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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May 17. 2024

우울조력자

- 발행하고 싶지 않은 글 -


"요즘 우리 히키코모리가 힘들어 보이네."

그가 말했다. 당신은 내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새 학기 안녕을 는 아빠의 문자에 아이가 대답했단다.

"나는 행복해. 다만 엄마가 기분이 좋으면 좋겠어요."

너희들은 내게서 무엇을 보았던 걸까.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우울자는 우울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불안의 파도나 어둠의 물결에 떠밀려 어느 한 구석에 혼자 퇴적되어 있기 마련이므로. 그런지도 모른 채. 어둔 구석에서 버둥대느라 곁을 살펴볼 여력이 .


그렇게라도 변명해두고 싶다.


나의 우울을 다루는 법을 나조차 알지 못한다. 여전히, 도무지 모르겠더라. 우울에 지쳐갈 즈음이면 나를 뭉개버리고 싶었고,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도 온전히 삭제해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변변찮은 하루를 변변한 척 보내느라 마음을 다해 곁에 머무르는 우울조력자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그랬다. 내가 그랬다.


몰랐다. 내가 무수한 형태의 우울 중에서도 대단히 이기적인 우울자라는 것을. 언제나 아프게 하고서야 아프도록 깨닫는 사람이 나였다.



새해를 핑계 삼아 용기 냈었다. 사소한 것이라도 시작해 보고 새들하게라도 달라지고 싶어서. 간절했다. 색을 잃은 나를 채도 높은 으로 점점이 입혀나가고 싶었다. 가족들을 위해서 용기 낼 거라고 했지만 결국엔 날 위한 이었겠지. 



1월. 화실에서 원생들의 작품들로 전시회를 열었고 함부로 전시도우미로 자원했다. 해본 적이 없지만 이번에 해본다면 해본 적이 있는 일이 되는 거니까. 유별나게 좋아하는 그림과 함께 하는 일이니 두려움을 숨겨두고 싶을 만큼 좋았던 게다.


더욱이 경험이 없는 나를 기꺼이 받아준다고 하니 감사했고, 감사함만큼이나 초초했다. 수일을 잠을 이루지 못했고 달콤함만큼 알싸하도록 매콤한 시간을 보냈다.



뭉실뭉실한 시간들을 마무리하고서야 알았다.

난 변한 게 하나도 없다는 을. 


사직을 빌미로 몇 년을 숨어서는 도피 가까운 형태로 시간을 그저 흘려보냈을 뿐이라 것을. 모르는 이의 시선과 마주할 때나 언어를 교환할 때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잊고 싶었던 내 모습 고대로였다. 


많은 이들이 건네오는 따스함으로도 한기가 사그라들지 않았다. 지난날 오래도록 겪었던 위협적인 냉대와 혐오 서린 눈빛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고. 무서웠다. 다시 마주한 변치 못한 내 모습이 섬뜩할 만큼 싫었다.


조금도 변하지 못한 날 보다가, 영원히 변하지 못할 것 같은 나를 보다가. 마지막엔 기어코 내가 참 싫어졌다.



하루종일 두꺼운 점퍼를 입고선 지퍼를 내리지 못했다. 스스로를 감각할 수 없을 만큼 차가웠다. 손도 치아도 들들 떨렸고 다시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한참을 뜯기고서야 알았지만.


별 것 아닌 그 일에 무슨 용기씩이나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우울'은 그 단어의 생김새만큼이나 이상한 것들의 조합으로, 감히 합리적인 이해를 바라면 안 된다. 그것이 내가 아는 우울의 전부이다.


그렇게 현현했던 시간들을 마무리하고 나서는 허수한 시간이 찾아왔다. 기어코 버렸다고 생각했던 나의 단면을 고스란히 다시 마주한 시간. 사회적으로 버려진 듯한 무용함과 스스로에 대한 절망감.


그럼 다시 숨어야지.



한동안 가족들과 긴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어려웠다. 오랜 시간 울지 않고 견디는 일이 어려워서. 미소를 머금은 채 이야기를 잘 듣다가 이유 없이 눈물이 굴러 떨어지고 마니, 나조차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는 동 우울한 이기주의자는 감히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를 사랑하는 당신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는 , 당신에게도 편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과연 나도 모르게 나만 생각했던 거지.



요즘 괜찮냐고 여러 번 물어오는 그에게 예사스러운 척 웃으며 말을 내다 눈물을 삼키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 내 하나도 도움이 안 되네."

무참히 고개를 떨구는 그의 모습에 후회했다.


당신은 내가 볼 수 없는 곳에 숨어 곰삭힌 불편함을 혼자 꿀꺽꿀꺽 삼켰을 테지. 커다란 짐을 등 뒤에 숨겨두고 언제나 다정함만 둘러주는 우울조력자의 그렁한 모습을 마주하고선 몹시 후회했다.


어쩌면  역시 다른 방식으로 당신을 함부로 대한 것은 아닌지. 나도 마지막 순간에는 당신의 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무서운 사람이었구나 하고는 깊이 후회했다.


스스로 고립시켜 혼자 보냈던 탓일까, 그간 내 안에 욕심이 늘었던 모양이다. 욕심꾸러미는 어찌나 탄성이 좋은지 갈수록 커다랗게 부피를 더해 어느새 내 안에 묵직하게도 자리 잡았더라.




우울한 히키코모리 유일한 최선 산책이었다. 


아무것도 흘러나오지 않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선 슬프면 슬퍼서 나갔고 괜찮아지면 괜찮으니 나갔다. 비가 오면 비를 맞으러 나갔고 먼지로 희뿌연 날은 산책로가 한산할 거라며 구실을 만들어 나갔다.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최선이었으니까. 

그마저 하지 않는 무책임함은 용납할 수가 없었다.



오늘은 싱그러운 비누향이 스친다. 고개를 들어 보니 눈부시도록 희끗한 머리칼을 가진 어르신의 넉넉한 등이 보였고. 그 손을 잡고 천천히 함께 걸어가는 당신의 동반자. 그의 등 위에 얹어진 가방 으로 고개를 내민 라켓도 보인다. 그러다 라켓 손잡이를 감싸고 앉은 인형의 눈과 예고 없이 마주쳤다.


하릴없이 웃을 수밖에.



언젠가 세월을 무사히 건너 당신의 시간 즈음에 도착한다면, 나도 당신처럼 옷자락마다 빳빳한 비누향을 풍기며 내 곁의 우울조력자와 손을 잡고 말없이 누군가의 고개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욕심을 부려, 예상치 못한 당신의 인형처럼 귀여움마저 한아름 가졌으면 좋겠고. 그것으로 잠시라도 누군가를 무장해제시키고 슬픔 따위의 것들을 명랑함으로 극복할 수 있는 조구마한 깨달음을 전할 수 있으면.


조금 더 탐을 부려 본다면, 불편함을 헤아리지 않고 천천히 걷는 여유로움과 그 걸음만큼 속도를 덜어낸 말의 리듬, 상대의 말을 고대로 담아낼 수 있는 커다란 귀와 초롱함을 잃지 않은 눈동자마저 가졌으면 하고 바란다.


내가 마주한 당신들의 유여하고 너눅한 뒷모습처럼 그즈음 나도 나의 우울조력자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싶다. 무사히 이 시절을 건너온 우리의 뒷모습이 감히 아이들에게 슬픔이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본다.



이 정도면 이기적인 우울자가 아니라, 탐욕스러운 우울자 아닌가. 이렇게나 심이 많으니 준비할 시간도 많이 필요할 테지. 벌써 마음이 초초해지는구나.

천천히 준비해 볼까. 그리고 다시 용기도 내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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