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미 May 04. 2023

가슴 뛰는 재회를 고대하며

팬데믹을 넘어 5년 만에 재회하는 네 명의 친구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내게도 소중한 친구들이 많다. 특히 누구보다 흉허물 없이 나의 치부까지도 다 드러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고시절 친구들. 그중에서도 오늘은 매주 한 번씩 줌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미국에 사는 친구 두 명과 이들과 함께 단짝을 이루며 어울렸던 나를 포함 국내 거주하는 두 명, 모두 네 명의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미국 친구 두 명은 결코 끝남이 없을 것만 같았던 기나 긴 팬데믹 상황이 막 내리게 되자 무려 5년 만인 지난 주말 국내 입국하여 바로 내일모레 재회를 앞둔 친구들이다. 한 친구는 여고 졸업 후 몇 년 되지 않아 온 가족이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한국인과 결혼, 현재 텍사스에서 회계사로 일하고 있고 다른 친구는 국내에서 대학졸업 후 미국인과 결혼, 미시간에 살면서 대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는 여고 1학년 때 같은 반이 되어 모두 한 번씩 돌아가며 나와 짝꿍을 했었다. 키도 고만고만하여 여고시절 키 순서로 정한 번호가 10번부터 12번, 그리고 나머지 한 명도 20번을 넘어간 적이 없었다.


미시간 거주 친구는 휴대폰도 없던 시절 결혼, 출산, 육아와 바쁜 직장생활로 인해 연락이 끊겼으나 텍사스에 거주하는 친구와는 간혹 엽서나 카드로 끈질기게 인연을 이어갔었다. 그러나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십여 년 전, SNS를 통해 기적처럼 모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SNS를 통해 미시간 친구와 처음 연락이 닿았을 때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그 친구는 혹여 있을 수도 있는 재회를 기대하 국내 e-mail 계정을 삭제하지 않고 기다려 왔다고 한다.  우연한 검색 끝에 그의 e-mail 계정을 발견했고 일말의 기대감으로 메일을 발송했을 때 그렇게 곧바로 우리가 다시 연결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때마침 콘퍼런스 참석차 국내 입국을 앞두고 있던 친구와 거의 30여 년 만에 재회했을 때 전혀 변하지 않은 서로의 모습에 감동하고 기뻐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그 뒤로 1-2년 간격으로 입국하는 친구들과 수시로 여행도 다니고 소식을 나누며 살아왔었다.


그러나 예기치 못했던 팬데믹 상황으로 그들의 국내 입국 기회가 더 이상 허용되지 않았다. 간혹 메시지를 나누던 우리는 비 대면 회의에 사용하는 줌을 이용하여 매주 주말 미팅을 갖기로 하고 어언 3년을 줌으로 얼굴을 보며 한 주에 있었던 소소한 이야기, 어려운 일, 즐거운 일 등 우리의 모든 삶을 함께 나누어 왔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네 명의 친구들이 간직하고 있는 여고시절에 대한 기억의 단편들이 저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정작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서로를 기억해 주고 있었다. 특히 텍사스에 거주하는 친구는 나의 여고시절에 대해 너무도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사자인 나는 오히려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을 소환해 주는 경우가 많았기에 나는 더욱 우리의 대화가 즐거웠다. 생각해 보시라,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청춘, 나의 여고시절을 나보다 더 생생히 기억해 주는 친구가 있으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이겠는가!


그동안 미국 친구들이 국내 입국할 때마다 계곡과 바다로 또는 청계천 산책길 등 시내 일대를 안내하며 다녔었다. 어느 해 여름인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소나기 속에 석촌호수 밤 길을 산책했던 기억이나 부서지는 햇살을 받으며 세찬 바람 속에 물길이 빠져나간 대부도 갯벌을 걷던 추억들이 새롭다.


< 세찬 바람 속에 대부도 공원 길을 걷는 네 친구들 >


사실 무려 3년여를 매주 토요일 밤 (미국시간으로 이른 아침) 1-2시간씩 대화를 이어 갔기에 특별히 새롭게 할 이야기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렇게 가슴 뛰게 만남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서로 얼굴을 가까이 맞대고 이야기하는 가운데 처지고 주름진 얼굴 속에서도 우리의 소녀시절, 우리의 청춘을 다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서로의 빛나던 젊은 시절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그 시절이 쓰디쓴 청춘의 방황과 춥고 고단한 현실 속이었을지라도 말이다.


나보다 더 많이 나의 젊은 시절을 기억해 주는 친구들아,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워.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해도 즐거워 깔깔대는 우리들의 행복한 재회를 기대한다~!!


이전 18화 엄마의 마음, 엄마의 기도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