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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반짝 빛나는 Jul 26. 2023

동네아줌마의 이상한 독서 습관

그렇게 이상한가요?

내겐 책을 읽는 조금 이상한 습관과 특징이 있다.


1. 처음 읽을 책은 도서관에서 빌린다.

우리 집 서재는 이미 포화 상태이기도 하고 더 이상 책 둘 공간이 없다.

난 자연스럽고 아늑하고 좋은데, 남편은  바닥까지 쌓여 있는 책을 보면 답답해하곤 한다.

구매해 읽었는데 다시 읽고 싶은 책이 아닐 때, 유용해 보여 샀는데 별로인 책도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꼭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는다.


책장엔 아주예전에 산, 구매 후 한 번도 펼쳐본 적 없는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 책들이 있다.

일단 사서 서재에 넣어두면 내 것이라는 안도감이 있다.

언제든 내가 원하면 거기 있을 책이니까.

하지만!

빌려온 책은 아직 읽지 못했을 땐 반납일이 점점 다가올수록

'읽어야 하는데...'라는 의무감이 들면서 그 책이 '어서 나를 읽으렴' 하고 손짓한다.

예약이 길거나 다시 빌리기 힘든 인기 도서일 경우엔 더더욱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다. 결단코!

 

어느 날, 책을 잔뜩 빌렸는데 바쁜 일이 있어 며칠을 못 읽었더니 기다리는 책이 줄지어 있었다.

빠른 반납일 기준으로 목록을 세워 하루에 한 권씩 읽어 완독을 했을 때 집중력은 감히 내 평소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초인적인 힘이 작용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 규칙은 어떤 경우에는 깨지기도 한다.

칼세이건의 '코스모스'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빌렸는데

이기적 유전자는 손도 못 대고

코스모스는 100페이지를 읽고 반납기한이 다 돼버렸다.

이 책들은 빌려서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는

느낌이 직관적으로 온다. 그런 책들은 꼭 구매를 해서 두고두고 조금씩 천천히 읽어야 할 리스트이다.

(그래서 전부 구매했다. 종의 기원, 총 균쇠, 사피엔스...)


2. 2번 혹은 3번 빌려본 책은 반드시 구매한다.

이런 책은 자주 '멈춘' 책이다.

(김종원 작가님의 표현 중 정말 근사한 문장이다. '넌 어디서 멈췄니?')

책장을 자주 멈춘 책엔 2종류가 있다.

일단 잠이 올만큼 지루하고 재미없는 책이었거나

(이런 책은 마음을 다 잡고 다시 빌려 볼지언정 구매목록엔 제외다.)

마음에 새기고 내 삶에 기억하고 싶은 책은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그럴 땐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사진으로 찍기도 하고 메모와 필사로 남길 때도 있다.

휴대폰 카메라에 아이들 사진이 사라지고 책 사진이 가득해지면서

간혹 어떤 책이었는지 어느 부분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

사진으로 남기는 게 부질없다는 걸 느끼게 된 후부터는 머물게 하고 싶은 책은 구매를 하는 편이다.

그렇게 구매한 책들은 책장에 꽂혀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이미 도서관에서 2~3번씩 읽었던 책이기에 내 책장엔 새 책 그대로 꽂힌다.

  

3. 동시에 읽기 시작하는 책이 여러 권이다.

한 권을 다 읽은 후 다른 책을 읽으면 좋으련만,  

호기심이 많은 나는 한 책을 읽다가도 다른 책이 너무 궁금하다.

그러다 보니 여러 책의 독서를 동시에 한다.

경제서, 자기 개발서, 글쓰기책, 에세이나 소설...  

각각 다른 장르로 한 권씩,

일하다 틈틈이 봐야 할 책, 주변이 시끄러울 때 봐야 할 책,

아이들이 놀고 있을 때 봐야 할 책,

아무도 없는 늦은 밤 읽어야 할 책들이 각각 다른 것이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예전엔 동시에 읽기 시작하면 거의 비슷하게 완독하였는데

소설이 진입한 후로는 단독 1위를 늘 달린다.


4. 비슷한 책을 연달아 읽어 내용 출처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내용은 명확히 기억이 나는데,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하기 힘들때가 종종있다.

경제, 자기 계발 도서를 연달아 읽거나 독서법책권씩 읽었을 때,

소설도 비슷한 종류를 연달아 여러권 읽기도 한다.

어떤 날엔 1900년대 역사 소설을 계속 읽을때가 있고

또 다른 날엔 SF 미래 과학소설을 주구장창 읽다 보니 주인공의 이름과 내용, 줄거리가 섞일 때가 있다.

여러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한 권의 책을 꼭꼭 씹어 소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이 이상한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독서모임에 한 분은 책 한 권 읽으면 필사와 메모 라벨을 붙여 마음에 닿는 문장을 표시하고,

꼼꼼히 정독해서 블로그에 서평을 쓴다.

늘 대단하다 생각하며 존경스런 마음에 '나도 저렇게 해 봐야지...'라는 다짐을 해 보지만, 일단 나는 게으른 다독가다.

책장을 넘기는 최소한의 힘으로 아무 곳에서 아무때나 책을 펼친다.

또한 남의 책 서평인데 대충 기억나는 대로 적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정성을 들여 서평을 쓸 시간과 마음이 내게 생긴다면, 일단 나는 내 글을 쓰고 싶다.

꼼꼼히 읽은 책만이라도 서평을 써 놨으면 지금쯤 '책식주의자' 만큼은 못 되도 준 전문가는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서평과 리뷰를 쓰는 분들의 내공과 정성을 감히 따라갈 수 없을것 같다.

공들여 책 리뷰를 쓸 수 있는 날은 언제쯤 될진 모르겠지만, 일단은 책을 덜 읽어야지 싶다.



나에겐 엄격하지만,  

아들에게만큼은 인색한 엄마가 되기 싫어 종종 물어본다.

"혹시 갖고 싶거나 또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얼마든지 사 줄 테니 언제든 이야기해 줘"

그러면 아들의 대답은 늘 똑같다.

 "그냥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돼. 이렇게 재미있는 많은 책이 기다리고 있는데, 다 읽으면 또 재미있는 책을 빌려 읽지 뭐. 또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말할게. "

라고 말하지 역시, 사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애석하게도 나와 안 닮았음 하는,

비슷한 독서습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 일단은 우리 둘이 실컷읽자.

좋아서 재미있어서 읽는데, 왕도가 어디 있겠니?'

끊임없이 읽다 보면 언젠간 멈추고 쉬어갈 날이 올 테니,

지금은 마음껏 날아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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