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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jiya Jun 20. 2024

잠 못 드는 밤

육아월드 stage 1: sleepless


공복에 마시는 커피 한 모금은 오감을 깨워준다.


   나의 아침시간은 바쁘다. 9 to 6의 직장인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거기에 더해 고등학생 아들 등교 준비시키고, '개르신(개+어르신)' 봉양하는 일까지 수행해야 한다. 일어나면 우선 씻고, 머리 말리고, 정성껏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린다. 내린 커피의 절반은 내가 모닝커피로 마시고, 절반은 아들의 텀블러에 담아준다. 카페인음료를 자주 사 마시기에 차라리 좋은 원두로 내린 커피를 싸주기로 한 것이다. 커피맛을 알아버린 아들은 가끔 원두가 떨어져 가루커피를 타주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


 "오늘 커피는 이 없더라 엄마. 별로였어."

역시 내가 내린 커피가 맛있구나 싶어 뿌듯해진다. 그래서 커피 내리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이다. 모닝커피를 마시며 10분 정도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고 나면 본격적인 아침노동이 시작된다. 열여덟 살 먹은 몰티즈,  다솜이를 챙기는 일만도 한가득이다.

(노환이 와서 손이 정말 많이 간다.) 


사람나이로 100살이 넘은 다솜이, 최강동안이다.     "애미야~ 오늘은 사료 말고 고구마가 땡기는구나."


모든 루틴을 대강 마치면 아침일과의 하이라이트. 아들을 깨울 차례이다.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은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와 새벽 1~2시까지 공부를 하다 잔다. 그러니 카페인의 도움이 필요할 만도 하다. 아직 한밤중인 모습을 보면 깨우기가 안쓰럽지만 그래도 할 수 없다.

 "애옹아(아들의 애칭), 40분이 넘었다. 일어나~"

깼다가 다시 잠들고, 나는 또 깨우고. 그렇게 1분이 소중한 아침시간이 흐른다. 초조해진 내 목소리에 슬슬 노기가 서린다. (가방이 쌀가마니처럼 무거워 차로 데려다줄 때가 많아서 내가 아무리 일찍 준비를 마쳐도 아들이 늦으면 출근길에 질주본능을 발동해야 한다.) 저 나이 때, 공부를 안 했던 나는 아들이 기특하기도 하지만 아침에 이렇게 힘들 거면 그냥 일찍 잤으면 좋겠기도 하다.

입시가 뭔지...


그러다 마지노선의 시간이 오면 두드려서 깨운다. 아들은 이렇게 깨우는 걸 싫어한다. 어쩌면 깨우는 거 자체가 싫은 것일지도 모른다.


 "알았어~. 그렇게 파닥파닥 치지 마~~~."


나도 좋아서 그러는 건 아닌데...

순간 허우룩함을 느끼면서 반대로 아들이 나를 깨우던 시절이 떠오른다.






   유난히 잠이 없는 꼬마 애옹이 분명 눈이 졸려 보여 재우려고 동화책을 읽어주면, 오히려  눈이 더 초롱초롱해져서는 "또!!"외친다. (아이 키울 때 "또"만큼 무서운 말이 없다.)하는 수 없이 다른 책을 꺼내 읽다 보면 금세 열 권을 훌쩍 넘긴다. 

내가 1인多역을 해가며 최선을 다한 탓인 것 같다. (빨리 재우는 게 목표라면 불 다 끄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스토리텔링은 위험하다.)


늦게 자고는 일찍도 일어난다. 그래도 고맙게 약간의 유예시간을 준다. 아직 자고 있는 엄마 배를 베개 삼아 누워서 뒹굴거리며 엄마냄새를 실컷 맡는다.  위의 묵직함만 견디면 조금 더 잘 수 있다. 그러다가 이내 참을성이 바닥나면 나를 깨우기 시작한다. 


 "엄마 이여나(일어나)~ 이너(인나)~~~" 


검지손가락을 잡고는 그 작은 몸으로 나를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너스타임 끝.  






   아침 일찍 깨우는 건 그래도 양반이다.

갓난아기 때는 낮과 밤이 바뀌어 그야말로 

'매운맛' 육아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집에 돌아와 하룻밤은 아주 이상적이었는데, 친정엄마는 감탄하며 말했다.


 " 애기가 이렇게 순하냐. 남들은 집에 애기 있는 줄도 모르겠다."

그런데 둘째 날 ,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을 안 잔다. 엄마와 나는 첫째 날의 단꿈에 젖어 무방비로 낮을 보냈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나는 그래도 엄마 덕분에 자다 깨다를 반복했지만, 엄마는 밤새 아기를 안고 달래느라 거의 못 잤다.(엄마 미안)


낮이라고 하게 자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찡찡거리던 지난밤에 친정엄마가 밤새 안아준 에 손을 탔는지 쭉 자기를 안고 재우란다.

등에 센서라도 있는 것처럼 침대에 누이 "엥!".

무시무시한 공습경보가 울린다. 


"백일이 되면 좀 낫다더라."

사람들은 위로했지만 '백일의 기적'은 없었다. 이렇게 잠에 예민한 아들 덕분에 나는 꼬박  동안 대부분의 날들에 통잠을 자지 못했다. 


왼쪽: 밤 / 오른쪽: 낮





   나에게 육아는 인생 최초로 다른 개체를 위해 가장 원초적인 욕구를 희생하는 일이었다.

잠 못 드는 나날들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기억 속에는 없던 엄마의 수고들이 헤아려졌다. '나도 한때 누군가의 귀한 아기였구나.'

헌신한 사람이 생색내지 않아서 몰랐을 뿐이다.

(나는 이 글을 보여주면서 약간 생색을 내야겠다.)


   나의 보배롭고 소중한 잠투정쟁이는 요즘 평소엔 밤 반이 돼야 집에 오고, 지필고사를 앞두면 스터디카페에서 자정이 넘어야 온다. 하루에 얼굴 보는 시간이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날이 많다. 

힘들 텐데도 과정을 즐기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대견하다. 입시결과가 어떻든 체득한 노력의 힘은 평생 자산이 되어줄 것이다. 

커주고 있어서 고맙다.


밤 열 시쯤 되면 연약한 내 몸은 이제 그만 자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렇지만 아들의 귀가를 확인해야 안심하고 잘 수 있는 엄마의 마음은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잠 못 드는 ' 보내며 밀린 잠을 한껏  수 있는 주말을 기다린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깨달은  가지.

꼬마 애옹이는 비록 잠이 없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일어나서 엄마를 바로 깨우지 않고, 작고 여린 온몸으로 "엄마, 사랑해"를 말하면서 엄마가 일어나기를 기다려줬던 것 같다.


내일 아침부터는 '파닥파닥' 초조한 손길이 아닌 '쓰담쓰담' 사랑으로 여유롭게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을 기다려주리라 다짐해 본다.

그러려면 깨우는 시간을 살짝 당기는 게 불가피하겠다.



"일어나십시오! 일어나셔야 합니다! 이렇게 쓰러지셔서는 안 됩니다!!" (드라마 '야인시대' 대사이자, 무한반복되는 아들의 휴대폰 알람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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