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 열전> '오기와 전문'의 이야기
새벽 독서 시간이 되면 여러 멤버가 모여 한 시간 동안 책을 읽고, 느끼거나 깨달은 것을 나누곤 합니다. 저는 새벽잠이 많아 전날 미리 읽어둔 책의 내용을 가지고 나누곤 하는데, 이번에는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 나오는 '오기와 전문'의 이야기로 풀어 나갔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연재 브런치북 <문장의 힘!>에 들어갈 에피소드였는데, 깜빡하고 작품을 선택하지 않아 재발행하게 되었습니다.
내용을 나누다 보니, 조선후기의 학자였던 이면백이라는 분의 말이 좀 더 새롭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법도나 준칙이 무엇일까? 그리고 폐부와 심장이 드러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깊이 생각하다 보니, 폐부와 심장이라는 말은 그 사람의 알맹이, 진가, 본성, 속 마음, 진정성, 소위 말하는 '찐'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법도나 준칙이라는 말은, 일반화, 규격화, 형식화, 범주화시킨 어떤 것, 즉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권장되는 덕목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 사회의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으려면, 어떤 법도과 규칙을 지키면서 살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진짜 모습을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 옛 시대의 정신과 가치를 배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면백은 이렇게 말합니다. 법도와 준칙으로 옛사람을 만나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의 폐부와 심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한 가지 사건이나 말 한마디에서 배우는 것이다!
“당신과 공로를 비교해 보고 싶은데 어떻소?”
(중략)
“삼군의 장군이 되어 병사들에게 기꺼이 목숨을 바쳐 싸우게 하고, 적국이 감히 우리를 도모하지 못하게 한 점에서 나를 당신과 비교하면 누가 더 낫습니까?”
전문이 말했다.
“당신만 못합니다.”
“모든 관리를 다스리고 온 백성을 친밀하게 하고 나라의 창고를 가득 채운 점에서는 나와 당신 중 누가 더 뛰어납니까?”
전문이 말했다.
“당신만 못합니다.”
“서하를 지켜 진나라 군사들이 감히 동쪽으로 쳐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한나라와 조나라를 복종시킨 점에서는 나와 당신 중에서 누가 낫습니까?”
전문은 말했다.
“당신만 못합니다.”
“이 세 가지 점에서 당신은 모두 나보다 못한데 나보다 윗자리에 있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전문이 말했다.
“주군의 나이가 어려 나라가 안정되지 못하고, 대신들은 말을 들으려하지 않으며, 백성은 믿지 못하고 있으니 바야흐로 이런 때에 재상 자리를 당신에게 맡기겠습니까, 아니면 내게 맡기겠습니까?”
오기는 한참 동안 조용히 있다가 말했다.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전문이 말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당신보다 윗자리에 있는 까닭입니다.”
오기는 그제야 자기가 전문만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주 2).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유명한 병법가 중에 '오기'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자라고도 불리는 이 사람은, 『손자병법』과 더불어 손꼽히는 병법서인 『오자병법』을 저술한 전국시대의 명장이자 병법가입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오기와 전문이라는 사람이 나눈 대화를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오기는 뛰어난 병법가이면서 동시에 덕을 갖춘 장수였습니다. 병사들과 똑같이 옷을 입고 밥을 먹었고, 누울 때도 자리를 깔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행군할 때도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고 일반 병사들처럼 걸었으며, 식량도 직접 가지고 다니면서 병사들과 같이 앉아 밥을 먹을 만큼, 병사들의 고생과 수고로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심지어 종기가 난 병사의 환부를 가르고 고름을 빨아주기도 했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서 병사들은 그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신하로서 임금에게는 "(나라의 보배는) 임금의 덕행에 있지 (지형의) 험준함에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만큼, 나라가 부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임금의 덕이 가장 중요하다고 간언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서하'의 태수가 되자 명성이 훨씬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나라에서 재상의 직책을 마련하고, 그 자리에 전문이라는 사람이 앉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공적도 훨씬 많고 명성도 높은데, 재상의 자리를 빼앗겼다는 생각에 그는 마음이 언짢아졌습니다. 그래서 재상의 자리를 차지한 전문에게 찾아가 재상의 자격에 대해 논합니다.
저는 오기와 전문이 대화를 나눈 그 자리가 왠지 살벌하게 느껴집니다. 오기가 전문과 단순히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였을까요? 전문의 말을 들어보면, 지금 위나라 임금의 힘이 그리 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임금의 나이가 어려 나라가 안정되지 못하였고, 대신들은 그런 임금의 말을 잘 따르지 않고 있으며, 백성들 또한 임금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오기의 말처럼 오기를 임금보다 더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만약 오기가 재상이라는 자리에 오르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대신들을 휘어잡고 나이 어리고 힘이 없는 임금을 좌지우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최악의 경우에는 임금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전문은 그렇게 막강한 권력을 가진 오기가 자신을 찾아와 재상의 자격을 논할 때 무엇을 느꼈을까요? 잘못하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때가 '전국시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전문은 그런 오기를 마주하고도, 지혜롭고 당당한 태도로 현시국에 대해 날카롭게 진단하면서 오기의 논리를 깨뜨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지도 모르는 사람을 앞에 두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의중까지 밝히 드러내면서 부끄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전문과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시대적 정황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통찰력뿐만 아니라 당당함과 의연함까지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한편, 오기도 이름값을 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욕심에 사로잡혀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바로 인정하였고, 자신이 더 큰 힘을 가졌음에도 전문이 더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였으니 말이지요. 이 하나의 사건 속에 그들의 폐부와 심장이 느긋하게 드러나니, 옛사람을 만나 배우는 참 즐거움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날 저는 독서 모임에서의 마무리 발언을 이렇게 했습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후손들에게 폐부와 심장이 느긋하게 드러나는 말 한마디를 해줄 수 있고, 어떤 상황에 닥치게 되었을 때 내면에 있는 단단한 생각과 철학이 행동으로 진하게 묻어 나오는 사건 하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주 1) 서유구 외, <한국 산문선 8>, 2017, 민음사
주 2) 사마천, <사기 열전>, 2021,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