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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jiya Aug 06. 2024

엄마의 추억 지킴이

토마스를 지켜줘!



   아들의 꼬꼬마시절 물건이었지만 지금은 나의 애착물건이 된 토마스 슬리퍼. 애옹이(아들의 애칭)의 최초 덕질은 '토마스와 친구들'이었다. 선두에 입체감 있는 얼굴이 달려 있고 토마스, 헨리, 에밀리, 스탠리 등의 이름을 가진 기차들은 내 눈엔 좀 기괴했지만 애옹이는 영국냄새가 물씬 나는 이 애니메이션을 무척 좋아했다. 어릴 적 사진을 보면 두 장 중 한 장은 '토마스와 친구들'이 그려진 옷들을 입고 있는 걸 보면 뽀통령(뽀로로)도 좋아하긴 했지만 토마스에 대한 애정이 더 컸었나 보다.


아이의 발이 커져 철 지난 물건이 됐어도 내 방의 한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이 슬리퍼는 일본에 살던 친정엄마가 애옹이를 위해 공수해 준 아이템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손주를 위해 친정엄마가 챙겨준 것들은 값진 것부터 소소한 것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만 국제우편 상자에서 처음 꺼냈을 때나 지금이나 저 슬리퍼를 보면 유난히 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를 나도 뚜렷하게는 모르겠다.


아마도 '애옹이의 발이 한 뼘도 안 되던 시절''친정엄마의 손주사랑' 이 두 가지 의미 정도로 설명되려나? 아무튼 저 한 켤레의 쌍둥이 토마스를 보면서 나는 자주 미소를 짓는다.


'작고 보드라운 발을 저 슬리퍼에 넣고 총총거리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꼬랑내 나는 왕발이 됐네.'


재작년에 이 슬리퍼를 떠나보낼 뻔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우리 집에는 시어머니가 아직 초등학교 입학 전인 조카(시누이의 딸)를 데리고 종종 놀러 오신다.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손녀딸과 콧바람을 쐬는 동안 딸과 사위는 육아에서 해방시켜 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다.) 외동인 나에게 피는 안 섞였지만 유일한 조카인 시누 딸은 '외숙모~' 하면서 나를 곧잘 따른다. 오랜만에 듣는 혀 짧은 소리가 귀엽다.


그날따라 조카의 발망치(뒤꿈치의 쿵쾅거림) 소리가 심해서 층간소음이 신경 쓰인 나는 토마스 슬리퍼를 조카의 발 앞에 놓아주었다. 키가 상위 10%인가 1%인가 안에 든다더니 발도 커서 간신히 딱 맞았다. 꼬마숙녀는 시키는 대로 착실하게 슬리퍼를 신고  방 저 방 다니며 조곤조곤 놀다가 침대에 누워서 쉬고 있는 내게 와서 무언가 결심한 듯 자기 발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근데 우리 집에는 이거 없어."


아이코, 이런. 누가 들어도 갖고 싶으니 달라는 소리다. 조카가 놀러 올 때면 나는 머리핀 같은 소소한 선물을 준비해서 주기도 하고, 우리 집에서 마음에 들어 하는 물건이 있으면 "응, 가져 가져~" 하면서 손에 쥐어주고는 했다. 결정권이 내게 있는 물건이라면 단 한 번의 인색함도 보인 적이 없었으니 조카 입장에서 외숙모는 뭐든 주는 사람으로 학습이 될 만도 했다. (아들의 기차 컬렉션이라면 나에게 권한이 없으니 재밌게 가지고 놀다가 집에 가져가지 못한 경험도 물론 있다.)


'토마스와 친구들'을 모르는 조카가 이 슬리퍼를 마음에 들어 하는 건 전혀 예상 밖이었다. 눈만 땡그랗고 팔자주름 깊은 토마스 얼굴이 꼬마숙녀의 취향을 저격할 만한 생김새는 아닌데... 조카의 취향에 대한 부분은 차치하고, 아무튼 나는 이 슬리퍼는 내어줄 마음이 '1'도 없었다.


'조카야, 너는 티니핑 취향이잖아. 어차피 네 발에도 곧 작아질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하면서 조금 치사하지만 속 뜻 같은 건 못 알아듣는 외숙모를 연기했다.


"응, 그렇구나..."





  소기의 목적달성에 실패하고 방에서 나간 다섯 살 꼬마숙녀는 영리했다. 잠시 후 말귀 못 알아듣는 멍청한 외숙모를 이해시킬 수 있는 해결사를 대동하고 다시 나타났으니. 쭈뼛거리는 조카 옆에서 시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네가 말해~ 바보 같이 왜 말 못 해? 외숙모한테 '갖고 싶어요' 해."


시선은 조카를 향했지만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하는 대상은 분명 나였다. "어, 그래, 가져 가져"가 나와줘야 할 타이밍. 그래야 나는 마음이 좀 헛헛하더라도 이 장면은 훈훈하게 마무리가 될 터였다. 더구나 시어머니는 더 이상 애옹이 발에 맞지 않는 슬리퍼에서 느끼는 나의 감성을 이해할 리 없기에 설명할 생각 같전혀 들지가 않으니 꼼짝없이 뺏기는구나 싶었다.


'에이, 그래... 이 몇백 엔짜리 슬리퍼가 뭐라고...'


그런데 참 이상했다. 생각과는 달리 토마스 슬리퍼에 대한 나의 마음은 점점 부풀어서 이번만큼은 순순히 "가져 가져"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 순간 슬리퍼에 대한 나의 마음은 애착을 넘어서 신념 비슷한 것까지 생겨나고 있으니, 나라에 이런 마음이 생기면 나란 사람은 어쩌면 목숨 걸고 독립운동도 했겠구나 싶었다.


 "어... 근데 이게 오빠 거라서... 오빠한테 가서 물어볼까?"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하는 마음으로 결정권을 아들에게 넘겼지(내 생각엔) 감정선이 둔한 애옹이가 이런 내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어진 몇 분 동안 나의 추억에게 작별을 고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하나밖에 없는 조카잖아... 이깟 신지도 못하는 슬리퍼가 뭐라고!! 좋은 외숙모 해야지...'






똑똑똑.


"애옹아, 모네(가명)가 이거 갖고 싶대. 줘도 돼?"


"응... 그래?"

"나는 상관없는데, 그거~ 엄마가 보면서 맨날 (내 목소리를 흉내 내며) '네가 이거 신었던 때가 있었는데에~' 하는 거잖아."


"그래도 네가 괜찮으면 줄게. (소곤소곤) 줘야 될 것 같아."


"아니, 내가 싫어~ 안 줄래."

(조카에게) "모네, 그거 오빠 거라서 안 돼."


'어머, 심쿵. 언제 그런 것까지 헤아리는 섬세함이 생겼는지 이 스윗한 녀석. 엄마 마음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구나.' 


든든한 내편으로 커준 아들 덕분에 추억의 물건을 계속 곁에 둘 수 있게 된 나는 신나는 마음으로 토마스처럼 팔자주름 깊게 웃으며 조카와 인터넷으로 10페이지도 넘게 구경한 끝에 예쁜 새 실내화 두 켤레를 골라서 시누네 집으로 주문해 주었다.


조카도 나도 만족스러웠지만 시어머니는 옆에서 그냥 작아진 거 주면 될 것을 큰 손자가 이상한 고집을 부려 며느리가 괜한 돈을 쓴다고 마음 안 좋아하며 지켜보셨다.


'저 하나도 안 아까워요. 열 켤레도 사줄 수 있어요~~'라는 말은 아꼈다.


이제 토마스 실내화에는 아들의 꼬꼬마 시절의 추억과 친정엄마의 손주사랑과 나의 추억을 지켜준 아들의 스윗함까지 더해졌으니  정도면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추억이 담긴 옷을 입혀서 묻어달라고 말한 소녀처럼 나도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죽으면 토마스 실내화를 같이 묻어줘. 화장한다구? 그럼 납골당에 넣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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