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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Mar 04. 2024

울기 좋은 곳

박지원 <열하일기> 중 '호곡장론'

근세의 문장가 산강 변영만(1889~1954) 선생이 그랬답니다.

'우리나라의 문장은 연암에게서 망하였고, 시는 자하에게서 망하였고, 글씨는 추사에게서 망하였다(주 1).'


이 말은 각각 그 분야에서 더 이상 발전의 여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극도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한문학사의 종막을 장식한 대가였던 김택영 선생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중「야출고북구기(夜出古北口記)」를 '오천 년 이래 최고의 명문장'으로 손꼽기도 했습니다.


2021년 6월의 여름, 저는 황홀할 만큼 행복했습니다.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그와 함께 여행길에 오른 듯, 그들의 땀 냄새와 거친 숨소리, '푸르륵~'거리는 말소리와 차가운 강물의 감촉, 긴박한 상황 속 떨리는 몸과 가슴의 두근거림, 감격에 겨워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를 직접 듣는 것 같은 생생함에 신명이 났습니다. 드높은 사유와 현란한 문장은 또 어떠한지.

'나도 이런 여행기를 써 보고 싶다!!'

그즈음 저의 로망이자 워너비는 박지원 선생이었습니다.


말을 채찍질하여 서두르자 수십 걸음을 채 가지 않고 산발치를 막 벗어나자마자 안광(眼光)이 어른어른하고 갑자기 검은 공 한 덩이가 오르락내리락하였다. 나는 오늘에야 처음 인간의 삶이란 본래 어디에도 의탁한 데가 없이 오로지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말을 세우고 사방을 둘러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 “울기에 딱 좋은 곳이로다. 울어도 좋겠구나!”라고 말하였다.
정 진사가 “천지 사이에서 이렇게 큰 안계(眼界-시계)를 만나서는 갑자기 울고 싶다니요? 무슨 말씀이오?”라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사람들은 칠정(七情)중에서 슬플 때만 울음이 나오는 줄로만 알고 칠정의 모두에서 모두 울음이 나오는 줄은 모르고 있답니다. 기쁨이 사무치면 울음이 나오고, 분노가 사무치면 울음이 나오고, 즐거움이 사무치면 울음이 나오고, 사랑이 사무치면 울음이 나오고, 미움이 사무치면 울음이 나오고, 욕망이 사무치면 울음이 나오는 법이지요. 응어리지고 답답함을 풀어서 시원하게 하기로는 그 어떤 것도 소리보다 빠르지 않으니 울음이란 천지 사이에서 우레에도 비교할 수 있지요. 지극한 정(情)에서 울음이 터지고, 터진 울음이 사리에 맞는다면 웃음과 무엇이 다르리오(주 2).


출처 : 네이버 이미지

박지원의 『열하일기』중 그 유명한 「호곡장」의 일부입니다.


여기에 다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박지원은 우는 감정이 마치 갓난아기의 울음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갓난아기가 우는 것을 두고 인생에 대해 논하기도 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모두 한결같이 죽어 사라질 운명을 가지고 있으니, 태어나고도 온갖 고생을 하고 고통을 겪다가, 결국 죽음으로 귀결될 존재라는 것입니다. 아기가 우는 것은 이런 인간 존재의 운명을 알고 태어난 것을 후회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박지원은 이런 생각을 일축하고 갓난아이의 본마음에 대해 현실적으로 추리해 나갑니다.


아이가 엄마의 태중에 있을 때는 캄캄하고 막혀 있으며 옭매여서 갑갑하게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넓고 훤한 곳으로 솟구쳐 나와 손을 펴고 발을 뻗으니 마음과 뜻이 공활해져 시원할 테지요. 참된 소리를 내질러서 마음껏 한번 펼쳐 내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요(주 3)!


요동 벌판 / 출처 : 네이버 이미지

박지원이 요동벌판을 마주하고 느낀 감정은 갓난아이의 그것이었습니다. 좁고 캄캄한 곳에만 갇혀 있다가 갑자기 환하고 광활한 세상에 솟구쳐 나왔을 때 느끼는 해방감, 존재가 확장되고 마치 터져 나가는 느낌. 그러니 슬픔이 아닌 기쁨과 환희에서 쏟아져 나오는 울음이 아니었을까요? 어쩌면 그것도 아닐지 모릅니다.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응어리지고 답답한 것을 시원하게 터뜨리는 우레와 같은 것, 그것을 울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갓난아기를 본받아 꾸밈없는 소리를 내야지요. 금강산 비로봉 꼭대기에 올라가 동해 바다를 바라보면 울음을 터트리기에 좋은 장소요, 황해도 장연의 금사사에서 큰 바다를 바라보면 울음을 터트리기에 좋은 장소이지요. 이제 요동 벌판에 와서 여기서부터 산해관까지 천이백 리 벌판에서 사방에 도무지 한 점의 산도 없이 하늘 끝과 땅끝이 아교풀로 붙이고 실로 꿰맨 듯하고 그 사이로 고금에 비구름만 까마득하게 오고 갈 뿐이니 울음을 터트리기에 좋은 장소이지요(주 4).”


만약 그와 똑같은 장소에 서게 된다면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요? 이제 박지원의 글을 보았으니, 그의 문장만 생각날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박지원처럼 울음을 터뜨릴 있을 만한 곳을 어렴풋이 같습니다.


그는 광활한 요동 벌판을 마주하였을 처음 느낀 감회를 이렇게 서술합니다.


'나는 오늘에야 처음 인간의 삶이란 본래 어디에도 의탁한 데가 없이 오로지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그토록 광활한 벌판을 마주했을 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바로 자신은 이토록 거대한 세계에 제 발로 우뚝 서서 위로는 하늘을 이고, 아래로는 땅을 밟으며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요동 벌판을 보며 울음을 터뜨리지는 못하겠지만,

내 안의 거대하고 광활한 세계에 눈을 뜨는 순간,

다른 누가 아닌 오로지 내가 주체가 되어 삶을 살게 되는 순간,

세상에 '유일한 나'로서 사는 삶의 목적과 꿈을 이룬 순간,

그때, 박지원처럼 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가 되면 저도 그처럼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울기에 딱 좋은 곳이로다. 울어도 좋겠구나!”



주 1, 2, 3, 4) 박지원 외, <한국 산문선 7>, 2017, 민음사


⁕ 월, 목 - <문장의 힘!>

⁕ 화, 금 - <거장에게 듣는 지혜>

⁕ 수, 일 - <사소한 일상은 인생의 최종손익결산>


목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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