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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Sep 20. 2024

우울조력자의 요건

- 비밀한 우울자의 보은 -


휴지통에 아깝게 닿지 못한 약봉지 반쪽, 설거지통에서 초로 헤엄쳐 벽에 덕지덕지 붙어 살아남은 음식잔여물, 화장실의 가느다란 줄눈 사이사이야무지게 자리 잡고 냄새를 풍기는 진득한 노폐물들.


십 년이 넘도록 강약을 거듭하며 수없이 이야기를 나누었음에변치 못한 상대의 습관들을 언제고 마주한다.


그럴 때면 상대가 여러 번 언질을 주었음에도 불변한 나의 조각들을 떠올린다. 고치려고 으밀아밀 애를 썼든, 무심코 신경을 쓰지 못했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편한 장면 예고 없이 그리고 반복적으로 마주했 나의 마음과 같이, 나로 인해 울연했을 상대의 마음을 가늠하는 일. 애면글면 온 힘을 쏟았음에벗겨내지 못한 지독한 내 모습을 떠올린다.





"네가 계속 이러니 나도 우울해지네."

"네가 하고픈 것만 하면 돼, 어려워?"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어쩌다 터져 나오는 당신의 마음풍선 속 갑갑한 공기는 뜨거웠고 꿀꺽 삼켜내기 버거웠다. 내겐 더 이상 도망갈 곳이나 숨을 공간이 없었다. 집에서도 결코 미소 가면을 벗어서는 안 된다고 수도 없이 되뇌었지만, 그러기에 가면 뒤 공간은 몹시도 어둡고 갑갑하고 축축했다.




나는 우울자의 곁에 머무르는 우울조력자의 심정을 감히 알지 못한다. 


하필 매 순간이 행복하다 말하는, 즐거움에 내성이 없는 것만 같은 당신 곁에 내가 있을까. 온 마음을 다해 다정하고 달콤한 것들을 전해오다가도 본인조차 버거운 때가 오면 날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결같은 나의 우울이 당신이 돌돌 뒤집어 벗어둔 양말 정도의 해묵은 습관으로 비치길 바랐는데, 그러지 못했고. 나 또한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세상으로부터의 단절감나 가족이라는 안온함 때문인가, 가면을 쓰는 일에 헐거워지곤 했다.


그럴 때면 스멀스멀 가면 밖으로 우울이 번져 나와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물들였고. 흐물흐물 눅진해지는 가족들을 보며  마음을 힘껏 다잡아 가면을 다시 쓰곤 했다.



가족 때문에, 집에서도 단단히 미소를 여미고 맘을 잡고 있어야 하는 일이 고단할 때가 많았다. 그럼 가족들이 모두 잠들기를 기다렸다 나와 가면을 벗어던지고 지친 몸을 한 귀퉁이에 던져놓고 마음마저 놓아버리곤 했다.


그리고  가족 때문에, 긴 우울의 터널을 악착같이 지나고 있다. 어떤 날은 천천히 걷다가, 다른 날은 뜀박질을 하고, 많은 날은 절절 기다가, 여러 날은 그 자리에 멈춰있지만. 한 해를 기준으로 헤아려본다면 분명 나아갔다.


가뿐히 정진했든 울며불며 기어갔든 최선을 다해 통과하는 중이라는 것. 우울자에겐 그것이면 충분했다.


살아가는 일의 구 할은 가족 때문에. 가족이라는 이름을  우울조력자 덕분이었다. 


의도치 않게, 그들이 벌이는 격렬한 일상의 소용돌이 속으로 떠밀린 바람에 우울의 늪에서 틈틈이 건져진 것일 수도 . 의도적으로, 그들이 면밀하게 나를 살피어 엮어낸 우울포획의 덫에 내 우울 조각들이 점점이 포획된 지도 모르지만.


혼자였다면, 그 고달픈 가족이 없었다면, 밤낮으로 곁에 상주하는 우울간병인이 없었다면, 난 기꺼이 우울터널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까마득히 숨어 마음을 버리고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그곳을 헤쳐 나오는 일보다 훨씬 간단하고 쉬운 일이라는 것을 아니까. 





나의 우울조력자는 셋. 자발적으로 자원한 이는 없다. 경험도 없전문성과 같은 것들은 결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들에겐 오직 간절함이나 사랑과 같은 것들만 그득한데, 우울조력자에겐 이것만이 유일한 조건이다. 


아무것도 해줄 필요가 없고 아무 말도 필요 없다. 사랑은 모든 감각으로 전해오므로 우울에 흐물흐물해져 신경세포가 온통 밖으로 뻗어 나온 우울자에겐 그들이 전해주는 사랑, 그것이면 족했다. 아니, 그들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했다.



오늘도 나동그라진 반쪽짜리 약봉지를 주워 휴지통에 정히 넣, 돌돌 말려 던져진 양말을 펴선 세탁기를 돌린다. 세수를 하기 전에 화장실 줄눈 사이사이를 청소하고 나서, 미소 가면을 쓰고 산책을 나간다.


이제 우울터널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갑갑한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되는 때가 가까워지고 있. 그러니 오늘도 허리를 꼿꼿이 펴고 다부지게 터널 안을 걸어가 보겠다고 소리 없이 용기를 내고 잠잠히 문을 연다.



소중한 나의 우울조력자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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