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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미 Jan 26. 2023

“첫 발자국”을 내딛다 (2)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전, 개인전 - 작은 음악회


그림을 시작한 뒤부터 내가 꿈꾸어 오던 것이 있었다. 그 꿈은 나의 첫 개인전 개막식 날 작은 음악회를 개최하는 것이었다. 줄 긋기부터 시작한 초보 미술학도로서 개인전을 상상한다는 것도 주제파악이 안 되는 일인데 하물며 작은 음악회라니… 참으로 야무진 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언젠가 “꿈은 이루어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듯이 실제로 나는 지난해 개인전을 준비하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음악회를 염두에 두고 그에 적합한 갤러리를 예약했다. 무엇보다 음악회로 인해 다른 전시회에 피해가 가지 않아야 했고 무대와 관객을 위한 공간이 필요했기에 첫 개인전 치고는 비교적 넓고 독립적인 갤러리를 대관했다.


개인전을 위한 그림 그리기에 매진하는 한편 지속적으로 기타와 노래연습을 병행했고 음악회에 참여할 동료들을 섭외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연주와 화음을 도움받기 위해 과거 나의 첫 기타 선생님이셨던 “햇빛촌”의 멤버 백송묵 선생님을 초빙했다. 대학에서 강의 중인 백 선생님은 마침 개인전이 겨울방학 시즌이라 여유가 있다며 흔쾌히 락을 해주셨다.


나를 포함한 여성 트리오 F3는 당연지사였고 성악 4 중창단 “일콰트로”로 활동하는 전 직장동료, 그리고 색소폰을 연주하시는 선배를 공연 멤버로 섭외했다. 또한 사회자로 모든 행사에서 사회를 전담하는 입담으로 유명한 선배 한 분을 모시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중학교 시절 친구인 48년 지기 Y와 듀엣 무대를 준비했다. Y는 F3와 함께 노래할 때 세션으로 참여하는 친구라고 예전 글에서 소개한 바 있다. 그러나 사실 F3보다 훨씬 먼저 나와 음악을 공유했던 친구다. Y 또한 나만큼이나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빠져 살던 친구였다. 우리는 주변에 우리의 만남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아 최근까지도 주변 모두는 Y와 내가 그저 중학교 동창이려니 생각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만남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숨겨져 있었다.


1975년, 그러니까 무려 48년 전 여름이었다.


중학교 시절, 나는 공부를 그럭저럭 잘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가정형편상 여상 진학이 결정되어 있던 터라 공부보다는 음악과 영화에 빠져 매주 1-2차례 통기타 가수 공연이나 영화관을 순회했었다. 주로 갔던 곳은 현 SM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수만이 진행했던 TBC 라디오 “비바팝스”와 CBS의 청소년 대상 음악프로인 “세븐틴”의 공연 녹음 현장이었다.


어느 뜨거웠던 8월의 오후. 수많은 여학생들이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비바팝스” 공연 관람을 위해 정동 TBC 당시 동양방송 빌딩 앞에 공연 서너 시간 전부터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중의 한 명이 나였고 그  앞줄에서 공연을 기다리던 친구가 바로 Y였던 것이다. 지금으로 치자면 빠순이들의 만남이었다.


그렇게 알게 된 친구와 오랜 우정을 나누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일 텐데 Y는 나와 정서적으로 맞는 부분이 굉장히 많았다. 가정 형편도 비슷하여 곧바로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우리는 자주 만나 함께 공연을 다녔고 자주 만나면서도 수시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겨울 당시 명동의 미도파 백화점 등지를 다니며 양초, 램프 등 예쁜 선물을 교환하기도 하며 이후 여고시절을 함께 했고 오늘날까지 40년 이상 우정을 나누고 있다.


내가 기타를 배운 이후 함께 노래를 시작하여 몇 년 전 나의 회갑 기념 가정음악회를 했을 때 듀엣으로 함께 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한참 성장하던 시기, 우리 만남에 한동안 공백이 있었는데 몇 년이 지나 다시 만났을 때 우리의 아이들 또한 음악에 빠져 살고 있음을 확인하고 서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삼 남매 중 아들 둘이 기타에 빠져 직장에 다니면서도 음반을 발매하는 등 음악활동을 계속하고 있었고 Y의 두 딸 또한 피아노 학원 원장과 뮤지컬 강사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가 음악을 통해 만나고 노년을 기타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즐기게 된 것은 우리도 제어할 수 없는 DNA의 힘이 작용한 결과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나의 개인전 작은 음악회 출연진이 결정되었고 우리는 노래 선곡과 더불어 지난해 12월부터 약 한 달간을 수원에 있는 백송묵선생님 음악실을 드나들며 연습에 매진했다.   

 

그림 전시를 위해서도 준비할 일이 많았다. 그림을 마무리하여 전시할 작품을 선정하고 액자작업과 팸플릿, 포스터 제작 등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에 더해 음악회 준비까지 하자니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되었고 여러 사람이 서로 시간을 맞추는 일 등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또한 과연 내가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노래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때론  “내가 왜 시키지도 않은 미친 짓을 사서 하는 걸까?”라고 후회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50년 묵은 꿈이 이루어지는 그날을 축제처럼 즐기고자 하는 마음이 앞섰고 실제로 그렇게 즐기는 가운데 한 달의 연습 기간이 후딱 지나고 드디어 개인전 개막일, 그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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