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침시간은 바쁘다. 9 to 6의 직장인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거기에 더해 고등학생 아들 등교 준비시키고, '개르신(개+어르신)' 봉양하는 일까지 수행해야 한다.일어나면 우선 씻고, 머리 말리고, 정성껏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린다. 내린 커피의 절반은 내가 모닝커피로 마시고, 절반은 아들의 텀블러에 담아준다. 카페인음료를 자주 사 마시기에 차라리 좋은 원두로 내린 커피를 싸주기로 한 것이다. 커피맛을 알아버린 아들은 가끔원두가 떨어져 가루커피를 타주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오늘 커피는 향이 없더라 엄마. 별로였어."
역시 내가 내린 커피가 맛있구나 싶어 뿌듯해진다. 그래서 커피 내리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이다. 모닝커피를 마시며 10분 정도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고 나면 본격적인 아침노동이 시작된다. 열여덟 살 먹은 몰티즈, 다솜이를 챙기는 일만도 한가득이다.
(노환이와서 손이 정말 많이 간다.)
사람나이로 100살이 넘은 다솜이, 최강동안이다. "애미야~ 오늘은 사료 말고 고구마가 땡기는구나."
모든 루틴을 대강 마치면 아침일과의 하이라이트.아들을 깨울 차례이다.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은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와 새벽 1~2시까지 공부를 하다 잔다. 그러니 카페인의 도움이 필요할 만도 하다. 아직 한밤중인 모습을 보면 깨우기가 안쓰럽지만그래도할 수 없다.
"애옹아(아들의 애칭), 40분이 넘었다. 일어나~"
깼다가 다시 잠들고, 나는 또 깨우고.그렇게 1분이 소중한 아침시간이 흐른다.초조해진 내 목소리에 슬슬 노기가 서린다.(가방이 쌀가마니처럼 무거워 차로 데려다줄 때가 많아서내가 아무리 일찍 준비를 마쳐도 아들이 늦으면 출근길에 질주본능을 발동해야 한다.)저 나이 때, 공부를 안 했던 나는 아들이 기특하기도 하지만 아침에 이렇게 힘들 거면 그냥 일찍 잤으면 좋겠기도 하다.
입시가 뭔지...
그러다 마지노선의 시간이 오면 두드려서 깨운다. 아들은 이렇게 깨우는 걸 싫어한다. 어쩌면 깨우는 거 자체가 싫은 것일지도 모른다.
"알았어~. 그렇게 파닥파닥 치지 마~~~."
나도 좋아서 그러는 건 아닌데...
순간 허우룩함을 느끼면서반대로아들이 나를 깨우던시절이떠오른다.
유난히 잠이 없는 꼬마 애옹이는분명 눈이 졸려 보여재우려고 동화책을 읽어주면, 오히려 눈이 더 초롱초롱해져서는 "또!!"를 외친다. (아이 키울 때 "또"만큼 무서운 말이 없다.)하는 수 없이 다른 책을 꺼내 읽다보면 금세 열 권을 훌쩍 넘긴다.
내가 1인多역을 해가며 최선을 다한 탓인 것 같다. (빨리 재우는 게 목표라면 불 다 끄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스토리텔링은 위험하다.)
늦게 자고는 일찍도 일어난다.그래도고맙게 약간의 유예시간을 준다. 아직 자고 있는엄마 배를 베개 삼아 누워서뒹굴거리며 엄마냄새를 실컷 맡는다. 배 위의 묵직함만 견디면조금 더 잘 수 있다. 그러다가이내 참을성이 바닥나면나를 깨우기 시작한다.
"엄마 이여나(일어나)~ 이너(인나)~~~"
내 검지손가락을잡고는그 작은 몸으로 나를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쓴다.뽀너스타임 끝.
아침 일찍 깨우는 건 그래도 양반이다.
갓난아기 때는 낮과 밤이 바뀌어 그야말로
'매운맛' 육아였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집에 돌아와하룻밤은아주 이상적이었는데, 친정엄마는 감탄하며 말했다.
"뭔 애기가 이렇게 순하냐.남들은 집에 애기 있는 줄도 모르겠다."
그런데 둘째 날밤, 갑자기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을 안 잔다. 엄마와나는 첫째 날의 단꿈에 젖어 무방비로 낮을 보냈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나는 그래도 엄마 덕분에 자다 깨다를 반복했지만, 엄마는 밤새 아기를 안고 달래느라 거의 못 잤다.(엄마 미안)
낮이라고 순하게 잘 자냐면, 그것도아니었다. 찡찡거리던 지난밤에 친정엄마가 밤새 안아준 탓에 손을 탔는지 쭉 자기를 안고 재우란다.
등에 센서라도 있는 것처럼침대에 누이면"엥!".
무시무시한 공습경보가 울린다.
"백일이 되면 좀 낫다더라."
사람들은 위로했지만 '백일의 기적'은없었다. 이렇게 잠에 예민한 아들 덕분에 나는 꼬박일 년 동안대부분의 날들에 통잠을 자지 못했다.
왼쪽: 밤 / 오른쪽: 낮
나에게육아는인생 최초로 다른 개체를 위해 가장 원초적인 욕구를 희생하는 일이었다.
잠 못 드는 나날들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나의 기억 속에는 없던 엄마의 수고들이헤아려졌다.'나도 한때 누군가의 귀한 아기였구나.'
헌신한 사람이 생색내지 않아서 몰랐을 뿐이다.
(나는 이 글을 보여주면서 약간 생색을 내야겠다.)
나의 보배롭고 소중한 잠투정쟁이는 요즘평소엔 밤 열 시 반이 돼야 집에 오고,지필고사를 앞두면스터디카페에서 자정이 넘어야 온다.하루에 얼굴 보는 시간이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날이 많다.
힘들 텐데도 과정을즐기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대견하다.입시결과가 어떻든 체득한 노력의 힘은 평생 자산이 되어줄 것이다.
잘 커주고 있어서 고맙다.
밤 열 시쯤 되면연약한내 몸은 이제 그만 자라는 신호를 보낸다.그렇지만 아들의 귀가를 확인해야 안심하고 잘 수 있는 엄마의 마음은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그래서 나는 다시 '잠 못 드는 밤'을보내며밀린잠을 한껏잘 수있는 주말을 기다린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깨달은 한 가지.
꼬마 애옹이는 비록 잠이 없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일어나서 엄마를 바로 깨우지 않고, 작고 여린 온몸으로"엄마, 사랑해"를 말하면서 엄마가 일어나기를 기다려줬던 것 같다.
내일 아침부터는'파닥파닥' 초조한 손길이 아닌 '쓰담쓰담' 사랑으로여유롭게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을 기다려주리라다짐해 본다.
그러려면 깨우는 시간을 살짝당기는게 불가피하겠다.
"일어나십시오! 일어나셔야 합니다! 이렇게 쓰러지셔서는 안 됩니다!!" (드라마 '야인시대' 대사이자, 무한반복되는 아들의 휴대폰 알람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