비업자는 나를 그렇게 불렀다.
“지금처럼 사건 사고가 많아 무슨 일이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시대에 물탱크에 물 받아놓고 생활할 수 있게 설비돼 있는 게 얼마나 귀한 경우인데, 그걸 없애려고만 하세요? 아, 물론 물탱크 다시 들여놓는 게 비용은 훨씬 많이 들기는 해요.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말이죠!”
“그럼 뭐가 중요한 거예요?”
“돈 있는 사람들은 지금 자기 집에 방공호 지으려고 안달한다고 하는데, 이 사장님은 참 세상물정하고는 거꾸로 가시네.”
“사장님!”
나도 그를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그 말 아세요?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네?”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별 차이가 없다는 뜻인데요. 세상 난리에 방공호 있다고 뭐 다르겠어요. 고작 물탱크에 물 받아놨다고 죽을 목숨이 살면 얼마나 살겠어요.”
내가 극단적인 예를 들면서까지 물탱크 재설치를 극구 반대한 데에는 사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물탱크 철거가 다 끝났다고 연락받고 확인하려 지하실로 내려간 순간, 나는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너무나도 놀라 심장이 마구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바닥에는 해체된 물탱크 조각들과 각종 연장들이 마구잡이로 널려있었고, 물기도 여전히 흥건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공사 현장 특유의 험하고 너저분한 풍경들이야 어차피 다 정리될 거였다. 그러니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내가 본 것은 현장의 그런 거친 풍경 너머의 또 다른 풍경이었다!
설비 사장님이 보지 못하는 것, 아내도 역시 보지 못할 것, 은밀하면서도 노골적으로 나를 유혹하는, 그래서 기꺼이 매혹당할 공간을 나는 보았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뭔가 문제가 생기면 그때서야 마지못해 내려와 보던 곳이었다. 각종 설비들로 복잡한 곳, 쓸모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기꺼이 외면하는 곳이었다. 그런 지하실에서 나는 다른 것을 보고야 말았다!
마치 장막처럼 버티고 있던 물탱크가 사라지자 지하실은 그동안 숨겨져 있던 원래의 모습을 남김없이 드러내 보였다. 시멘트로 마감된 바닥은 수평이 잘 잡혀있어 평평했고 벽면은 의외로 깨끗했다.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도 제법 높았다. 벽돌을 쌓고 시멘트로 미장한 후 아이보리 색 페인트로 칠한 게 고작인 이 지하실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었다. 하지만 모든 기능들을 보호하기 위해 요새처럼 견고했고, 시간에 두려움 없이 맞설 만큼 완고해 보였다. 지하실 스스로 그랬다. 물탱크의 파편들 너머로, 설비 사장님의 한심해하는 눈빛 너머로, 돌가루 같은 먼지와 메케한 냄새 너머로, 아름다운 짧은 문장처럼, 넘어지지 않는 직립直立을 나는 보고야 말았다.
은총처럼, 지하실이 나에게 나타났다.
아, 여기서 살 수 있겠다!
그래 바로 이거야! 2층 다락방과는 달리 아무도 찾지 않을 나만의 공간! 드디어 찾은 거야!
존재와 망각이 동시에 작동하는 곳!
이곳으로 나는 망명하겠다!
나는 지하실로의 망명을 결정했다. 오래 전부터 예정돼 있던 것처럼 그 어떤 망설임도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또 하나의 결심이 이어졌다.
이제부터 머리를 기를 거야. 꽁지머리를 할 거야!
아내의 반대? 그게 무슨 대수인가!
내가 왜 그 순간 머리를 기를 생각을 했는지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지하실에 사는 남자라면 뭔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사장님! 그럼 이제 이렇게 마감하고 정리합니다! 물탱크는 정말 안 하실 거죠?”
딴 생각에 정신을 놓고 있던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사장님!”
설비업자의 짜증 어린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아, 네! 여기 정리만 좀 깔끔하게 해주세요. 나중에 필요하면 다시 연락을 드릴게요.”
나는 속으로 제발 그럴 일이 없기를 간절하게 소망했다. 설비업자가 다시 몇 마디를 보탰지만 귀에 들리지 않았다.
이제 다시는 이곳에 낯선 이들의 목소리와 발자국이 새겨지지 않기를.
나는 그 불가능의 세계 속으로 이미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지하실은 부엌 밑에 있다. 부엌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바로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을 내려가면 방화문이 하나 있고, 약 20평쯤 되는 지하실 안에는 또 하나의 방화문이 달려 있는 보일러실이 따로 있다. 보일러실 외벽으로는 온수 탱크 하나가 설치돼 있었다. 보일러실과 그 탱크 하나를 빼면 거의 정사각형의 공간이 남는다. 바로 그 공간에 거대한 물탱크가 있었지만, 이제 그것은 사라졌다.
그 자리를 딛고 나의 망명 정부가 들어설 것이었다!
지하실의 단점은 분명했다. 햇볕은 계단까지만 들어왔고, 조그마한 창문이 서쪽과 북쪽으로 나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공기 순환이 원활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큰 단점은 소음이었다. 보일러는 제 일을 하느라 시도 때도 없이 위이잉~ 작동하며 소음을 일으켰다. 그 느닷없는 작동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리고 보일러에서 나오는 물을 빨아올리는 수중펌프 또한 마찬가지였다. 설비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한 멈추지 않을, 아니 멈춰서는 안 될 기능들이었다.
지하실이 지하실처럼 지어졌고 또 기능하는 게 단점이라면 장점 또한 그랬다. 지하실 문은 24시간 열려있지만 24시간 아무도 찾지 않는다. 바닥에 비단을 깔고 천장에 샹들리에를 달아놔도 사정이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지하실은 지하실일 뿐이다. 따뜻한 물이 잘 나오고, 난방이 잘 되면, 곧 생활에 이상이 없으면, 지하실은 더더욱 존재감이 없어진다. 없는 듯 있어야 하고 있는 듯 없어야 하는 게 지하실의 존재 방식이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이다. 있어도 없고, 없어서 없는 채로 살고 싶다. 지하실에서 지하실처럼 살고 싶다. 조용히, 보일러와 펌프 소리에 맞춰 가끔 숨소리나 내면서, 조용히! 아내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조용히, 나 홀로!
조금이라도 더 살려고 지하실을 판다는 설비업자의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살 궁리를 찾아 지하실을 찾고 있는 것을 보면.
나는 그날 이후로 지하실을 쓸고 닦았다. 아마 30여 년만의 첫 청소였을 것이다. 먼지와 쓰레기를 치우고 그 자리에 내 오래 묵은 마음들을 꺼내놓았다. 지하실을 들락거린 날이면 깊은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