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지 못한 스물아홉, 일 년 후 떠나기로 결심하다.
"왜 하필 서른 살이나 되어서 혼자 배낭여행을, 그것도 남미로 떠나겠다는 거야?"
같은 질문이, 오늘로써 12번째였던가.
그러게 말이야, 나는 왜 떠나려고 하는 걸까?
"뭔가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야, 내 마음이 그래. 떠나보라고. 그게 다야"
지난 일 년 동안 준비하고 준비했던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오늘을 위해 잘 다니던 회사는 한 달 전에 그만뒀고 여행자금에 보탤 적금도 퇴직금도 다 받아둔 상태다.
<멕시코시티 in 부에노스아이레스 out> 왕복 비행기 티켓은 이미 4개월 전에 최저가로 사두고 디데이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배낭을 싸 보는 건 처음이라 애써 힘들게 쌌던 짐을 풀고 싸고 풀고 또 싸면서 빠진 것은 없는지 진이 빠지도록 확인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다니겠지만 떠나기 전부터 내심 완벽하고 싶었다. 남미 여행 정보가 많지 않아서 짐을 싸기 전에 미리 전체적인 일정을 짜두고 하루 일과를 천천히 상상하면서 짐을 챙겼다. 안전을 위해 귀중품을 넣고 다닐 복대 주머니도 챙기고 가방을 이중삼중 채워 줄 자물쇠도 잔뜩 준비하니 마음이 조금 놓인다.
남미 관련 프로그램이라 하면 단연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세계 테마 기행>을 빼놓을 수 없는데 몇 달을 남미 편만 찾아서 보고 또 봤다.매일 여행 관련 블로그와 카페를 뒤지며 최신 정보를 업데이트했고 남미 여행자들이 모인 오프모임도 참석하며 떠나는 전날까지 긴장감과 설렘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치안과 경제가 불안정하고 이동거리도 상당한 큰 대륙이라 걱정도 많았다. 여행정보도, 여행 경험도 부족하다 보니 디데이가 다가올수록 걱정과 불안감은 하늘을 찔렀다. 마침 티브이에서는 멕시코 갱들이 체포됐다는 어마 무시한 뉴스가 흘러나온다.
그때는 한창 유럽 배낭여행이 붐이어서, 친구들은 그 돈으로 유럽도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데 왜 하필 그 위험하고 낙후된 남미로 가는 거냐며 나를 뜯어말렸다.
그러게 말이야, 왜 남미였을까?
주변의 걱정과 기대 속에 디데이는 다가왔다. 서른 살이던 그 해 11월 16일, 인천을 출발한 비행기는 캐나다를 경유해 어느덧 목적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40여 시간을 달려 드디어 첫 도시인 멕시코시티가 발아래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하리만큼 담담했다.
책 속에서 또는 누군가의 블로그 속에서 보던 익숙한 풍경이라 그랬을까?
아니면 그 무섭다는 멕시코시티를 한밤중에 도착했다는 사실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던 걸까?
멕시코시티는 환상적일 만큼 너무 좋았고 여행의 마지막 도시였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하기까지는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후였다.
마지막 여행지였던 이과수 폭포 아래에서 내가 왜 이 여행을 떠나야만 했는지, 왜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깨달았다. 그것은 나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자 앞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다.
배낭여행을 떠났다고 해서, 무언가를 깨닫고 느꼈다고 해서 인생이 갑자기 바뀌거나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중남미 여행은 처음치고는 꽤 성공적이었다.
무엇보다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것은 분명하다.
여행 이후의 내 삶은, 아니 나는 변화하고 진화했으니까. 세상을 보는 시선도 아픔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법도 조금씩 배웠으니까.
멕시코로 떠나기 전, 친구가 나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한창 연봉도 오르고 승진도 할 텐데 멀쩡히 잘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갑자기 배낭여행이라니? 너 여행 좋아하지도 않았잖아~ 도대체 무슨 바람이 들었길래 그래. 그것도 멀고 위험한 남미를?’
그러게 말이다. 친구 말이 틀린 게 하나 없었다. 더구나 나는 제대로 해외여행을 해본 적도 없는데다 처음으로 혼자서 떠나는 여행이 지구 반대편 남미라니!
내가 이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던 건 29살의 ‘어느 날 갑자기’였다.
정말 느. 닷. 없. 이.
현실도피는 아니었다. 그저 내가 무얼 위해 살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갓 스무 살에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상경한 것이야말로 정말 현실도피였다. 서울이라는 큰 도시 속에는 더 많은 기회와 멋진 꿈들이 가득할 거라 믿었다. 순진하게도 그런 기대와 환상을 품었고 그렇게 철이 없던 나는 가혹한 현실을 마주하고는 곧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처음에는 월세를 벗어나는 게 목표였고 그다음은 커리어를 인정받아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게 목표였다. 대학에 진학한 동생 뒷바라지까지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는 나 스스로가 참 대단하다 믿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왔다고 믿었던 20대. 그런데 서른을 앞두고 막상 20대를 돌아보니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었다. 여전히 나는 변변한 집 한 칸 없었고 연봉은 몇 년째 동결에 승진은커녕 회사 내에서 사람 취급조차 받기 힘들었다.
그럼 난 무얼 위해서 열심히 달려왔을까? 갑자기 인생 자체가 허무하고 허탈했다.
분명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지금 내가 이룬 건 뭐지?
이런 나에게 미래는 있는 걸까?
여전히 나는 스무 살처럼 서툴기만 하고, 모르는 것 투성인데..
아직 어른이 채 되지 못했는데 어른인 척 20대를 보낸 건 아닐까?
아픔과 상처를 외면한 채 원래의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살았던 건 아닐까?
사람들의 선입견이 무서워서 나를 감추고 날이 서 있었던 건 아닐까?
그 상처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비겁하게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실은 하나도 잊지 못했으면서 잊은 척 스스로 기만했던 건 아닐까?
수많은 고민과 의문이 오갔지만 막상 털어놓을 친구도 가족도 없었다. 그게 더 비참하고 외로웠다. 하필 안 좋은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가족들과의 사이는 더욱 악화되었고, 잘 만나고 있던 남자 친구와는 하루아침에 아침드라마 속 막장 주인공들처럼 변해 있었다. 안정적인 직장은 있었지만 그 일이 나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도 몰랐고, 당장 현실에 타협해야 한다는 합리화로 나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도 벗어나지도 못했다.
한꺼번에 밀려온 수많은 고민과 상처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내 자존감을 망쳐 놓았다. 세상에 대한 비난과 원망으로 일상생활을 버텨내기 힘들 만큼 위태로웠다.
어쩌면 나는 원래부터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 앞에서는 일부러 당당한 척 밝은 척했지만 내 속은 언제나 곪아있었다. 그게 어느 날 갑자기 터져버린 것뿐이다. 아무에게도 나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그런데 나도 나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나는 자존감이 없는 사람인가.
나는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학대를 당하며 자랐다.
폭력, 방임, 가난. 어느 하나도 절대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자아를 잠식하고 오랜 시간 불행을 키운다. 가장 불행한 것은 타인에게도 불행이 간접 전이되어 선입견을 만들고 우리를 고립시킨다. 그것이 가장 불행한 이유는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을 속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피해자이지만 가해자처럼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뭘 해도 예쁠 나이 5살, 늘 우울하고 주눅 든 표정이 화난 아이처럼 보였는데 동네 어른들이 그 모습이 꼭 화난 표정에 주근깨가 가득한 ‘못난이 인형’ 같다고 놀렸다. 그게 뭔지 몰랐던 나는 못난이 인형 그림을 찾아보고는 처음으로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깔깔거리는 동네 어른들 속에, 웃겨 죽겠다는 엄마 아빠를 보며 처음으로 '사람을 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늘 울상인 못난이 인형을 누가 이해해줄 수 있을까? 누가 예쁘다고 할까? 그렇게 나는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다. 상처도 아픔도 함께 봉인해 버렸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그러면 어느 순간 다 없는 일처럼 될 줄 알았다. 너무도 어리석었다.
그런데 스물아홉 어느 날 갑자기, 마음속 깊이 봉인해두었던 그 판도라의 상자가 소리 없이 열리고 말았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위로해 주고 싶었고, 다 지나간 일이라고 다독여주고 싶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벗어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공포가 다시 떠올라 나를 숨 막히게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외롭고 세상은 아직도 너무나 가혹하고 잔인하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그저 죽을 용기가 없어 마지못해 살고 있는 것 같다.
상처는 하나도 아물지 않았고 난 여전히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 같다. 나에게만 행복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가끔 다리 위를 지날 때 "뛰어내리면 끝낼 수 있을까" 하는 위험한 생각도 한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럴 순 없었다. 아직 사랑도 행복도 다 느껴보지 못했는데 이대로 내가 사라지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인데.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우선 가장 쉬운 것부터 해보자’
일단 적성에 맞지도 않는 직업을 그만두기로 했다. 1년이라는 기한을 정해놓고 그동안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고민해도 도대체 내가 뭘 잘하고 좋아하는지를 몰랐다. 그게 그렇게 답답하고 억울했다.
난 여태 뭐하며 살았지? 내가 뭘 좋아했더라? 취미도 있었던 것 같은데...
어릴 때 내가 손재주가 좋았나? 노래를 잘했나? 그렇게 기억을 거슬러 가다 보니 운동을 좋아하고 독서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달리기 1등 했을 때, 독후감을 잘 써서 조회시간에 전교생 앞에서 상을 받았을 때였다.
동생과 매일 붙어 다니며 놀던 추억도 많았다. 그때 자주 하던 놀이가 지도를 예쁘게 색칠하고 나라 이름과 수도를 외우는 거였다. 난 그게 너무 재밌었다. 낡아서 나라 이름도 잘 안 보이는 지구본을 신줏단지 모시듯 매일 돌려봤다.
‘어른이 되면 지도 속의 나라를 다 다녀와서 빨주노초파남보로 예쁘게 색칠할 거야’
그때는 어른이 되면 다 세계여행을 떠나는 줄 알았다. 그 시절 그게 어른이 되고 싶은 유일한 이유였다. 갑자기 내 기억은 거기서 멈췄다.
“바로 그거야”
"어린 시절 그려본 꿈 중에서 유일하게 지금 이룰 수 있는 꿈"
지금 당장 운동선수도 작가도 될 수 없지만 세계여행은 떠날 수 있잖아! 그 꿈은 그 시절의 나를 가슴 뛰게 만들었고 어른이 된 지금의 나조차 흥분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단순하게 느닷없이, 나는 일 년 뒤 세계여행을 결심했다.
그런데 너무 신기하게도, 목표가 생긴 그날부터 불만 투성이던 회사생활도 견딜만했고 나를 괴롭히던 상사도 나를 불편하게 만들던 친구도 아무렇지 않았다.
돈을 모으기 위해 일 년 동안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 사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았다. 점심값조차 아끼기 위해 매일 도시락을 싸야 하는 귀찮음도 전혀 상관없었다.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더니, 정말 그랬다. 목표가 생기니까 하루아침에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신기한 일이다.
내 여행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하루하루 입가에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싶다는 순수한 호기심이,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고 나 스스로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단순한 집념이,
결국은 나를 신비롭고 아름다운 남미대륙으로 이끌었다.
치열하게 살았던 20대에 대한 보상이자, 찬란한 30대를 위한 선물!
상처는 누구에게나 있다. 더 깊고 누가 더 아픈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모습이든 각자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우리는 각기 다른 모양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여행 또한 누구나 떠날 수 있다. 거리가 멀고 시간이 짧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모양이든 어떤 빛깔이든 각자 간직하고 싶은 추억만 있으면 된다.그러니 이제 진짜 나의 여행을, 나의 상처를 마주할 것이다.
아마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나의 여행과 내 자존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