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이랑 동갑내기인 내가 어렸을 때는 형제가 어떻게 되냐는 물음에 외동이라고 답하면 어른들 대부분이 이렇게 확인하고는 했다. “무남독녀 외동딸?”
아들들 사이의 외딸인 거냐, 찐 외동딸이냐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그만큼 외동이 드문 시절이었고, 남아선호도 잔재해 있던 시절이라 외동인 딸은 더 드물었다.
모든 형제지간이 다 서로 원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듯이 나 또한 원해서 외동이 된 것은 아니다. 형제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중학생 때 친한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자매끼리말다툼끝에 각자청소도구를 하나씩 들고 서로때리면서 싸우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갈등이나 다툼에 취약한 나였지만그럼에도 부러웠다. 적어도 외롭지는 않아 보였다. 유년시절부터 성인이 된 후까지도 나의 주된 정서는 단연 외로움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둘은 낳고 싶었다. 애옹이(아들의 애칭)가 나처럼 외로울까 봐 마음이 쓰였고, 내가 나이 먹고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딸도 하나 있었으면 했다. 다섯 살이 넘어도 함께 목욕탕에 갈 수 있는 예쁜 딸을 기대하면서 둘째를 가졌지만 임신 12주 차에 아기의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유산이 아주 드문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아무렇지 않은 일도 아니었다. 두 번은 겪고 싶지 않은 경험임이 분명했다. 그렇게 겁이 나서 미루다 보니 우리 애옹이도 결국 나처럼 외둥이가 됐다.
사람들은 남의 가족계획에 정말로 관심이 많았다. 2007년생인 애옹이가 중학생이 됐을 때까지도그리 가깝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둘째를 왜 안 낳느냐' 소리를 들었다.거리낌 없는 질문이 지겨워진 나는 이렇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낳고 싶은데, 안 생겨서요.”
다음에 이어질 예정이었던 둘째의 필요성에 대한 일장연설은 침묵으로 대체됐다. 둘째는 첫째 키울 때와는 달리 여유가 생겨 마냥 예쁘다는 얘기는 귀가 닳도록 들어서 안다. 그런데 나는 진심으로 궁금하다. 정말로 안 생겨서 못 낳는 것일 수도 있는데 어쩌자고 그런 질문을 쉽게 하는 건지 말이다. 첫째를 낳고 둘째에 난임이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나?
사실 이건 나의 숙명 같은 외로움을 아들에게 대물림한 것 같은 나만의 자격지심이 그저 관심의 표현으로 여기고 가볍게흘려들어도 그만인 것을 꽈배기처럼 꼬아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애옹이는 나와는 좀 달랐다. 외로움을 타지 않고 혼자서도 재밌는 것이 많은 아이였다.남편과 내가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어서인지, 조부모와도 친밀하게 지내서인지, 아니면 타고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엄마 뱃속에 있던 동생이 하늘나라에 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다섯 살이었던 애옹이는 딱 한 번 동생에 대해 미련을 표현했다.그 후로는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냐는 물음에도 그저 고개를 가로저을뿐이었다.
동기간의 부재를 친구로 메워보려던 나와는 달리 애옹이는 친구에게도 연연하지 않는다. 영화 보러 가자는 친구의 제안에 나는 별로 구미가 안 당겨도 친구가 보고 싶어 하면 같이 봐주는 편이라면 애옹이는 여지없다.
“나는 피곤해서 그냥 집에서 쉴래.”
친구들이 시험 끝나고 놀자고 연락을 해 와도 두 번에 한 번은갖은 핑계를대고, 혼자서 전철을 타고 놀러 나간다. 초등학생 때부터 혼밥에도 어려움이 없더니 요즘은 국밥에 꽂혀서 이문설렁탕, 잼배옥, 옥동식 같은 유명국밥집들을 찾아다닌다. 고독한청소년 미식가다.
나는 그런 애옹이를 보면서 꼭 외동이라서 외로운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사회성이 너무 부족한 것 같고, 저러다 친구가 하나도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다. 하지만 애옹이는 그런 걱정 없이 자기 '쪼'대로 한다.
"혼자 나가면 외롭지 않아? 엄마가 같이 가줄까?"
"엄마 힘들잖아~혼자 가도 괜찮아."
"뭐 재미난 거 봐도 대화할 사람도 없고 심심하잖아."
"그냥 풍경도 보고, 생각도 하고 그래. 나는 그런 게 좋아."
애옹이는 동행자가 아니어도 사람들 속에 있으면 혼자라는 기분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내 기준엔 확실히 독특하지만 나름의 철학을 가진 아이가 신기하기도 하고 멋져 보이기도 한다. 무작정 타인과의 소통과 공감을 최우선으로 여기던 나와는 다른 아이.
홀로 웨이팅이 긴 국밥집에 갈 정도는 못 되지만 지금은 나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모처럼의 자유시간이 생겼을 때 예전이라면 연락처 목록을 보면서 누구를 만날까 고민했겠지만 요즘은 그러지 않는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행복하다. 타인이 주는 만족은 얻기도 어렵고, 얻는다 해도 그 순간뿐이라는것을 깨닫게 된 연유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이유는안정적인 나의 가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너는 참 넘치지 않아." 하면서 세상물정에 어둡고 허당인 나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얄밉고도 고마운 남편과 다양한관심 주제로 옆에서 끊임없이 재잘거리는수다쟁이 아들.잔소리와 수다에 심심할 틈이 없다. 귀는 조금 아프지만소중하다. 아마도두 사람이곁에 있어서나는 고독을 즐길 수 있을만큼 단단해졌을 것이다. 매우 높은 확률로.
애옹이가 외로움을 타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둘째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둘이라면 두 배로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친정엄마도우리 집에 놀러 온 조카(시누이 딸)를 보면서 아쉬움을 표현하고는 한다.
"너도 저런 딸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딸 있으면 좋지... 근데 엄마, 나는 딸 부럽지 않은 살가운 아들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