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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jiya Jul 04. 2024

웰컴투 '시월드'

 유토피아? 아니, 시국열차



   요즘엔 공무원이 인기가 없다. 그런데 내가 시험을 본 2011년도는 공시 열풍이 최고조에 달한 때였다. 그런 시기에 내가 육아를 하면서도 단기간에 합격할 수 있었던 건 아이를 잘 키워보겠다는 간절함으로 발로 노력과 함께 예민한 감각 덕분이지 않았나 싶다. 나는 때론 감각 자극이 뇌에 저절로 새겨져 영화 필름처럼 남아있곤 한다. 그래서 교재 인쇄면들의 이미지가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건 수험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상대방의 기분을 잘 알아챈다. 대화를 몇 마디 나누거나, 아님 눈빛이나 표정만으로도 사람의 감정이 느껴진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데도 말이다. 최근에 나 같은 사람을 '초민감인(highly sensitive person)'이라고 정의한다는 걸 알았다. (뭔가 초능력 같고 나쁘지 않은데?)


결국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나는 사람과 사건에 대해 기억력이 좋고, 상대의 의도가 잘 파악된다는 것이다. 이걸 ‘뒤끝’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꼭 나쁜 것만 오래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남들 보기에는 별거 아닌 소소한 것들로 행복감을 크게 느끼고 그 여운이 오래 남기도 하니까.


사실 이번 글은 원래 계획에 없었던 목차다. 그런데 나의 제일 구독자님(남편)께서 조언 같은 독설을 하신다.

 “재미가 없어~ 너의 재미없는 인생, 누가 궁금하다고~”

지가 써보라고 브런치 소개해줄 땐 언제고? 내가 출간이라도 하는 줄 아는 모양인가 보다. 기분이 살짝 나빠서 보답하는 마음으로 이 소재를 꺼내 본다.







   어언 17년 전,

'초민감인 효지야(나의 애칭)'가 들어가 3년 정도 살게 된 ‘시월드’에는 시할머니와 시어머니, 시누이가 살고 있었어요. 시어머니는 처음엔 아기가 태어나도 절대 봐주지 않을 거라고 하셨죠. 애 봐주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니 그 뜻을 존중했답니다. 근데 막상 아기가 태어나니 우리 집 문지방이 닳아 없어지겠네요. 그러더니 매일 오기가 번거로우니 그냥 시댁으로 들어와서 살자고 해, 멋모르고 들어가 살게 된 것입니다.

어리석은 '효지야'...



# 인물 소개


1. 시어머니: 갱년기에 들어서 아침이면 특히 신경이 날카로운 중년 여성. 경제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젊은 시절 둘째(우리 남편)를 낳고 얼마 안 있어 집으로 쳐들어와(?) 함께 살게 된 시부모님과 시동생들 밥 해 먹이느라 끼니마다 국 끓여대는 게 아주 지긋지긋했다고 한다. 손자 애옹이(아들의 애칭)를 예뻐한다.


2. 시할머니: 시어머니의 시어머니. 놀러 다니기 좋아하시고 천진난만한 쾌락주의자(?). 나와 특별한 유대관계는 없었지만 할머니 살아 계신 동안 할머니 덕분에 내가 서열 꼴등을 면하는 반사적 이익을 누리지 않았나 싶다.

3. 시누이: 28세 미혼 여성. 회사를 몇 군데 전전하다 그만두고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외향적이고 상냥하나 공황장애와 감정 기복이 있어 종종 목놓아 울거나 소리 지르는 걸 목격하게 된다. 이 힘든 시기에 조카 애옹이가 힐링이었다고 한다.

4. 남편: 연애할 때와는 딴판으로 신경질적이 된 26세 남성. 아무런 준비 없이 아빠가 되어 피해의식과 불안감에 시달리며, 공시 준비 중이다. 그러나 향후 애옹이의 앞날을 치밀하게 설계하는 중장기플래너가 된다.

여기에 정상적인(?) 가정의 보살핌을 못 받아 결핍 많은 스물여섯의 자존감은 낮고 소심했던 내가 아기 애옹이를 데리고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사회라는 큰 틀에서는 평범한 범주에 들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름 개성 뚜렷한 이 모두를 아울러 준 건 아였다. 애초에 아이가 아니었다면 함께 살 일도 없었겠지만.


그리고 사업 때문에 함께 지내지 않았지만 시아버지도 계셨다. 한때 사업으로 승승장구하시다가 IMF 직격탄을 맞은 후 재기 중이셨던 아버님은 미식가셨는데, '어린이 입맛'인 남편과 시누이에 비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는 나의 미각을 가장 높이 평가해 맛있는 걸 먹으러 가면 흐뭇한 표정으로 내 앞접시에 음식을 놓아주곤 하셨다.





# 에피소드


   하루는 시어머니가 노발대발 화가 나셨다. 거실에 있던 m&m's 초콜릿 모양의 저금통에 동전이 없어졌다고 한다. 폐물이나 보석 이런 거 아니고 동전이다, 동전. "땡그랑 한 푼" 말이다. 설마? 아닐 거라고 외면해 봐도 '초민감인'의 촉은 '응, 너 의심받는 거 맞아'라고 한다. 


도둑이 아파트 20층까지 들어와서 살피다 ‘돈 되는 걸 못 찾겠네. 이거라도 가져가자. 그래도 내가 양심 있는 도둑이지~ 절반만 가져가야겠다.  건 아닐 테니, 어쨌든 가족 중에 누군가가 썼을 텐데 저렇게까지 화를 낼 일인가 싶었다. 


보아하니 할머니를 제일 크게 의심하시는 것 같았고, 나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고 계신 듯했다.

나는 엄마의 지나치게 엄격한 훈육으로 우리 집 방바닥에 떨어진 동전도 내 것이 아니면 손 데지 않고 살아왔거늘. 억울했다.


아무래도 진상을 밝혀야 직성이 풀리실 모양이었고, 나 역시 의심받는 것 같은 상황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어 누가 쓴 건지 궁금했다. 탐문수색 결과 범인은 쉽게 밝혀졌다.


“그거? 내가 돈까스 시켜 먹었는데?”


풉. 시누이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시 돌려 막기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카드빚을 안고 있던 시누이는 돈까스를 무척 좋아했다. 무직 상태에서 돈은 없고, 돈까스는 먹고 싶고... 그래서 저금통을 털었던 모양이었다. 나였다면 동전꾸러미 내밀기 부끄러워 라면이나 끓여 먹었을 텐데. 그 멘털이 살짝 부럽기도 하다. 근데 큰 소리로 화내던 분 어디 가셨어요? 어머니? 


진상 파악 후 잠잠하시다. 역시 당신의 딸과 아들일 가능성은 '0(zero)'였었나 보다. 면책특권을 가진 범인의 자백으로 혐의는 깔끔하게 벗었지만 마음은 개운치가 못했다. 시어머닌 그제야 본인이 의심한 건 콕 집어 할머니였다고 수습을 하셨지만 이미 마음엔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나는 이 집 '이런 얼토당토않은 일에 의심받을 수 있는 정도의 존재'라는 것과 그 의심에는 조심스러움조차 결여돼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의심이야 들 수도 있겠지만(?) 화내시기 전에 슬쩍 아들과 딸에게 먼저 확인해 보셨으면  앞에서 이런 촌극이 연출되는 일은 면치 않았을까 싶다. 덕분에 시어머니의 귀한 딸은 기억력 좋은 나에게 ‘28세에 땡그랑 한 푼 털어 돈까스 사 먹은 여자’로 지금까지 회자될 수 있게 되었다.








   단편적인 일화가 보여주듯 ‘시월드’는 평범한 가정의 행복을 누려보지 못한 나의 결핍이 치유될 만한 '유토피아'아니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KBS 주말 드라마에나?) 


오히려 그 속에 철저한 계급이 있는 '미니 설국열차'같은 곳이랄까? 나는 당연히 꼬리칸.


'초민감인'의 머릿속에는 이 정도는 약과인 '뒤끝' 에피소드들이 차고 넘치지만 글로 적으면서 복기하면 나는 또 한동안 '이너피스'를 잃어버리게 되겠지? 그러니 피식 웃을 수 있는 이 이야기로 다소 싱겁게 끝내야겠다.


그래도 우리 애옹이는 자라면서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니, 그거면 됐지 뭐.


 




   나는 나만 빼고 남들은 다 건강하고 안정된 정서를 가졌다고 착각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겪어보니 타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근원인 결핍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 사람들 중에 완벽하게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몇 안 된다고 단언할 수 있.


가만 보면 모두가 속 안에 ‘금쪽이’를 하나씩은 데리고 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툭' 꺼내 보일 때가 있다. (가끔 '금쪽이'가 여럿인 사람도 있고, 자기한테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다.) 남편을 포함한 시가족들도 그랬고, 나도 그랬고, 특히 그때는 모두가 힘든 시기였다.


다만, 남들은 안 맞으면 안 보면 그만이지만 가족으로 묶인 사이는 쉽게 그럴 수 없으니, 마음 상처가 더 오래 남게 되는 것 같다. 다음에 또 그럴까 봐. 계속 그럴까 봐 겁이 난다. 그래서 나의 '결핍이'는 친구나 회사동료 등 다른 관계에서는 잘 숨어있다가 시댁식구들과 있을 때면 불쑥 튀어나와 나를 당황시킨다.


"짜잔. 나 여깄지롱~ 없어진 줄 알았지?"


그럴 때면 스스로 못난 기분에까지 사로잡혀 마음에서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친다. 시가족들 만날 땐 내 자아를 꺼내서 어디 잠시 보관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최근에 마음가짐을 바꿨다. 시댁 식구들에 대한 내 마음이 '미움'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그건 결코 아니었다. 단지 구성원으로서 엇비슷하게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건 무한의 감정노동을 감래해도 될까 말까 한 일이고, 그래서 이제 그 마음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나는 이제 모두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모두와 화목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에겐 충분히 다양한 관계들이 있고, 그 속에서 나를 부정하지 않아도 인정받고 공감받으며 잘 지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스스로 내 마음을 챙기토닥토닥해 주며 사는 법을 배웠다. (글쓰기도 그 중 하나)


이렇게 기대감 없이 지내다 보면 또 오히려 좋아질지 누가 알겠는가? (이 또한 기대인가?)



관계 안아서 살아가는 나는,
하지만 관계 이전에 나 자신이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전지영 작가의 '혼자라서 좋은 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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