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두 번의 의식불명
늦은 밤을 통과하고, 새벽 1시에서 4시 무렵, 아니, 5시쯤인가. 칠흑 같은 어둠을 막 지나고 푸른 새벽이 되기 직전, 내가 움직이는 시간이다.
현재 시각, 4시. 오늘 내가 움직일 시간이다.
유리로 된 출입문 앞에 서서 놀이터를 신중히 살폈다. 놀이터 전체를 한 눈에 볼 수는 없다. 눈은 작고 놀이터는 넓다. 따라서 사각이 많다. 그래서 더 신중하게 보고, 또 들어야 했다. 확신까지는 아니어도 들키지는 않을 것 같아서 시도할만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만 한다.
적어도 지금은 아무도 없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확인삼아 잽싸게 사방을 훑었다. 다행히 아무런 기척도 없다. 서둘러야 한다.
클린하우스까지 일곱 걸음. 플라스틱 통 한 개, 종량제 봉투용 수거통 두 개, 프레임이 시작된다. 종량제 봉투 수거용 두 개, 요일별로 달라지는 수거통 두 개, 캔 고철용 수거통 한 개. 프레임이 끝난다. 음식물 수거통 네 개, 스트리폼 수거통 네 개, 헌옷 수거통 네 개, 병 수거용 마대 한 개. 총 길이 8m. 끝에서 끝까지 열 걸음.
오늘 내가 노리는 것은 의자 두 개다.
빨간 쿠션을 얹혀놓은 빈티지 나무 의자.
낮에 무심한척 살펴본 바로는, 상태 양호!
위치는 맨 끝.
잽싸게 접근한다. 다행히 의자는 낮에 본 그 상태 그대로 놓여있다. 어둠 속 바퀴벌레에게도 들킬 수 없다는 마음으로 한 개를 집어들려는 순간, 뒤통수가 따끔했다. 뭔가에 쏘인 것 같았다. 뒤통수에 손이 가는 순간 나는 쿵하고 의자 위로 쓰러졌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이건 두 번째 의식불명이었다.
첫 번째 의식불명은 아내와의 불화로부터 시작됐다.
3년 전, 아내가 이혼하자고 말했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예상됐던 선언이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내가 말한 것일 뿐이었다. 아내를 쳐다봤다. 아내도 역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아내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그게 당신 대답의 전부야?”
“더 늦기 전에 행복해져야지.”
아내는 찻잔을 사납게 내던지며 일어섰고, 찻잔은 두 동강이 났다. 그녀는 쿵쾅거리며 안방 문을 큰 소리가 나게 닫았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찻잔을 치웠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 역시 찻잔을 내동댕이쳤고, 현관문을 쾅하고 닫고는 집을 나왔다. 파경破鏡이었다. 다만 거울이 아니라 찻잔이었을 뿐이었다.
그냥 걸었다. 목적지는 없었다. 아내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걷다보니 핸드폰도 돈도 없는 것을 알게 됐다. 상관없었다. 공원에서 수돗물을 마셨고, 벤치에 앉아서 전화 통화하는 사람들을 오랫동안 쳐다봤다. 세상은 평온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도 나도 특별히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산다는 게 다 이럴 거라고 생각했다. 이럴 때면 나는 내가 내 깜냥에 비해 너무 많이 배웠다고 후회한다. 다음 생이 있다면, 단 한 순간도 머뭇거리지 않고 육체노동만으로 먹고 살고 싶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 또한 지적인 허영이거나 위선일까? 맞다. 허영이고 위선이었다! ‘다음 생’이라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번 생에서 내가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괜찮다. 다 받아들이자.
저녁 무렵이 되자 나는 터미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랫동안 걸어서 터미널에 도착했다. 들고나는 사람들이 잘 보이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터미널은 시간, 사람 그리고 공간이 있는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도착했고, 출발했다. 많은 사람들이 있다가 없어졌고, 없다가 나타났다. 플러스마이너스 이퀄 제로!
시간에 맞춰 출발하고 도착했다. 어디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터미널의 사람들은 모두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애매하거나 모호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처럼 머무는 자들은 경계를 잃어버린, 흐릿한 족속들이었다.
노숙자인 듯 아닌 듯 묘한 인상착의의 아저씨가 내 곁을 한참이나 배회하더니 옆에 앉고는 씩하고 웃었다. 마치 지금 네가 어떤 처지인지,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안다는 것처럼. 나도 따라 웃었다. 그러자 아저씨는 손에 들고 있던 강냉이 봉지를 내게 내밀었다. 일종의 웰컴 디저트인가? 나는 한줌을 움켜쥐고는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그 아저씨는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심드렁하게 다른 곳으로 갔다. 그가 준 강냉이는 좀 눅눅했다. 아무 생각 없이 먹었다. 한 알에 차 한 대, 한 알에 한 사람을 봤다.
강냉이를 먹었더니 목이 메었다. 물을 마시기 위해 일어섰다. 물을 마시고는 터미널을 빠져나왔다. 나는 내 안에서 모든 욕망이 빠져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가야할 곳도 없었고, 돌아갈 곳도 없었다. 떠나야 할 이유도 없었고 머물러야 할 미련도 없었다. 괜찮았다. 상관없었다. 다시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은 낮보다 어두웠지만, 밝은 곳은 충분히 밝았다. 사람들이 잘 보이는 쪽의 벤치를 찾았다. 내리막 계단이었다. 계단을 밟는 순간 고양이가 난데없이 발밑을 지나갔다. 놀란 나머지 발을 헛디뎠다. 중심을 잃고 계단에서 굴렀다. 어깨와 머리를 바닥에 찧었다.
아, 이렇게 죽을 수도 있구나.....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병원 응급실이었다. 내가 쓰러져서 기절하는 것을 본 누군가 119에 신고를 했고, 그렇게 병원에 실려 온 것이었다. 의사가 와서는 가벼운 뇌진탕 증상이며 수액을 맞고 가면 될 거라고 말했다. 혹시라도 이상이 느껴지면 그때 CT촬영을 고려해보자고 했다. 간호사가 서류를 내밀며 작성하라고 했고, 접수 코너에서 수납을 하라고 했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해서 뒤처리를 부탁해야만 했다.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가 없었다. 아내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다시 깨어보니 아내가 앉아 있었다. 울음기가 가득한 아내의 표정이 복잡해보였다.
“미안해!”
“이젠 괜찮아?”
“응. 괜찮아. 수액만 다 맞으면 가도 된다고 했어.”
“어떻게 된 거야? 하루 종일 뭐 했던 거야?”
나는 자세한 대답 대신 이렇게만 말했다.
“공원 계단을 내려가는 데 고양이를 피하려다가 넘어진 거야.”
나는 아내가 내가 자해를 했다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고양이는 못 키울 것 같아.”
나의 말에 아내는 씁쓸하게 웃었다. 아내는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할 때마다 만나는 고양이를 입양할까 고민 중이었다. ‘옐로’라고 이름 붙인 그 고양이는 여느 길냥이들과는 달리 무척이나 사람들과 친했다. 아내가 멀리서 보이면 달려왔고, 먹이를 주면 마치 강아지들처럼 배를 까고 드러누워 애교부터 부렸고, 아내의 뒤를 쫓아오기도 했다.
“이제 가자!”
“아냐. 좀 더 있다가 가. 수액도 다 안 맞았는데.”
“새벽 4시야. 가서 오픈 준비도 해야지.”
“오늘 하루는 쉬어.”
그러면서 아내는 내게 휴대폰을 건넸다. 휴대폰이 있었다고 오늘 하루가 달라졌을까.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서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잠깐 현기증이 났고 온 몸이 욱신욱신했다.
“가자. 쉬는 건 쉬는 거고.”
나는 아내가 몰고 온 자동차 운전석에 앉았다. 아내는 운전이 서툴렀다. 비 오는 날이나 야간에는 운전을 피했다.
“운전할 수 있겠어?”
“새벽이라 차도 많지 않고 천천히 가면 돼.”
시동을 걸자 FM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영화 <페드라>가 소개되고 있었다. 그리스 고전 비극을 재해석한 장 라신느의 연극을 각색한 1962년 영화였다. 아버지의 새 아내를 사랑하는 아들, 의붓아들을 사랑하는 여자. 운명적이면서 너무도 치명적인 사랑. 금지된 욕망. 아버지와 아들, 연인과 어머니와의 모든 관계가 파탄나자 영화의 마지막에서 아들은 스포츠카 애스턴 마틴을 몰고 계곡을 난폭하게 질주한다.
“그래. 달려. 달리라고! 음악 듣고 싶어? 추방당한 음악 선생의 음악을 들려주지. 바흐가 우리를 배웅해 주는 게 최고지. 요한 세바스찬이 몸소 배웅하신다!”
바흐의 토카타&푸가 F장조.
아들(앤소니 퍼킨스)은 여인의 이름 ‘페드라’를 외치며 더욱 폭주한다. 마주 오는 차를 피하려다 계곡 밑으로 떨어져 죽는다. 새 엄마이자 연인이었던 페드라는 자살을 선택한다.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 17세기의 바로크와 고전주의, 1960년대의 모던. 삶의 비극은 그때의 인생들에게 아무 것도 양보하지 않았다.
3년 전 어느 가을날의 길은 막히지 않았고, 나는 가속 페달을 세게 밟지 않았다. 따라서 새벽길의 운전은 수월했다.
“우리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해!”
아내는 힘없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