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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jiya Aug 22. 2024

외동엄마 외동아들

단출해도 알찬 우리



   '82년생 김지영'이랑 동갑내기인 내가 어렸을 때는 형제가 어떻게 되냐는 물음에 외동이라고 답하면 어른들 대부분이 이렇게 확인하고는 했다. “무남독녀 외동딸?”


아들들 사이의 외딸인 거냐, 찐 외동딸이냐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그만큼 외동이 드문 시절이었고, 남아선호도 잔재해 있던 시절이라 외동인 딸은 더 드물었다.  

   

모든 형제지간이 다 서로 원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듯이 나 또한 원해서 외동이 된 것은 아니다. 형제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중학생 때 친한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자매끼리 말다툼 끝에 각자 청소도구를 하나씩 들고 서로 때리면서 싸우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갈등이나 다툼에 취약한 나였지만 그럼에도 부러웠다. 적어도 외롭지는 않아 보였다. 유년시절부터 성인이 된 후까지도 나의 주된 정서는 단연 외로움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둘은 낳고 싶었다. 애옹이(아들의 애칭)가 나처럼 외로울까 봐 마음이 쓰였고, 내가 나이 먹고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딸도 하나 있었으면 했다. 다섯 살이 넘어도 함께 목욕탕에 갈 수 있는 예쁜 딸을 기대하면서 둘째를 가졌지만 임신 12주 차아기의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유산이 아주 드문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아무렇지 않은 일도 아니었다. 두 번은 겪고 싶지 않은 경험임이 분명했다. 그렇게 겁이 나서 미루다 보니 우리 애옹이도 결국 나처럼 외둥이가 됐다.   


        




   사람들은 남의 가족계획에 정말로 관심이 많았다. 2007년생인 애옹이가 중학생이 됐을 때까지도 그리 가깝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둘째를 왜 안 낳느냐' 소리를 들었다. 거리낌 없는 질문이 지겨워진 나는 이렇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낳고 싶은데, 안 생겨서요.”     


다음에 이어질 예정이었던 둘째의 필요성에 대한 일장연설은 침묵으로 대체됐다. 둘째는 첫째 키울 때와는 달리 여유가 생겨 마냥 예쁘다는 얘기는 귀가 닳도록 들어서 안다. 그런데 나는 진심으로 궁금하다. 정말로 안 생겨서 못 낳는 것일 수도 있는데 어쩌자고 그런 질문을 쉽게 하는 건지 말이다. 첫째를 낳고 둘째에 난임이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나?    

  

사실 이건 나의 숙명 같은 외로움을 아들에게 대물림한 것 같은 나만의 자격지심이 그저 관심의 표현으로 여기고 가볍게 흘려들어도 그만인 것을 꽈배기처럼 꼬아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애옹이는 나와는 좀 달랐다. 외로움을 타지 않고 혼자서도 재밌는 것이 많은 아이였다. 남편과 내가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어서인지, 조부모와도 친밀하게 지내서인지, 아니면 타고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엄마 뱃속에 있던 동생이 하늘나라에 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다섯 살이었던 애옹이는 딱 한 번 동생에 대해 미련을 표현했다. 그 후로는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냐는 물음에도 그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동기간의 부재를 친구로 메워보려던 나와는 달리 애옹이는 친구에게도 연연하지 않는다. 영화 보러 가자는 친구의 제안에 나는 별로 구미가 안 당겨도 친구가 보고 싶어 하면 같이 봐주는 편이라면 애옹이는 여지없다.


 “나는 피곤해서 그냥 집에서 쉴래.”     


친구들이 시험 끝나고 놀자고 연락을 해  두 번에 한 번은 갖은 핑계를 대고, 혼자서 전철을 타고 놀러 다. 초등학생 때부터 혼밥에도 어려움이 없더니 요즘은 국밥에 꽂혀서 이문설렁탕, 잼배옥, 옥동식 같은 유명 국밥집들을 찾아다닌다. 고독한 청소년 미식가.         


 




   나는 그런 애옹이를 보면서 꼭 외동이라서 외로운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사회성이 너무 부족한 것 같고, 저러다 친구가 하나도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다. 하지만 애옹이는 그런 걱정 없이 자기 '쪼'대로 한다.


 "혼자 나가면 외롭지 않아? 엄마가 같이 가줄까?"


 "엄마 힘들잖아~ 혼자 가도 괜찮아."


 "뭐 재미난 거 봐도 대화할 사람도 없고 심심하잖아."


 "그냥 풍경도 보고, 생각도 하고 그래. 나는 그런 게 좋아."


애옹이는 동행자가 아니어도 사람들 속에 있으면 혼자라는 기분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내 기준엔 확실히 독특하지만 나름의 철학을 가진 아이가 신기하기도 하고 멋져 보이기도 한다. 무작정 타인과의 소통과 공감을 최우선으로 여기나와는 다른 아. 






   홀로 웨이팅이 긴 국밥집에 갈 정도는 못 되지만 지금은 나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모처럼의 자유시간이 생겼을 때 예전이라면 연락처 목록을 보면서 누구를 만날까 고민했겠지만 요즘은 그러지 않는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행복하다. 타인이 주는 만족은 얻기도 어렵고, 얻는다 해도 순간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연유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안정적인 나의 가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너는 참 넘치지 않아." 하면서 세상물정에 어둡고 허당인 나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얄밉고도 고마운 남편과 다양한 관심 주제로 옆에서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수다쟁이 아들. 잔소리와 수다에 심심할 틈이 없다. 귀는 조금 아프지만 소중하다. 아마도 사람이 곁에 있어서 나는 고독을 즐길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을 것이다. 매우 높은 확률로.






   애옹이가 외로움을 타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둘째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둘이라면 두 배로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친정엄마도 우리 집에 놀러 온 조카(시누이 딸)를 보면서 아쉬움을 표현하고는 한다.


 "너도 저런 딸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딸 있으면 좋지... 근데 엄마, 나는 딸 부럽지 않은 살가운 아들이 있어서~"


 "응, 그건 또 그렇다."


반박불가. 단출한 세 식구는 그래도 꽤 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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