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열하일기> 중 '호곡장론'
말을 채찍질하여 서두르자 수십 걸음을 채 가지 않고 산발치를 막 벗어나자마자 안광(眼光)이 어른어른하고 갑자기 검은 공 한 덩이가 오르락내리락하였다. 나는 오늘에야 처음 인간의 삶이란 본래 어디에도 의탁한 데가 없이 오로지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말을 세우고 사방을 둘러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 “울기에 딱 좋은 곳이로다. 울어도 좋겠구나!”라고 말하였다.
정 진사가 “천지 사이에서 이렇게 큰 안계(眼界-시계)를 만나서는 갑자기 울고 싶다니요? 무슨 말씀이오?”라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사람들은 칠정(七情)중에서 슬플 때만 울음이 나오는 줄로만 알고 칠정의 모두에서 모두 울음이 나오는 줄은 모르고 있답니다. 기쁨이 사무치면 울음이 나오고, 분노가 사무치면 울음이 나오고, 즐거움이 사무치면 울음이 나오고, 사랑이 사무치면 울음이 나오고, 미움이 사무치면 울음이 나오고, 욕망이 사무치면 울음이 나오는 법이지요. 응어리지고 답답함을 풀어서 시원하게 하기로는 그 어떤 것도 소리보다 빠르지 않으니 울음이란 천지 사이에서 우레에도 비교할 수 있지요. 지극한 정(情)에서 울음이 터지고, 터진 울음이 사리에 맞는다면 웃음과 무엇이 다르리오(주 2).
아이가 엄마의 태중에 있을 때는 캄캄하고 막혀 있으며 옭매여서 갑갑하게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넓고 훤한 곳으로 솟구쳐 나와 손을 펴고 발을 뻗으니 마음과 뜻이 공활해져 시원할 테지요. 참된 소리를 내질러서 마음껏 한번 펼쳐 내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요(주 3)!
그러니 마땅히 갓난아기를 본받아 꾸밈없는 소리를 내야지요. 금강산 비로봉 꼭대기에 올라가 동해 바다를 바라보면 울음을 터트리기에 좋은 장소요, 황해도 장연의 금사사에서 큰 바다를 바라보면 울음을 터트리기에 좋은 장소이지요. 이제 요동 벌판에 와서 여기서부터 산해관까지 천이백 리 벌판에서 사방에 도무지 한 점의 산도 없이 하늘 끝과 땅끝이 아교풀로 붙이고 실로 꿰맨 듯하고 그 사이로 고금에 비구름만 까마득하게 오고 갈 뿐이니 울음을 터트리기에 좋은 장소이지요(주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