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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jiya Jul 24. 2024

기다려 주는 사이

두발자전거 배우기



   우리 동네는 신도시답게 자전거 도로가 아주 잘 되어있다. 그래서 우리 세 식구는 봄가을이면 계절의 변화와 바람을 즐기며 자전거를 자주 타고는 했다. 도시 중심에 위치한 호수공원까지 가서 공원 자전거길을 크게 두 바뀌 돌고 집에 오면 10Km로 1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딱 좋은 코스다.


셋 중에 내 자전거가 제일 좋은데도, 내가 늘 꼴등이다. 공원까지는 안전을 위해 남편이 후미를 지키지만 공원길에 들어서면 쌩하고 앞질러 가버린다. 시원하게 달리러 나온 거니까 이해하면서도 가끔은 괜히 얄밉다. 애옹이(아들의 애칭)도 가는 다리로 작은 자전거를 잘도 굴린다.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지? 이럴 때 보면 야리야리해도 사내아이가 맞구나 싶어 진다. 


그래도 남편과 달리 우리 애옹이는 내가 너무 뒤처지면 멈춰서 나를 기다려 준다. 역시 새끼.  


 "어이, 모기양반~ 같이 가~"


꼬마 애옹이는 혼자 쌩하니 가버려 시야에서 점점 작아지는 아빠 모습이 잡고 싶은데 날아가버리는 모기 같다면서 소리친다.






   애옹이는 여섯  된 해, 5월 8일에 두발자전거를 뗐다. 또래 아이들이 두발자전거 타는 것을 보니 우리 애도 이제 슬슬 보조바퀴를 떼줘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참이었다. 네 발로 기다 두 발로 우뚝 선 아이처럼 보조바퀴를 뗀 것만으로도 벌써 의젓해 보이는 자전거를 끌고 셋이서 집 근처 산책로로 처음 나간 건 그로부터 2주 전이었다.


남편은 의욕적으로 애옹이에게 설명하고 가르쳐주었다. 균형감이 생기도록 발을 페달에서 떼고 땅에 딛고 걷듯이 타 보는 연습도 시키고, 뒤에서 잡았다 몰래 놓는 고전적인 방법도 써보았다. 그러나 아이는 비틀거리며 몇 미터 못 가서 끝내 중심을 잃었.


나는 어릴 때 자전거가 없어서 초등학교 4학년쯤에 친구의 자전거를 같이 타고 놀면서 두발자전거를 배웠다. '이거 과연 탈 수 있을까?' 싶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중심이 잡혔다. 남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내 기억에 두발자전거 배우는 건 '그 한 번'만 되면 되는 거였다.


자기 생각보다 진도가 더딘 아이에게 남편은 슬슬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애옹이는 '그 한 번'의 감이 아직 안 왔던 것이다. 타고난 운동신경이 좋은 편도 아니었지만 고작 여섯 살에게 한두 시간 내에 두발자전거를 배운다는 것은 충분히 어려울 수 있는 일이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이제 남편은 아이가 쓴 헬멧을 주먹으로 퉁퉁 치면서 막말을 퍼부었다.


 "얘는 운동신경이 없어. 못 타 얘는. 아스퍼거라서 그래."


가엾은 우리 애옹이. 시간이 많이 흘러도 미화가 안 되는 기억 중 하나다. 어쩜 그렇게 성이 마른 지. 자기는 태어나자마자 두발자전거 타고 신생아실 갔나 보다. 아빠의 야단에 애옹이는 잔뜩 주눅이 들어버렸다. 그럴 수밖에. 나는 어려서 엄마가 무섭게 화를 내면 손이 떨려서 숟가락도 제대로 못 들었는걸. 곁에서 보는 나까지 시무룩해져 두발자전거 배우기 첫 시도는 그렇게 실패로 끝났다.






   그 후로 2주 동안 애옹이는 자전거를 일절 타지 않았다. 내심 이제 자전거를 안 타려나 보다 싶었지만 먼저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남편이 늦게 와서 집에 없던 날, 저녁밥을 먹고 식탁을 정리하고 있는 내게 애옹이가 말했다. 평소보다 조심스러운 말투로,


 "엄마... 우리 둘이 자전거 타러 가볼까?"


 "응, 그럴까?"


둘만 있는 시간을 기다렸던 걸까? 아무튼 우리는 2주 전에 갔던 산책로로 다시 나갔다. 전과 마찬가지로 비틀비틀거렸지만 애옹이는 꾸준히 시도했고, 나는 격려했다.


 "지금 당장 못 해도 괜찮아. 그래도 하다 보면 될 거야."


근데 이게 웬일? 나간 지 20분도 안 돼서 애옹이가 탄 자전거가 흔들림 없이 바람을 가르고 직선을 그리며 나아갔다.


"엄마, 나 타~~~"


"와, 됐다, 됐다!!"


선선한 바람에 달달한 꽃 냄새가 섞여 불어온 봄날 저녁이었다. 마침 어버이날이라서 아이와 나는 두발자전에 뗀 일에 '효도'라는 거창한 의미까지 부여하며 마음껏 신나 했다. 뿌듯함으로 상기된 애옹이의 표정을 보니 좋았다. 아이에게  시도가 실패가 아닌 과정으로 남을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그날 내가 아이에게 가르쳐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남편이 한 것처럼 체계적인 이론 설명도, 별도의 트레이닝도 하지 않았다. 내가 한 거라곤 그냥 다치지는 않는지 지켜보기다려 준 것뿐이었다.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나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애옹이 오늘 나랑 자전거 뗐어. 20분 만에."


트레이닝은 자기가 다 시켜놓고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은 나만 독차지하게 해 준 남편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아마도 셋이 함께 했더라면 더 행복한 기억이 됐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건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조용히 기다려 주는 게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이 글을 먼저 읽은 남편은 11 전의 자기 모습을 이렇게 평가했다.


 "아... 나 너무 쓰레기 같아... 저 부분 지워줘~~~"


나에게 브런치 알려준 거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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