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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jiya Aug 14. 2024

사과에는 복숭아가 제격

아이와 함께 자라다



   요즘 과일가게에 복숭아가 한창이다. 한 입 베어 물면 달콤한 과즙이 손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말랑이’도 좋지만 향긋하면서 단단한 복숭아를 난 더 좋아한다. ‘딱딱이’ 복숭아가 약간 시들어서 쫀쫀한 식감이 더해지면 내 기준 최상의 상태다. 덥고 입맛 없는 여름, 복숭아는 나의 기력을 보충해 주는 고마운 과일이다. 그리고 아들의 사랑이기도 하다.     


애옹이(아들의 애칭)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복숭아 두 개를 사 가지고 와서 상기된 얼굴로 나에게 내밀었던 적이 있었다.               






   우리 집 꼬맹이는 학습적으로는 똘똘한 편이었지만 생활면에서는 부족함이 많았다. 행동이 어설프기도 했지만 늘 자기 관심 있는 것들에만 몰두하니,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을 잘 챙기지 못한다(진행형).

     

정리 정돈 못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외모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 꼬마 때는 샤워하고 머리에 거품을 한 덩어리 달고 나오기가 부지기수였고, 옷이라는 건 애옹이에게는 몸을 가리면 그만인 것이다. 물건은 또 왜 이렇게 잘 잃어버리는지. 우산을 하도 잘 잃어버려서 투명 우산을 묶음으로 주문해 놓아도 어느새 보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그래도 꼬마 때나 지금이나 샤워하면서 콧노래를 부르는 건 너무나 귀엽고, 멋 부리지 않아서 옷을 사다 주는 대로 입어주니 고맙다. (상의와 하의를 어떻게 매칭해도 어울리도록 사는 건 나와 남편의 몫이다.) 잃어버린 우산은 또 어느 누군가 요긴하게 사용했겠지 뭐. 나는 어쩔 수 없는 아들바보인가 보다. 그러나 이 ‘도치어멈’에게도 도저히 귀엽게 넘길 수 없는 순간이 딱 하나 있었다.    


           




    바쁜 아침시간. 애옹이는 초등학생 때까지는 늦잠은 안 잤지만 꾸물거리기 대장이었다. 아침 안 먹으면 큰일 나는 삼식이라서 밥을 차려주고 나는 나대로 분주하게 준비를 한다. 


나가야 될 시간에, 애옹이는 준비를 다했나 싶어 보면 옷을 안 입고 책을 보고 있거나, 옷을 뒤집어서 입고 있거나, 당일에 필요한 준비물을 그제야 말하기도 한다. 개미 목소리를 가진 내가 사자후를 내지르는 순간이다.


"야!!!!"


거의 매일 아침 이와 실랑이를 벌였는데, 하루는 화를 못 이겨 애옹이의 팔뚝을 툭툭 때렸다. 근데 요 녀석 태권도 좀 배웠다고 방어를 잘한다. 이게 또 그냥 방어가 아니라 약간 공격이 가미된 방어였다. 약이 올라서 나는 계속 때리고, 애옹이는 반격하고 엄마와 초3 아들이 주먹다짐하는 꼴이 돼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이게 무슨 꼴사나운 짓인지.      


가볍게 웃어넘길 수도 있는 이 일이 계속 내 마음에 남아있는 것은 당시의 내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삼십 대 중반에 들어서 청춘도 중년도 아닌 나는 사는 게 권태롭고 무료했다. 주변의 걱정 속에 엄마가 됐지만 큰 무리 없이 직장도 구하고, 집도 마련하고 구색을 갖춰나갔다. 그러나 생활이 안정되면 행복할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마음이 공허했다. 일이며 사람이며 만족스러운 것이 없었고, 재미도 없었다.


건강하지 못한 나의 마음이 매일 아침 아이에게 화를 냈던 건 아닐까? 나의 마음은 어쩜 이리도 궁핍하여 쉽게 바닥을 보이고 마는 것일까? 화조차 온당하게 내지 못하는 나의 정서가 안정감 없이 자란 성장과정 때문인가 싶어 속이 상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아이에게 화를 낸 건 결국 내 마음의 괴로움으로 되돌아왔다.

          





   내가 자책하고 있는 시간에 애옹이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엄마를 위해 복숭아 두 개를 샀다.

     

 “엄마, 미안해. 내가 엄마 좋아하는 복숭아 샀어. 화 풀어.”     


하굣길에 마트에 진열된 탐스러운 복숭아를 보고 아침에 다툰 엄마가 생각이 초등학교 3학년 짜리 아이는 직원분께 복숭아가 얼마인지 여쭤보고, 가진 돈에 맞춰서 살 개수를 정하고, 예쁜 것으로 골라서 계산을 하고, 가방에 담아 왔을 것이다. 아이가 나를 생각하면서 했을 그 일련의 과정을 생각하니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나는 그 복숭아 두 개를 씻어서 아일랜드 식탁에 올려놓고 며칠 동안 아까워서 먹지도 못하고 바라만 보면서 감상했다. 생각해 보니 애옹이는 나뿐만 아니라 지독스러운 아빠의 짜증도 항상 묵묵히 받아주는 아이였다. 그 순간은 시무룩해져도 5분도 못 가서 잊어버리고 재잘거리는 속 좋은 우리 아들.     

 

소중한 복숭아가 더 두면 물러서 버려지게 될까 봐 사진으로 남기고 맛있게 먹었다. 권태감도 공허함도 사라지고 입안 가득 복숭아 향만 가득했다. 아이사랑이 코 끝 찡하게 달콤했다.


 “엄마가 더 미안해...”    

            

내리사랑'이란 말이 있지만 나는 아이를 키우는 내내 아이의 사랑을 먹고 같이 자라고 있다. (나도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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