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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Jun 30. 2022

9 day : 너도 이 나이 먹어봐

쉼을 위해 걷습니다

대학생 시절 개봉하여 사회적으로도 꽤나 파격적이었던 영화 '은교'의 내용 중 배우 박해일 씨의 대사가 떠오른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소위 말하는 '소싯적'은 성장이 끝나는 시기이지만
체력적인 면에서 가장 왕성하고도 활력 넘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뒤엔 노화가 시작되어 신체 장기의 기능과 활력이 떨어진다.


나의 소싯적에는 새벽 5시까지 음주가무를 즐겨도 지치지 않았었더랬다.

그리곤 왁자지껄한 그곳에서 집까지 1시간여를 걸어가기 일쑤였다.

그런데 지금은 저녁 10시만 돼도 피곤해지고
자정을 넘어서까지 밖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귀가 방법은 걷기는커녕 무조건 택시행이다.) 




체력이 줄어듬은 한 단계씩이 아닌 가속도가 붙어 전속력으로 향하는 기차 같았다.

30대 초반에 들어선 나는 슬슬 앞으로가 걱정되기 시작됐고,
40대가 되고 나서의 모습과 그 이후에 노년을 보내는 나의 모습을 그려보게 되었다.

그동안 건강관리를 하지 않고 미용상 모습에만 치중했던 나를 보고 있자니,
늙음은 내 잘못이 아니지만 건강치 못함은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하지 않고 얻었던 상,
그 상의 의미와 가치를 몰라보고 내다 버린 기분이었다.




걷다 보니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은,
내가 매일 아침마다 걷고 있는 이 공원에는 겉보기에도 나보다 훨씬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었다.


이 분들은 젊었을 때부터, 아니 내 나이 때부터 걷기 시작하셨을까?

얻었던 상의 가치를 처음부터 알아보고 꾸준히 관리하셨던 걸까?

아니면 나처럼 내다 버린 상의 가치를 깨닫고 늦게서라도 노력하고 계신 걸까?

머릿속 많은 질문들이 스쳐 지나가며 얻은 답은 한 가지였다.


이 분들이 언제부터 어떤 마음으로 걷기를 시작했던지 간에

가장 빠른 결심을 하는 순간은, 바로 지금이라는 것.

어떤 일에서건 마음먹은 그 순간이 내게 가장 빠른 결심의 순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를 먹고도 꾸준하게 관리하시며 나와 함께 아침을 열어가는 순간이 고맙고 든든해졌다.

(물론 그분들은 나를 모르지만 괜스레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내가 소싯적엔 엄청 체력도 좋고, 건강했더랬지. 너도 이 나이 먹어봐. 몸이 예전 같지 않을걸."

상을 내다 버리던 이전의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걸어가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졌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 몸에 성치 못한 곳들이 생기더라도 예전 같지 않음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나를 돌봐주기로 했다.


"이 나이 먹어봐, 이때까지 열심히 나를 돌봐준 내가 고맙고 자랑스러워져.

그러니 자네도 지금 시작해봐."

40년 뒤인 나의 70대가 되어하고 싶은 명언(라테 타령) 버킷리스트가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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