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가 장르로 정착하여 대중에게 어필한 지 백년이 넘었습니다.
한 세기 전 재즈 연주는 어떠했을까요? 악기는 어떤 게 우세하였을까요?
Jazz Instruments
초기재즈(전통재즈, 딕시랜드, 뉴올리언즈 등) 그리고 이후 피아노는 랙타임을 거쳐 재즈의 중요한 악기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베이스와 드럼은 리듬 악기로 계속 존재합니다.
반조의 자리는 기타가 차지합니다. 혼 섹션에서는 트롬본이 색소폰 혹은 트럼펫에 뒤지지 않습니다.
1940년 초중반.
스윙을 넘어 젊은 뮤지션들 사이에서 새로운 연주 방식이 제시됩니다.
그중 버드라 불리는 알토이스트 찰리 파커의 코드 전개 방식이 비밥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 시점에서 색소폰이 트럼펫보다 상대적 우위에 놓이게 됩니다.
트롬본은 이미 저만치 나가 떨어져 있습니다.
트럼펫이나 색소폰처럼 빠른 연주도 어렵고 음량도 밀려 난감하기만 합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제이 제이 존슨이라는 걸출한 트롬본 연주자가 나타납니다.
재즈를 구성하는 악기들이 이와 같이 변화하게 됩니다.
이 중 관악기에서는 트롬본이 밸브를 사용하는 악기들에 밀려 두각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리듬 악기인 더블 베이스가 다른 악기들에 비해 덜 들리는 것과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요?
이번 글에서는 역사적으로 뛰어난 연주를 보여준 트롬보니스트 10인을 소개합니다. 2023년 기준 현대 재즈에서 역량을 보이는 뮤지션들은 나중을 기약합니다
트롬본 연주자 10인
1. 미프 몰(1898~1961)
Slippin' Around
재즈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20년대 전후까지 가게 됩니다. 스윙이 도래하기 전, 전통 재즈(뉴올리언즈 재즈, 딕시랜드 재즈)를 시작으로 재즈가 음악의 장르로 자리를 잡습니다. 미프 몰은 이 시기에 트롬본의 솔로 연주 스타일을 정립한 인물로 위대한 재즈 트롬보니스트라 불립니다. 1918년부터 밴드에서 연주를 하였고 1926년부터 코르네티스트 레드 니콜스와 함께 10인조 전후의 밴드를 만들어 전성기를 구가합니다. 그러나 후배 연주자 잭 티가든이 뉴욕에 입성하면서부터 몰의 영향력은 퇴색하기 시작합니다.
추천작은 그의 전성기인 1920년대 후반기에 녹음한 곡들입니다. 몰이 작곡한 대표곡 "슬리핀 어라운드(주변이 미끄러워요)"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2. 잭 티가든(1905~1964)
Mis'ry & The Blues / Think Well of Me
사치모의 절친인 잭 티가든은 비밥 이전을 풍미한 트롬보니스트 겸 싱어입니다. 음악 스타일은 비밥 이전의 장르(딕시랜드, 빅밴드, 스윙 등)를 두루 들려줍니다. 비밥 이전 가장 뛰어난 트롬본 혁신가로 간주되는 그는 보통 7개의 슬라이드 포지션으로 연주하는 기존 방식을 확장시켰고 독특한 소리 효과를 만들어냈습니다. 1920년부터 프로 경력을 쌓은 그는 투어 공연을 하던 중 1927년 뉴욕으로 갑니다. 이 시점이 미프 몰과 잭 티가든의 골든 크로스 지점입니다. 티가든의 연주와 녹음은 1920년대 후반부터 감상하면 좋습니다.
추천작은 그의 말년에 버브에서 녹음한 1961년 <미저리 그리고 블루스>와 1962년 <저를 잘 생각해 주세요> 입니다. 티가든의 목소리는 매우 뛰어납니다. 대화하듯 연인을 두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우울함을 토로하며 사랑에 대해 얘기합니다. 그리고 트롬본으로 그 대화를 다시 상기하며 부드럽게 이어나갑니다. 트롬본과 보컬의 완벽한 조화. 티가든이라 가능합니다. 두 LP는 한 장의 CD로 발매되었습니다.
3. 빅 디킨슨(1906~1984)
Plays Bessie Smith: Trombone Cholly
오하이오주 제니아 태생인 디킨슨은 1920~1930년대 미국 중서부 지역에서 활동하였고 1940~1950년대에 두각을 나타낸 연주자입니다. 1940년대 후반 프리렌서로 전향하면서 서부와 동부를 오가면 많은 레코딩 세션에 참여합니다. 이 시기에 그의 트럼펫을 콜한 뮤지션 혹은 밴드는 베니 카터, 카운트 베이시, 시드니 베세, 에디 헤이워드 섹스텟, 지미 러싱, 콜맨 호킨스, 피 위 러셀, 레스터 영 등입니다. 그의 연주 스타일은 여유, 즐거움, 재치, 능청 정도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디킨슨의 작품은 1953~1954년 <쇼케이스 1권, 2권> 및 <셉텟 1권, 2권, 3권, 4권>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추천작은 1976년 3월 31일 70세의 디킨슨이 녹음한 <트롬본 연주자: 베시 스미스 곡을 연주하다>로 블루스의 여제 베티 스미스 추모 앨범입니다.
4. 카이 윈딩(1922~1983)
Great Kai & J.J.
12세에 덴마크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윈딩은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뉴욕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합니다. 베니 굿맨과 스탄 켄톤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였고 1949년 마일즈 데이비스의 앨범 <쿨의 탄생>에 제이 제이 존슨과 함께 참여합니다. 이후 1954년 윈딩은 존슨과 퀸텟을 만들어 여러 장의 앨범을 발표합니다.
추천작은 카이 윈딩의 작품집 정상에 있는 앨범으로 제이 제이 존슨과 재결합하여 1960년 11월 임펄스에서 녹음하였습니다. 리듬 섹션 트리오에는 빌 에반스(피아노), 폴 챔버스 혹은 토미 윌리엄스(베이스), 로이 헤이즈 또는 아트 테일러(드럼)입니다. 퀸텟에서 두 대의 트롬본이 배치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보통 알토-테너 색소폰, 색소폰-트럼펫, 색소폰-트롬본, 트럼펫-트롬본 등의 다른 조합을 리더 연주자가 선택합니다. 그럼에도 윈딩과 존슨의 조합은 잘 어울립니다. 둘의 주법과 톤이 다르다보니 비교도 되고 트롬본 악기에 대한 매력이 증가합니다.
5. 제이 제이 존슨(1924~2001)
At the Opera House
재즈 트롬본을 말하면 제이 제이 존슨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존슨은 트롬보니스트이자 작곡가로 비밥과 하드 밥에서 족적을 남겼습니다. 찰리 파커의 비밥 창조로 트럼펫에서 색소폰으로 추가 기울어지게 됩니다.
그럼 트롬본은 어땠을까요?
스윙 혹은 오케스트라 악단에서 트롬본은 항상 어딘가에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비밥으로 넘어가면 독주자의 역할이 강조되고 빠른 코드 전개를 요하게 되는데 트롬본의 슬라이드 방식이 색소폰이나 트럼펫 같은 밸브 악기에 밀립니다.
그런데 존슨은 이런 트롬본의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테너 색소폰의 거장 레스터 영의 주법에 영향을 받으며 속주가 가능한 혁신적인 사운드를 만들어 냅니다.
그의 주요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블루노트 레코드 모음집: 1953~1955년 연주 그리고 세션은 당시 최고의 뮤지션들!
1958~1960년 콜롬비아 모음집: 몽크의 대표곡 미스테리오소의 재해석
1960년 카이 윈딩과의 듀엣 작품: 빌 에반스가 피아노 연주
1949~1951년 세 명의 트롬본 연주자 녹음: 제이 제이 존슨, 카이 윈딩, 베니 그린
존슨은 이밖에도 뛰어난 작품을 많이 발표했습니다. 그의 리더작은 대부분 수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밥, 하드밥, 서드 스트림 등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존슨은 트롬본 연주의 신기원을 이룩한 독보적인 연주자 겸 작곡가로 남았습니다.
추천작은 스탄 게츠와 제이 제이 존슨의 1957년 10월 7일 LA 쉬라인 오디토리엄 실황으로 편성은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와 드럼의 코니 케이가 리듬 섹션을 받치고 있는 섹스텟입니다. 앨범명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이 앨범 일주일 전 시카고의 시빅 오페라 하우스 실황을 의미합니다. 이 앨범도 찾아보세요.
6. 어비 그린(1926~2018)
Señor Blues
알라바마주 모빌에서 태어난 그린은 12세에 트롬본을 다루었고 15세에 프로 경력을 시작합니다. 1950~1960년대에 두각을 나타낸 그린은 동료 트롬보니스트들에게 존경받는 뮤지션이기도 합니다. 그가 참여한 주요 뮤지션(밴드)은 다음과 같습니다.
진 크루파(1947~1950)
우디 허먼(1953~1954)
베니 굿맨(1955~1957)
카운트 베이스(1963)
토미 도시(1966~1967)
리더작은 1953년을 시작으로 1960년대까지 꾸준히 발표하였습니다만 주로 스튜디오의 세션 뮤지션으로 있었습니다. 그가 1970년대에 CTI를 통해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합니다.
추천작 <세뇨르 블루스(블루스씨)>는 1977년 녹음 및 발표한 두 번째 앨범입니다.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테너, 소프라노 색소폰), 데이비드 매튜스(전자 피아노), 존 스코필드(전자 기타) 등이 참여하는데 밥과 퓨전이 적절히 어우려졌고 그린의 트롬본 연주는 매우 부드러우며 아름다운 음색을 자랑합니다.
7. 슬라이드 햄프톤(1932~2021)
Roots
펜실베니아주 자넷트 출신인 햄프톤은 명망있는 작곡가, 교수, 편곡가로 트롬본, 튜바, 훌루겔혼을 연주합니다. 1950년대 중반부터 활동한 그는 밥을 지향합니다. 버디 존슨, 라이오넬 햄프톤, 메이나드 퍼거슨 밴드를 거쳐 1960년대 옥텟을 운영하였고 유럽에 체류하며 연주 활동을 지속하였습니다. 1977년 귀국하여 트롬본 옥텟과 리듬 섹션 트리오로 구성된 12인조 앙상블 월드 오브 트롬본스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컨티뉴엄 퀸텟을 이끌었습니다. 하버드 등 여러 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치기도 했던 햄프톤은 2021년 11월 18일 영면에 들어갑니다.
추천작은 1985년 네덜란드 재즈 음반사 크리스 크로스에서 발매한 퀸텟 앨범입니다. 라인업은 최강입니다. 슬라이드 햄프톤(트롬본), 클리포드 조단(테너 색소폰), 시다 왈튼(피아노), 데이비드 윌리엄스(베이스), 빌리 히긴스(드럼)
8. 커티스 풀러(1932~2021)
Blues-ette
미시건주 디트로이트 생인 풀러는 16세에 트롬본을 배웠고 1953년 한국전에 참전하여 군대 밴드에서 애덜리 형제와 연주를 합니다. 제대 후 멀티플레이어 유셉 라티프 밴드에 있었고 1957년 뉴욕으로 이주하여 프레스티지에서 데뷔 앨범을 발표하는데 이후 블루노트, 사보이, 에픽, 임펄스 등 여러 음반사를 통해 리더작을 선뵙니다. 멤버로는 1959년 아트 파머와 배니 골슨의 재즈텟, 1961년 아트 블레이키 & 재즈 메신저스 그리고 1960년대 후반 디지 질레스피 밴드에서의 활약을 꼽을 수 있습니다. 또한 사이드맨으로 버드 파웰, 존 콜트레인, 웨인 쇼터, 지미 스미스, 소니 클락, 리 모건, 조 핸더슨 등의 블루노트 작품에 참여했습니다. 풀러는 2021년 5월 8일 88세로 타계했습니다.
추천작은 1959년 사보이에서 녹음한 <블루스젯>으로 재즈텟을 만들 때 풀러를 발탁하는 배니 골슨이 테너 색소폰을 토미 플래너건, 지미 개리슨, 알 헤어우드가 리듬 섹션을 담당합니다. 풀러 작품집의 정점에 있는 하드밥 명연입니다.
9. 스티브 투레(1948~)
The Very Thought of You
네브라스카주 오마하 출신인 투레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트롬본을 접했으며 형과 함께 밴드에서 활동합니다. 새크라멘토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 미식축구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음악 이론을 배웠고 노스 텍사스 음대에 편입 후 밴드에서 연주를 하였습니다. 투레는 현존 최고의 트롬본 연주자, 편곡자, 작곡자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록과 라틴 재즈도 연주합니다. 교육자로서 1988년부터 맨해튼 음악원에서 재즈 트롬본을 가르치고 있고 줄리어드 음대에서 약 20년간 교수로 있었습니다. 특히 1970년 이후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소라껍데기를 채집하여 악기로 사용하는 연주자로 유명합니다. 투레는 2000년대 전후 다운비트에서 다섯 번 최고의 재즈 트롬보니스트로 선정되었습니다.
작품은 1987년을 시작으로 2022년까지 20여장의 앨범을 발표하였고 1970년대 초반 카를로스 산타나의 앨범 포함 지금까지 총 200회가 넘은 뮤지션들의 앨범에 사이드맨으로 참여했습니다.
추천작은 투레의 2018년 앨범으로 쿼텟(스티브 투레: 트롬본, 케니 배런: 피아노, 버스터 윌리엄스: 베이스, 윌리 존스 3세: 드럼) 편성입니다. 여기에 게스트로 테너 색소폰의 조지 콜맨과 기타의 러셀 말론이 참여하여 명연을 들려줍니다.
10. 로빈 유뱅크스(1955~)
Different Perspectives
팬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 출생인 로빈 유뱅크스는
1980년대 인기를 끈 재즈 퓨전 기타리스트 케빈 유뱅크스의 형입니다. 필라델피아 예술대를 졸업하고 1980년 뉴욕에 진출하여 슬라이드 햄프톤, 선 라 등과 연주하였고 스티비 원더와 투어 공연을 하였습니다. 이후 아트 블레키의 재즈 메신저스에서 음악디렉터로 활동하였고 맥코이 타이너, 그로버 워싱톤 주니어, 비비 킹, 제이 제이 존슨, 앤드류 힐, 케니 배론, 바브라 스트라이젠드, 토킹 헤즈 등의 앨범 작업에 프리렌서 혹은 팀원으로 참여하였습니다. 비밥, 프리, 퓨전, 팝 등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유뱅크스는 선배 뮤지션 제이 제이 존슨의 추천으로 오하이오 오벌린 음악원에서 20년간 재즈 트롬본 연주 및 재즈 작곡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또한 젊은 뮤지션들의 음악 집단이 만든 엠 베이스 장르의 선구자 중 한 명이며 데이비드 홀랜드 밴드에서 15년간 활동하였습니다. 유뱅크스의 리더작은 10장 전후입니다.
추천작은 1988년 데뷔 앨범입니다. 동생 케빈 유뱅크스가 기타를 맡았고 테리 린 캐링턴과 제프 와츠의 드럼, 동료 엠 베이스 뮤지션인 스티브 콜맨의 색소폰, 슬라이드 햄프톤의 트롬본 등 화려한 라인업에 유뱅크스의 오리지널 중심의 연주는 펑키, 그루브 등의 재료가 잘 섞인 짜임새 있는 맛을 보여줍니다.
트롬본 연주자들의 작품 특히 리더로서의 그것은 다른 악기에 비하여 수가 적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적은 앨범 수가 악기와 연주자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겠지요.
다만 트롬본 위주의 작품을 들으려면 앨범별 감상이 아니고 묶음 혹은 편집 앨범으로 들어야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특히 역사 속으로 사라진 초기 트롬보니스틀의 경우는 더 그렇습니다.
이상으로 재즈 트롬본 10인 소개를 마칩니다.
핫불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