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ojiya Aug 29. 2024

엄마 냄새

시도 때도 없는 사랑 고백

꽃내음으로 에너지 충전 중인 붕붕이. 붕붕아, 너 눈이 어째...ㅎㅎ

 

 “자기 이 노래 알아?"


 "붕붕붕 아주 작은 자동차, 꼬마 자동차가 나간다.

  붕붕붕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꼬마 자동차

  엄마 찾아 모험 찾아 나서는 세계여행~

   (중략)

  귀여운 꼬마자동차 붕붕!!”     


계속 떠오르는 것도 신기하고 멜로디도 흥겨워서 지금까지 완전히 잊고 지냈던 애니메이션의 주제곡을 완창했다.


얼마 전 내 어깨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는 아들을 보면서 내가 서너 살 꼬맹이 시절 즐겨봤던 만화 ‘꼬마 자동차 붕붕’이 떠오른 것이다. 지금 생각하 잃어버린 엄마를 찾아 세계를 여행하던 붕붕이는 꽃향기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친환경 낭만 자동차였네.


에너지원까지는 몰라도 코 끝에서 시작해 마음까지 도달하는 위안의 통로는 분명히 있다.

잘 볶아진 신선한 원두로 내리는 커피 향,

손으로 쓸어주면 진한 향으로 화답하는 로즈마리, 더운 날 비 오기 전 나는 흙냄새,

낙엽 태우는 냄새,

겨울에 온기를 더해주는 계피향 등등.

나에게 계절마다의 매력싱그러움, 생기, 따뜻함, 위로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냄새들이다.






   내가 붕붕이를 던 시절, 아빠에게서는 담배 쩐내와 인스턴트커피 냄새가 났다. 유쾌하지 않은 조합이지만 나에겐 그냥 당연한 아빠냄새였다. 아빠의 다정함이 녹아들어서일까? 담배냄새는 매캐하지만 묘하게 따뜻한 여운을 남긴다. 아빠가 금연한 지 이제 20년 가까이 됐는데도 나는 여전히 아빠에게서 담배냄새가 나는 것 같은 착각도 든다.


그럼 유년시절 내가 느낀 엄마 냄새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워낙 취향 자체가 강한 향을 좋아하지 않는 엄마는 화장품도 자주 바꿔 사용해서 특유의 냄새로 특징지어질 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엄마가 일본으로 간 후에 일본 집에서 맡았던 다다미 냄새가 나에겐 엄마 냄새에 가까운 것이다. 일본에서 엄마랑 지내다 돌아와 여행용 캐리어 가득 실려온 일본 집 냄새를 맡으면서 한동안 엄마와 보낸 시간을 추억하곤 했다.


나는 한국에 있던 엄마보다 일본에 있는 엄마가 좋았다. 여기 있던 때의 엄마는 어린 딸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만지는 것도 싫어했고, 무릎에 앉으면 살이 없는 내 엉덩이뼈가 아프다고 신경질을 냈던 우리 엄마. 


타고난 게 쉽게 주눅이 들어버리는 나는 그런 엄마와 적정거리를 유지할 때 마음이 편안했다. 그러면서도 엄마의 기분을 맞추고 싶어 속풀이용 어묵국물을 사 오라며 들려주는 냄비를 군말 없이 들고나가서 심부름을 하곤 했던 꼬맹이였다.


불안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아마도 일찍이 부모와 정서적으로 독립된 상태가 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사랑을 그리워한다.


        




   우리 집에는 붕붕이처럼 친환경 식습관은 없지만 냄새로 정서적 에너지를 충전하는 낭만 청소년이 살고 있다.


엄마라는 존재를 인식하고부터 애옹이(아들의 애칭)눈을 뜨자마자 엄마 냄새를 충분히 맡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돌 무렵 어느 아침에 시어머니가  옆에서 뒹굴거리던 애옹이를 휙 낚아채듯 거실로 데리고 나가셨다. 아이가 엄마만 찾으면 당신께서 아이를 돌봐주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경계하는 마음도 있었고, 당장은 내가 조금 더 잘 수 있도록 해주려는 배려였다.


 "으아앙"


애옹이는 온몸으로 거부했다. 싫다는 아이를 시어머니가 거실로 순간이동 시킨 후에 나는 호의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까 싶어 나가보지도 못하고, 잘 수도 없는 불편한 마음으로 방에 누워 있었다.


 “야, 애가 이상하다... 축 늘어져분다.”     


얼마 안 있어 다시 방문을 연 시어머니 말에 아이를 보니, 정말 축 늘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얼굴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고, 입술은 퍼렇게 질려 있었다. 청색증? 우리는 너무 놀라서 서둘러서 어린이 응급실이 있는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당시 시댁에서 차로 3, 40분 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애옹이를 품에 안고 계속 살폈다. 병원에 거의 도착할 무렵에는 혈색이 서서히 돌아왔지만 그래도 온 김에 진료를 보았다. 


호흡이며, 체온이며 별다른 이상은 없다고 했다. 아마도 할머니가 데리고 나갈 때 짜증이 나버린 아이가 순간적으로 숨을 안 쉬어서 그랬을 것이라는 응급의학과 선생님의 설명에 우리는 큰 문제는 아니어서 마음이 놓였지만 한편 어이가 없었다. 엄마냄새 못 맡아서 그렇게 화가 났어?


이후로 가족들은 아침에 엄마 곁에서 뒹굴거리는 애옹이의 시간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고 존중해 주었다.


         




 “으음~ 효지 냄새~”     


 “무슨 냄새가 나는데?”     


 “몰라. 설명할 수 없어. 그냥 엄마 냄새야.”     


나도 우리 엄마처럼 향이 진한 화장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이 먹을수록 특히 인공적인 향이 거북하다. 그런 나에게 나는 냄새란 무엇일까? 가끔 새 옷이세탁한 직후의 섬유유연제 향이 진한 옷을 입으면 엄마냄새가 나지 않는다면서 섭섭해하는 것을 보면 나만의 냄새가 있기는 한 모양이다.


이렇게 엄마 냄새에 환장하는 애옹이는 고등학생인 지금까지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꼬꼬마시절로 돌아간다. 앞자리가 4로 바뀌면서 부쩍 틈만 나면 누워있는 내 곁에 와서 꼭 내 팔을 베고 누워 어리광을 피운다. 예뻐해 주지 않으면 육중한 몸으로 오두방정을 떨고 한참 동안 혼자서 잘도 재잘거린다. 수다쟁이 애옹무새.


신체 부위 중 유난히 살이 없는 내 팔뚝 힘내~ 사춘기가 오면 말수가 줄어든다기에 약간 기대했는데, 잘 버텨라, 내 고막~






   아이와 포옹하고 얼굴을 쓰다듬고 이야기를 듣고 하는 시간들은 성장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느껴보지 못한 내 존재의 절대성과 고유성을 느끼게 해 준다. 아이가 주는 사랑은 내리사랑과는 또 다른 충만함있으니 나는 엄마가 되길 참 잘했다.


심하게 다정한 모습의 모자를 볼 때마다 남편은 징그럽다고 기겁을 하지만 내가 여든다섯 되고, 애옹이가 환갑이 돼도 나한텐 애기지 뭐. 나도 가끔은 고2가 이러는 게 괜찮은가 싶기도 하지만 나중에 여자친구 생기면 거들떠도 안 볼 테니 안길 때 많이 안아주련다. 


애옹이머지않아 내 품을 벗어나 이 험난한 세상에서 책임감을 짊어지게 될 것이다. 때로 인생이 쓰디쓰게 느껴질 때 엄마냄새의 잔향이 애옹이의 마음속에 달달한 위로가 된다면 좋겠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붕붕이는 결국 엄마를 찾았으려나? 주제곡은 이리도 생생한데 결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붕붕이도 꽃향기 대신 이렇게 좋은 엄마 냄새를 맡으면 을 텐데. 그리고 붕붕이 엄마는 또 붕붕이가 얼마나 보고 싶을까? 


모자 상봉이 이루어졌는지 결말을 좀 검색해 보면서 아들의 스터디카페 퇴실 문자를 기다려야겠다. 보고 싶다, 애옹아~





이전 11화 외동엄마 외동아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