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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로 걷기 Oct 02. 2024

아주 오래된 기억의 소환

누이 생각

농촌 살아보기에 함께 참가 한 J는 사업을 하다 방향전환을 고민 중인 30대 끝자락의 반듯한 청년이다. 나와 나이차가 있어 처음에는 서로 어색했으나 시간이 지나고 같이 여러 활동을 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졌다. 


J가 농촌살이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숙소와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누나 집에 놀러 왔다가 농촌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가해 보면 어떻겠냐는 누나의 제안을 듣고 참여를 하게 되었다 한다.


마침 농촌 살아보기 프로그램 중 ‘선배와의 만남’ 시간에 J 누나의 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거기서 J 누나 부부가 상주에 정착한 이야기 등을 들을 수 있었는데 참 고운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느낌울 받았다.


J 누나 집은 농촌살이 숙소에서 차로 3~4분, 걸어서 20분 넘게 걸리는 마을 꼭대기에 있는 곳이었는데 저녁 식사시간이 되면 J 누나가 차를 타고 와 J를 태우고 집으로 가 함께 저녁을 먹고 다시 데려다주곤 했다.


매일 저녁 혼자서 밥을 해 먹던 내게는 무척 부러운 모습이었다. 해질 무렵, 가끔씩 유산소 운동을 위해 숙소부터 J 누나의 집 근처까지 뛰어올라가곤 했는데 그곳에 가면 다른 모습의 J를 볼 수 있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J 누나 부부는 고양이를 15마리 넘게 돌보고 있는데 누나가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 매형과 함께 고양이들과 장난을 치는 J의 표정이 평소 조금 어두웠던 것과 달리 밝고 행복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숙소 앞 주차장에서 J를 데리러 온 J 누나와 마주쳤다. 인사를 나누고 J 누나가 J를 데리고 가는 걸 멍하니 바라보다가 순간, 아주 오래전 내 누나와의 기억 한 장면이 떠올랐다. 




가정 형편으로 누나, 나, 동생 등 가족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어린 시절, 누나는 가끔 내가 살고 있는 집 혹은 학교로 찾아오곤 했다. 3살 터울인 어린 동생이 보고 싶기도 안쓰럽기도 했던 것 같다. 


늘 가족이 그리웠던 내게 누나가 찾아오면 너무 반가워 뛸 듯이 기뻤지만, 짧은 만남의 시간이 지나고 헤어지고 나면 그동안 눌러놓았던 그리움이라는 후유증으로 며칠을 앓아야 했다.


중학교 1학년이던 어느 날, 누나가 학교 앞에서 만나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상고를 다녔던 누나의 학교 근처 언덕길을 올라 좁은 골목 안 허름한 주택 한 편의 작은 방과 부엌이 있는 자취방이었다.


처음 가보는 누나의 자취방에서 누나는 서툴게 밥을 지어 상을 차려주고 미리 사놓은 과자도 꺼내 주었다. 설익은 밥이었지만 누나의 정성이 가득 담긴 한 끼에 감동해 목이 메가며 한 그릇을 다 비웠었다. 


참 오랜 세월이 지난 일인데..., 아마 J 누나가 J에게 저녁을 해 먹이기 위해 데리고 가는 모습이 데자뷔처럼 그때 내 누나가 나에게 밥 한 끼를 해 먹이기 위해 자취방으로 데려가던 모습과 오버랩되지 않았나 싶다.




J 누나는 다른 사람을 잘 챙겨주어 마을 사람들이 ‘배려의 아이콘’이라 부른다 한다. 그런 J 누나이기에 언젠가 한번 동생과 함께 농촌 살아보기 중인 우리를 식사 초대라도 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전혀 그럴 기색이 없어 보여 한번은 내가 J에게 지나는 말로 “누나가 우리 언제 저녁 한 번 초대 안 한데?”라고 했다. 그러자 J가 겸연쩍어하며 누나가 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J 누나는 농촌살이 참가 중인 나와 C 교수님께 식사 대접을 한번 하고 싶지만, 남편이 건강이 안 좋아 식이요법을 하고 있어 손님을 초대하지 못하는 입장이라 미안한 마음이라 했다.


괜한 얘기를 해 J에게 미안했다. 그런데 사실 내 속마음은 J 남매를 보고 내 누나 생각이 나서 밥이라도 한 끼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반대로 내가 식사를 하자고 J와 J누나를 초대했다.


고맙게도 내 식사제안에 응해 주었고 약속한 날 저녁, 내 차로 J 남매가 맛있다고 추천한 식당으로 갔다. 가는 길에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에 내 누나 생각이 나서 식사를 한번 하고 싶었다고 초대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내 누나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누나와는 한 지붕아래 또는 가까이에서 얼굴을 보며 살 운명이 아니었 던 것 같다. 서로를 그리워하던 남매는 우여곡절 끝에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떨어져 산지 6년 만에 함께 한 집에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누나가 얼마 지나지 않아 지방 사범대에 입학하고 그곳에 거주해 실제로 가족이 함께 산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고, 또 대학 졸업 후에 결혼을 하고 교사로 먼 곳에 근무하며 사는 누나를 거의 볼 수 없었다. 


더구나 9.11 테러가 있던 2001년에 누나가 갑자기 사직을 하고 홀연히 아이 셋을 데리고 더 먼 곳 미국으로 떠났다. 언젠가 가까운 곳에서 오누이의 정을 나누며 살고 싶었던 나의 오래된 꿈이 사라져 버렸다.


미국으로 간 누나는 40이 넘은 늦은 나이에 간호대에 진학을 했다. 약 처방 때문에 약 이름을 외우느라 1년 휴학을 할 정도로 힘들게 공부했지만 아이들 양육을 위해 안정적이고 보수가 좋은 간호사가 되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 한 후 간호사로 일하던 누나는 다시 의대에 가서 50대 중반 가정의학과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작년까지 바쁜 의사 생활 중에도 공부를 계속해 정년이 긴 정신과 의사 자격까지도 취득했다. 


아이들에게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본인의 꿈을 실현하겠다고, 평범한 일상을 깨버리고 위험을 감수하며, 소설에나 나올만한 믿을 수 없는 인생을 살아온 멋진 누나가 자랑스럽다. 


어릴 적 불쌍한 사람을 지나치지 못했던 누나는 이제 의술로 나눔을 실천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게는 지금의 훌륭한 누나보다 어린 시절 동생이 보고 싶어 찾아오던 애틋한 마음의 누나가 더 그립다. 




농촌살이가 끝날 무렵, J의 마음이 시골에 정착하는 쪽으로 기운 것 같았다. 지내보니 각박한 도시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 것보다 욕심을 버리고 누나로 인해 연고가 생긴 상주에 사는 것이 낫다고 느낀 듯했다. 


가족 간 정서적 거리조차도 멀어져 가는 요즘, 가까이에 따뜻한 마음의 누이를 둔 J가 부럽다. 내게  오래된 소중한 누나와 기억을 소환해 준 J와 J 누나가 오누이의 정을 나누며 오래오래 행복하기 바란다. 


그리고 늘 동생의 안위를 걱정하며 노심초사하던 하나밖에 없는 나의 사랑하는 누나가 어디에 있든 건강하고 행복한 날들을 보내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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