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제 Jul 04. 2022

10 day : 날마다 새로운 똑같은 길

쉼을 위해 걷습니다

초여름에서 여름이 완연해져 갈 무렵, 나는 걷기 시작한 지 어느덧 한 달 하고도 절반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동안 걸으며 주변을 살피기도 하고 하늘을 보며 걷기도 하고 함께 걷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나는 매일 조금씩 우상향을 그려가며 체력이 느는듯했고 걷는 속도나 거리가 빨라지거나 늘었다.

그렇게 새로운 기분을 느끼며 나름 만족의 곳간을 채워 놓고 있을 때였다.


내가 쉼을 위한 걷기를 실천하고 있단 소식을 들은 나의 지인이 물었다.

"매일 똑같은 길을 걷기도 지겹지 않아? 걷기 좋은 산책로를 찾아서 돌아다니는 것도 좋을 텐데. 추천해줄까?"

나는 단번에 거절했다.


일단 아침 일찍 일어나 집 앞 산책로로 나서는 것이 편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에겐 지인의 말이 전혀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똑같은 경로걷고 있었지만 매일 똑같은 길은 아니었다.

어느 날에는 하늘의 색이 다르고, 또 어느 날에는 풀들이 자라난 모양새나 종류가 달라지기도 했다.

또 다른 날에는 오며 가며 걷는 사람들이 달라지곤 했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게 처음이라 신기한 어린아이처럼 내가 걷는 길의 모습 또한 늘 새로웠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윤여정'씨의 인터뷰 중의 내용이다.

"나도 67살은 처음이야. 알았으면 이렇게 안 살지."

"인생이 처음 살아보는 거기 때문에 아쉬울 수밖에 없고 아플 수밖에 없고 계획을 할 수가 없어."


윤여정 씨의 말은 오늘 하루는 누구에게나 처음이기에 서툴 수 있고, 계획처럼 되지 않을 수 있으니 실패와 계획처럼 되지 않음에 너무 낙심하지 말자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처음이기에 새롭게 느껴지는 그 무언가가 오늘 하루를 채운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나 역시도 오늘이 처음이고, 내일이 오게 되면 내일이 처음인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내일이 처음인 나의 쉼터이자 걷기 공간인 산책로가 기다리고 있다.

늘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변치 않음도 아니고 지겨움도 아니다.

'날마다 새로운 똑같은 길'이 펼쳐져 있다.




물론 오늘의 이 길은 내게 처음이기에 조금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낯선 긴장감이 주는 설렘도 공존하기 마련이다.


처음이 주는 설렘도 좋고,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도 좋다.

그리고 익숙함 속 날마다 새로워지는 풍경과 나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계절이 지속됨에 따라,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우리의 삶과 주변의 풍경들은 조금씩 변한다.

아무리 따분하고 똑같은 일상이라 할지라도 오늘이 처음인 내게는 언제나 새로운 것들이 다가온다.

첫 발을 내딛기 힘든 그 순간을 한 번만 넘고서 내게 기대로 다가올 매일의 하루를 선물처럼 받아보자.


이전 09화 9 day : 너도 이 나이 먹어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