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과일가게에 복숭아가 한창이다. 한 입 베어 물면 달콤한 과즙이 손목을 타고 흘러내리는‘말랑이’도 좋지만 향긋하면서 단단한 복숭아를난 더 좋아한다. ‘딱딱이’ 복숭아가 약간 시들어서 쫀쫀한 식감이 더해지면 내 기준 최상의 상태다. 덥고 입맛 없는 여름, 복숭아는 나의 기력을 보충해 주는 고마운 과일이다. 그리고 아들의 사랑이기도 하다.
애옹이(아들의 애칭)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복숭아 두 개를 사 가지고 와서 상기된 얼굴로 나에게 내밀었던 적이 있었다.
우리 집 꼬맹이는 학습적으로는 똘똘한 편이었지만 생활면에서는 부족함이 많았다. 행동이 어설프기도 했지만 늘 자기 관심 있는 것들에만 몰두하니,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을 잘 챙기지 못한다(진행형).
정리 정돈 못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외모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 꼬마 때는 샤워하고 머리에 거품을 한 덩어리 달고 나오기가 부지기수였고, 옷이라는 건 애옹이에게는 몸을 가리면 그만인 것이다. 물건은 또 왜 이렇게 잘 잃어버리는지. 우산을 하도 잘 잃어버려서 투명 우산을 묶음으로 주문해 놓아도 어느새 보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그래도 꼬마 때나 지금이나 샤워하면서 콧노래를 부르는 건 너무나 귀엽고, 멋 부리지 않아서 옷을 사다 주는 대로 입어주니 고맙다. (상의와 하의를 어떻게 매칭해도 어울리도록 사는 건 나와 남편의 몫이다.) 잃어버린 우산은 또 어느 누군가 요긴하게 사용했겠지 뭐. 나는 어쩔 수 없는 아들바보인가 보다. 그러나 이 ‘도치어멈’에게도 도저히 귀엽게 넘길 수 없는 순간이 딱 하나 있었다.
바쁜 아침시간. 애옹이는 초등학생 때까지는 늦잠은 안 잤지만 꾸물거리기 대장이었다. 아침 안 먹으면 큰일 나는 삼식이라서 밥을 차려주고 나는 나대로 분주하게 준비를한다.
나가야 될 시간에, 애옹이는 준비를 다했나 싶어 보면 옷을 안 입고 책을 보고 있거나, 옷을뒤집어서 입고 있거나, 당일에 필요한 준비물을 그제야 말하기도 한다. 개미 목소리를 가진 내가 사자후를 내지르는 순간이다.
"야!!!!"
거의 매일 아침 아이와 실랑이를 벌였는데, 하루는 화를 못 이겨 애옹이의 팔뚝을 툭툭 때렸다. 근데 요 녀석 태권도 좀 배웠다고 방어를 잘한다. 이게 또 그냥 방어가 아니라 약간 공격이 가미된 방어였다. 약이 올라서 나는 계속 때리고, 애옹이는 반격하고 엄마와 초3 아들이 주먹다짐하는 꼴이 돼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이게 무슨 꼴사나운 짓인지.
가볍게 웃어넘길 수도 있는 이 일이 계속 내 마음에 남아있는 것은 당시의 내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삼십 대 중반에 들어서 청춘도 중년도 아닌 나는 사는 게 권태롭고 무료했다. 주변의 걱정 속에 엄마가 됐지만 큰 무리 없이 직장도 구하고, 집도 마련하고 구색을 갖춰나갔다. 그러나 생활이 안정되면 행복할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마음이 공허했다. 일이며 사람이며 만족스러운 것이 없었고,재미도 없었다.
건강하지 못한 나의 마음이 매일 아침 아이에게 화를 냈던 건 아닐까? 나의 마음은 어쩜 이리도 궁핍하여 쉽게 바닥을 보이고 마는 것일까? 화조차 온당하게 내지 못하는 나의 정서가 안정감 없이 자란 성장과정 때문인가싶어속이 상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아이에게 화를 낸 건 결국 내 마음의 괴로움으로 되돌아왔다.
내가 자책하고 있는 시간에 애옹이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엄마를 위해 복숭아 두 개를 샀다.
“엄마, 미안해. 내가 엄마 좋아하는 복숭아 샀어. 화 풀어.”
하굣길에 마트에 진열된 탐스러운 복숭아를 보고 아침에 다툰 엄마가 생각이난 초등학교 3학년 짜리 아이는 직원분께 복숭아가 얼마인지 여쭤보고, 가진 돈에 맞춰서 살 개수를 정하고, 예쁜 것으로 골라서 계산을 하고, 가방에 담아 왔을 것이다.아이가 나를 생각하면서 했을 그 일련의 과정을 생각하니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나는 그 복숭아 두 개를 씻어서 아일랜드 식탁에 올려놓고 며칠 동안 아까워서 먹지도 못하고 바라만 보면서 감상했다. 생각해 보니 애옹이는 나뿐만 아니라 지독스러운 아빠의 짜증도 항상 묵묵히 받아주는 아이였다. 그 순간은 시무룩해져도 5분도 못 가서 잊어버리고 재잘거리는 속 좋은 우리 아들.
소중한 복숭아가 더 두면 물러서 버려지게 될까 봐 사진으로 남기고 맛있게 먹었다. 권태감도 공허함도 사라지고 입안 가득 복숭아 향만 가득했다. 아이의 사랑이코 끝 찡하게달콤했다.
“엄마가 더 미안해...”
‘내리사랑'이란 말이 있지만 나는 아이를 키우는 내내 아이의 사랑을 먹고 같이 자라고 있다.(나도 진행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