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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로 걷기 Sep 25. 2024

마음을 비우니 이쁜 꽃들이 다가왔다.

지금 행복하자.

“꽃구경 한번 제대로 가보지 못하고 내가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어요.” 고추 따는 농가에 가서 일손 돕기를 하던 중 반대편 고랑에서 고추를 따던 60 넘은 밭주인 농부의 아내가 푸념처럼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식들 다 키우고, 경제적으로 부족함도 없는데, 해마다 올해까지만 농사를 짓자고 하는데... 매년 키우는 작물과 농사 규모는 오히려 늘어만 가네요. 작년에 허리 수술도 하고 무릎, 어깨 등 성한 곳이 없는데... 


고추 따는 내내 험했던 시집살이부터 아이들 키워낸 이야기들까지 듣고 나서야 내가 왜 농사일을 놓지 못하느냐고 물었다. 수확 후 만지는 목돈과 손주들 용돈 주는 맛에 습관처럼 밭으로 나온다는 답이 돌아왔다.

   

당신 땅이라고 자랑하는 논, 밭 주변에 여러 종류의 이쁜 풀꽃들이 만개해 있고, 고추 온실 옆 작은 텃밭에 백색, 보라색 도라지 꽃이 눈에 띄게 아름답게 피어있는데 언제, 얼마나 더 이쁜 꽃들을 보러 가려는 걸까?


고추온실 옆 텃밭에 핀 도라지 꽃들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속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라는 시구처럼 꽃이 이쁘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자세히 보아야 하고 자세히 보기 위해서는 온전히 꽃을 보는 것에 집중을 해야 한다.      


퇴직을 하고 1년간 비워내기를 했다. 34년 넘게 열심히 살아온 내게 적어도 3년 정도는 작은 욕심들을 버리고 하기 싫은 것, 해야 할 것이 아닌 하고 싶은 것만을 하며 살 수 있게 해 주기로 했다.      


마음을 가볍게 하니 농촌 살아보기도 집중을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이야기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일 수 있었고, 어딜 가도 풍광이 좋은 곳에서는 멈추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천천히 음미할 수도 있었다.    

  

산과 강 그리고 농촌의 들녘 등 가는 곳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꽃들이 날 멈춰 세웠다.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제철은 맞은 능소화들이 나지막한 담장 위로 우아한 자태를 마음껏 뽐내는 모습들이었다.  

                

도담마을 길가에 핀 능소화
운곡마을 담장에 핀 능소화
승곡마을 주택 옆 능소화 


길거리와 마을에 제멋대로 핀 꽃들도 이쁘지만 귀농귀촌 선배들 집 정원 등에 잘 가꾸어 놓은 꽃들도 아름다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승곡 마을 윗동네 쌍둥이네 집 정원과 직접 가꾼 50여 미터에 이르는 마을 꽃길이었다. 쉽지 않은 일임에도 꽃이 주는 기쁨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마음이 꽃처럼 아름답다.

        

승곡마을 제일 윗동네 쌍둥이네가 가꾼 아름다운 야생화들 


농촌에 산다고 모두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즐기며 사는 것은 아니다. 또 경제적으로 넉넉해야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것에 만족할 줄 알고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 같다.  

 

방문을 했던 귀농귀촌 선배들 집 중 오래된 작은 농가, 연세로 임차한 농가, 무료로 임차한 농가도 있었지만 그들의 작은 정원들은 꽃들이 만발했고 그 꽃들을 가꾸며 행복해하는 그들은 풍요로워 보였다.     




‘사람들은 각자의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는 봄날을 기다린다.’      


그날이 이미 지나갔거나 오지 않을 수도, 이미 와 있을 수도 또 기다리는 것처럼 오고 있을 수도 있다. 그게 언제든 내 발로 걸어가서 볼 수 있는 들꽃 한 송이가 행여 건강이 나빠지거나, 노쇠해서 병실에서 받는 수 십 송이 꽃들보다 훨씬 아름다울 것이다.     


‘봄날이 오기 만을 기다리기에는 불확실하고 길지 않은 것이 人生이다.’      


젊었든, 늙었든, 많든, 적든 조금만 비워내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오늘이 꽃을 보기 제일 좋은 봄날이다. 시간을 내어 꽃구경을 가서 보는 들꽃들도, 직접 정원에서 키워 낸 야생화들도 그리고 오가며 잠시 멈추어 보는 길가의 풀꽃들조차도 언제일지 모르는 인생의 봄날 볼 수 있는 꽃들보다 아름답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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