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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율 Oct 23. 2022

세상은 나쁜 어른들 뿐이야.

 오늘은 엄마가 라면 10개와 밀가루 한 봉지를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슈퍼에 들어서자 달콤한 과자와 사탕이 너무 먹고 싶었지만 하나 집었다가는 혼쭐이 날 게 뻔했기에 눈을 질끈 감고 라면과 밀가루만 집어 들고 후다닥 계산대로 향했다. 

그런데 우리 엄마 나이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는 계산을 하려다 말고 

“무슨 라면을 이렇게 많이 사니? 어린애들은 이런 거 먹으면 안 돼 몸에 엄청 나쁜 거야. 이런 것만 먹으면 엄마한테 크게 혼날 거야” 

라며 나를 안타깝게 쏘아보셨다. 나는 의아했다. 

“이거 엄마 심부름인데요?” 

 내가 꺄우뚱거리며 대답하자 아주머니는 갑자기 나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셨다. 두 손 가득 끙끙거리며 집으로 가는 내내 그 아주머니의 눈빛이 잊히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는 라면을 끓여주셨다. 오늘은 찬밥이 없으니 수제비를 넣어 먹자고 하셨다. 어제도 똑같은 걸 먹었지만 굶는 것보다는 나으니 괜찮다. 

좀 전에 슈퍼에서 본 과자와 사탕이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맛있는 건 없냐고 묻자 엄마가 커다란 봉다리를 하나 가져오신다. 봉다리 안에는 아이스크림 콘과자가 가득했다. 근처 아이스크림 공장에서 떨이로 사 온 거라 하셨다. 빵빠레 콘과자는 거의 아무 맛이 안 났고 뾰족한 세모 콘과자는 그나마 단 맛이 나서 먹을만했다. 슈퍼에서 파는 과자만큼 달콤하지 않았지만 바삭거리는 것을 먹는다는 것에 마냥 좋았다. 

  다음 날 엄마가 반찬이 없어 도시락을 싸지 못했다며 동전 몇 개를 쥐어주시곤 컵라면을 사 먹으라 했다. 언젠가 한 번 짝꿍이 짜장라면을 맛있게 먹는 걸 보고 멍하니 군침을 흘렸던 기억이 났다. 망설임 없이 짜장라면을 골랐지만 엄마가 준 돈으로는 50원이 부족해 짜장라면을 살 수 없었다. 너무 서운해서 발을 동동거리자 주인아주머니께서는 그런 내가 안타까우셨는지 오늘만 50원 빌려줄 테니 다음에 꼭 가지고 와야 한다며 짜장라면을 주셨다. 

너무 기뻐서 짜장라면을 받아 들었지만 또다시 문제가 생겼다. 짝꿍이 먹던 것처럼 다 익은 라면을 주는 줄 알았는데 비닐에 꽁꽁 싸인 상태였던 것이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사실 난 그때까지 컵라면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먹는 법을 몰랐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친구들은 키득거리면서 컵라면도 먹을 줄 모르는 바보라며 놀려대기 시작했다. 

그날 밤 친구들의 놀림 소리와 어제 슈퍼에서 나를 쳐다보던 아주머니의 눈빛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뭐가 잘못된 걸까? 


  오늘도 도시락 반찬은 신김치인가 보다. 학교 가는 내내 김치 냄새가 진동을 한다. 

짝꿍은 매일 계란말이에 멸치볶음을 싸오던데. 종종 비엔나소시지에 햄도 싸온다. 

그래서 짝꿍과 함께 점심을 먹는 게 신나면서도 눈치가 보인다. 심지어 짝꿍은 매일 점심을 먹고 매점을 간다. 각종 막대사탕, 쫄쫄이, 쭈쭈바, 과자 등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고르는 짝꿍이 너무 부러웠다. 가끔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나서면 사탕 한 알이나 아이스크림 한 입씩 주기도 했지만 매번 군침만 삼키고 구경만 하는 나에게 어느 날 짝꿍이

 “넌 이런 거 사 먹을 돈도 없어? 너희 집 가난해?”

 라고 비수를 꽂았다. 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자,

 “이거 백 원밖에 안 해 내가 하나 사줄까?”

 너무 먹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자존심에 사달라고 할 수는 없어서 

 “그냥 먹고 싶지 않아서 안 사 먹는 거야” 라며 돌아섰다. 

 내 머릿속에는 당장 내일 매점 아주머니께 50원을 어떻게 드려야 할까 그 고민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난 짝꿍이 참 좋았다. 내가 매일 김치 반찬만 싸가도 반찬을 나눠줬고, 매점에 같이 가주지 않아도 먹기 싫어졌다면서 과자 한 봉지 사탕 하나씩 건네주던 착한 아이였다. 

어느 날부터는 반찬통에 반찬을 미어터지도록 싸오기 시작했다. 엄마한테 내 얘기를 했더니 같이 먹으라고 반찬을 많이 싸주셨단다. 난 이 친구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데. 

 그날 나도 엄마에게 짝꿍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엄마의 반응은 시큰둥했고 대답은 참으로 이상했다. 

 ‘잘 사는 집인가 보네. 그런 애랑 너무 가까이 지내지 마 못된 것만 배워’ 

 그러던 어느 날 짝꿍이 나에게 계란말이와 소시지가 가득한 반찬통 하나를 통째로 내밀었다. 토끼눈으로 짝꿍을 바라보자 무슨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 귓속말로 다음 주에 가족들 모두 서울로 이사를 갈 거라 했다. 아직 선생님도 모르고 계시지만 넌 내 짝꿍이니까 먼저 말해주는 거라며 별 거 아니라는 듯 반찬통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나 이사 가기 전에 너 맛있는 거 많이 먹어 “ 

 나는 반찬통을 붙들고 펑펑 울었다. 그다음 날도, 짝꿍이 전학 가기 전날까지도 나는 펑펑 울었다. 서로 꼭 연락하자며 전화번호도 교환했지만 그 이후 우리는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짝꿍이 전학 간 이후 나는 학교생활에 더 흥미를 잃었다. 매일 점심시간마다 김치 반찬만 먹었고 매점은 어쩌다 준비물이나 사러가는 곳이었다. 친구들이 먹는 걸로 나를 약 올리면 무심한 듯 나를 챙겨주던 짝꿍이 더 그리웠다. 


  나는 뭘 사달라고 졸라본 기억이 없다. 어차피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많은데 부모님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셨다. 

슈퍼에 가면 맛있는 것들이 가득한데 그중 어느 것 하나도 돈이 없어 먹지 못한다는 게 화가 났다. 먹고 싶은 건 많고 참는 건 괴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하지 말아야 할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너무 먹고 싶은 마음에 슈퍼에서 과자를 훔치고 만 것이다. 어린 마음에 ‘딱 한 번만’ 소원까지 빌었지만 어설펐던 나는 그 자리에서 딱 걸리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 그 사실은 아빠 귀에 들어갔고 그날 나는 죽도록 맞았다. 아빠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아주 얇은 넝쿨 여러 개를 신문지에 돌돌 말아서 한 손에 움켜쥐고 있었다. 

바닥에 한번 내리쳤을 뿐인데 허공을 가르는 날렵하고 팽팽한 채찍 소리에 감히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소리만으로도 소름이 돋고 공포스러웠다. 아무리 신문지에 말았다지만 얇은 회초리의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채찍이 살에 닿을 때마다 살을 휙휙 휘감아 파고드는 것 같았다. 

숨이 멎을 만큼 살이 타들어가는 고통이었다. 온 세상이 찢어지는 고통이었다.

 처음에는 ‘엎드려’ 자세로 맞았다가 도저히 버틸 수 없어 자꾸 주저앉으니까 벽에 손을 짚은 상태에서 어깨부터 발목까지 죽도록 맞았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지만 얼마나 맞는 게 익숙했던지 눈을 질끈 감고 이 악물고 버텼다. 어차피 성이 풀릴 때까지 때릴 거란 걸 알았기에 그냥 포기하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방 안에는 날카로운 채찍 소리와 울부짖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몇 시간을 맞았는지 기억도 안 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바닥에 누워있었다.

너무 아파서 똑바로 눕지 못해 엎드려 있었다. 이마는 불덩이에 입안에 가시가 돋쳐 식음을 전폐했다. 처음으로 입안에 가시가 돋는 게 뭔지를 알았는데 포도알 다 따먹고 남은 포도송이를 입에 가득 물고 있는 기분이었다. 

 동생이 자기 용돈을 다 털어서 그때 당시 우리에게 가장 로망이었던 붕어싸만코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 평소라면 벌떡 일어나서 전투적으로 먹었을 텐데 그날은 아무런 식욕도 없었다. 

너무 끙끙 앓아서 며칠이나 학교를 못 갔다. 맞아서 학교도 못 갔다는 생각에 너무 분했다. 도둑질은 나쁜 거라지만 어린아이에게는 너무나 잔인한 대가였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나를 때리면서 아빠가 뱉었던 말은 ‘도둑질은 나쁜 짓이야’라는 훈계가 아니었다.

‘너 때문에 창피해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어’

‘왜 너 같은 것을 낳아서 내가 얼마나 동네 망신을 당하는지 모르겠네..’  

   

 이를 앙 다물고 있는 힘껏 나를 내리치는 모습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저주를 퍼부으며 나를 있는 힘껏 내리치는 아빠의 눈빛은 마치 먹잇감을 물어뜯는 이리처럼 이글이글 타올랐다. 

날렵한 채찍 소리와 버티기 위해 울부짖는 소리만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방 한구석에는 엄마와 동생이 웅크리고 앉아 물끄러미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짐승이 되어 자식을 내리치는 아빠와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꺼져가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왜 저렇게 쳐다보고 있을까? 동생만이라도 이 잔인한 광경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고통으로 울부짖던 나는 얼마나 소리를 치고 목놓아 울었는지 목이 잠겨 더 이상 신음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너무 지쳐서 아프다는 감각도 없어진 것만 같다. 고통에 잠식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던 찰나,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엄마의 혼잣말에 나는 크게 절망했다.     

“쯧쯧”     

어른들에 대한 불신, 원망과 좌절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것일까.     


‘세상에는 나쁜 어른들만 가득해’

‘세상 모든 어른들은 다 나빠’

이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 다 싫고 미웠다. 내가 태어난 사실조차 원망스러웠다. 

아빠 말처럼 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어떤 날은 어디서 밧줄을 구해왔는지 나를 장롱에 묶어놓고 죽일 거라고 한 적도 있었다. 뺨을 수없이 맞아서 코피가 난 적도 있다. 

내가 맞아서 학교를 못 가고 온몸에 피투성이, 멍투성이가 되어도 한 번도 막아준 적이 없는 엄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디 아프진 않은지 한 번도 물어봐 준 적 없는 엄마, 그리고 선생님, 친척들, 동네 어른들. 다 나쁘다. 

나를 때린 건 아빠 하나지만 나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한 건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다. 

내 상처를 보고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왜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까?

왜 아무도 많이 아플 거라고, 어린아이가 견디기 힘들 거라고 왜 이해해주지 않을까? 

어리고 약한 나에게 괜찮냐고, 아프진 않냐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왜 아무도 묻지 않을까? 

그저 단 한마디라도, 작은 관심이라도 가져주었더라면 어쩌면 마음의 상처는 그리 깊진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훌훌 털면 희미해지는 기억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몸에 난 상처를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진다

그때 그 힘들고 아픈 그 시절.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관심을 주었던 건 어리지만 순수했던 짝꿍뿐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만큼 여리고 작았던 아이.     

학대가 참 끔찍한 것은 어린아이들은 아무것도 자각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신고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커녕, 자신이 범죄에 노출되어 있고 보호를 받아야 할 피해자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심지어 가해자조차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니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내일은 엄마 아빠가 때리지 않길, 내일부터는 맞는 짓 안 하는 착한 어린이가 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 

참 가혹하게도 어른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저 외면했을 것이다. 

아이에게는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임을, 부모에게는 가해자임을 알려줘야 한다. 

피해자에게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가해자에게는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고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세상의 모든 ‘어른들’ 

그건 내 일이 아니라며, 남의 일에 끼어들이 싫다며 선뜻 도와주지 않는 세상의 '어른들' 

학대에 고통받고 아파하는 어린아이를 눈앞에 두고도 외면하는 세상의 모든 '어른들' 

그래서 내가 가장 먼저 배운 감정은 ‘불신’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상당히 오랜 시간 나를 끈질기게 지배하고 괴롭혔다. 

“불신을 불안을 낳고 불안은 불행을 낳는다 “ 

그리고 불행의 끝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니 상상하면 안 된다. 한 사람의 인생 전부를 갉아먹고 주변 사람들까지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가정폭력은 주변 사람들의 관심이 매우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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