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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로 걷기 Oct 09. 2024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시골살이를 하려는 이유 중 하나

나는 누추하지만 집으로 가까운 사람들을 초대하는 걸 좋아한다. 음식을 준비하는 번거로움에 집사람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같은 시간을 보내도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친밀감이 서로의 마음을 열게 하기 때문이다.


아마 어린 시절 친구의 시골집을 몇 번 놀러 가 가지게 된 따뜻한 기억이 만든 성정이 아닌가 싶다. 6년 전 이사 온 세종 집에서도 멀리서 나를 찾아온 친구나 지인들을 집으로 오라 해 식사 한 끼를 함께 했다. 


예전에는 결혼 후나 이사 등에 집들이라는 이름으로 초대를 받거나 초대해 집도 둘러보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거나 초대받는 문화는 사라져 가고 있다. 


요즘은 같은 취미 등을 공유하는 경우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이러한 추세의 중심에 있는 MZ 세대는 저녁에 사무실에서 회식을 하는 것도 업무의 일환으로 여겨서 참석을 꺼린다 한다.


그런데 내가 개념 없이 몇 해 전 주로 MZ 세대인 사무실 직원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단지, 오래전 존경하던 상사 집에 초대받아 식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추억을 직원들에게도 남겨주고 싶었다.


걱정했지만 직원들 모두가 초대에 응해줘서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이후 각각 다른 부서에 근무를 하게 되었어도 그때 집에 왔던 직원들과 마주치면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어 고맙다 한다.




내가 시골살이를 하고 싶어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가까운 지인들이 지금 살고 있는 도시의 아파트가 아닌 시골에 마련할 집에 방문했을 때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텃밭에 키운 식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개울가에서 물놀이와 고기잡이도 하며 동심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주변 자연을 즐기며 산책도 하고 차를 마시며 정감 있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안식처로 만들고 싶다.


이번 농촌 살아보기를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나갈 무렵, 시골 생활이 좀 익숙해져 SNS로 내 동정을 알렸더니 여러 지인들이 상주에 와보고 싶다며 연락을 해왔다. 그중 일정이 맞는 몇 사람이 방문을 하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시골살이를 위해 요리학원에서 배워둔 실력을 발휘해 맛있는 음식들을 만들어 대접하고 싶었으나, 내 집이 아니라 양념과 식재료 등이 준비되지 않아 그동안 다녀보았던 맛집으로 안내하기로 했다.


짧은 일정이라 머물며 여러 가지 시골생활을 함께 즐길 수는 없지만,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보내게 하지 않으려 방문할 지인들의 기호에 따라 즐길거리, 볼거리 등의 스케줄을 짜고 미리 답사를 했다.




가장 먼저 은퇴 전 직장 후배들 7명이 방문했다. 모두 테니스를 함께 하던 후배들인데, 억수 같은 비가 내리는 시간에 도착했지만 상주 실내 테니스장을 빌려 빗소리를 들으며 재미있게 테니스 게임을 했다.



운동 후에 낙동강변에 있는 상주주막에서 막걸리 한잔에 파전과 시그니처 메뉴인 비빔밥을 대접해 주고, 경천섬, 자전거박물관, 도남서원 등 상주 명소들도 구경시켜 주었다.


마지막 일정으로 숙소를 보여주고 촌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씩 했다. 돌아가는 길에 일손 돕기에서 얻어 온유기농 토마토, 가지, 대파 등을 한 봉지씩 안겨주었더니 마치 고향 집에 다녀가는 것 같다고 좋아한다.


그다음 주는 대학 친구 부부 2쌍이 1박 2일로 찾아왔다. 일찍 온 부부와 인근 문경새재를 트레킹 하고, 늦게 합류한 부부와 모두 학 전망대에서 노을 지는 낙동강을 조망하고, 들꽃들이 만개한 경천섬을 산책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미리 준비해 놓은 장작을 피우며 요즘 유행하는 불 멍을 하였다. 불 앞에 둘러앉아 맥주를 한 잔씩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꽃과 웃음꽃을 피우니 날이 바뀐 줄도 모르게 시간이 흘러간다.



다음날 상주의 주요 명소를 안내하고 점심을 먹은 후, 상주전통시장을 둘러보고 헤어지기 전 제철 복숭아 한 박스씩을 안겨주었다. 모두 짧지만 기억에 남을 즐거운 여행이었다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며칠 후에는 안동에 사는 오래된 친구가 방문했다. 그동안 안동을 여러 차례 방문했어도 구경을 다니느라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할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 저녁을 먹고 숙소에 둘이 마주 앉아 풀벌레 소리 들으며 밤늦게까지 함께 한 추억과 살아온, 살아갈 이야기들을 나누니 마음 곡간이 채워지는 듯 풍요로워졌다.




공자는 논어에서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라고 했다. 그런데 멀리 찾아오는 곳이 사람 그리운 시골이라면 그 기쁨은 도시에서 보다 더 클 것 같다.


아직 시골에 정착하지 않았기에 사람들을 내 집에 초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지인들이 나를 찾아와서 함께 유쾌한 시간을 보낸 것은 앞으로 내가 시골살이에서 누리고 싶은 즐거움을 미리 느껴 본 것 같다.


행복은 물질적, 정신적으로 무언가 채워질 때 느껴지지만,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 나눌 때 느끼는 행복은 더 각별한 것 같다. 먼 곳에서 나를 찾아와 그런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벗들이 있으면 어찌 즐겁지 않을까.


더구나 번잡한 도시보다 자연과 함께 하는 시골에서의 만남은 마음의 문을 더 활짝 열고 서로를 마주 볼 수 있게 해 준다. 그 매개체 역할을 해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내가 지금 꿈꾸며 준비 중인 시골살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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