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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율 Oct 22. 2022

난 이 세상에 쓸모없는 끔찍한 아이인가 봐.

 오늘은 첫 등교를 한 날이다. 매일 동네 골목길이나 개울가에서 뛰놀던 나에게 학교란 언제나 설레는 곳이었다. 처음 보는 오르간이 너무 신비로웠고 교문 앞 빼곡한 무궁화, 흔들거리는 그네, 교탁 위 굳건한 태극기 모두 다 신기하고 예뻤다. 무엇보다 난생처음 내 책상이 생겼다는 것이 너무 기뻤다. 장난기 많은 짝꿍이 나에게 먼저 말 걸어준 것도,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하는 것도 너무 신났다. 예쁘고 친절하신 담임선생님과 내 책상이 있는 학교에 매일 가고 싶어졌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께서 간단한 숙제를 하나 내주셨는데 혼자 하기 어려우니 부모님과 함께 해보라고 하셨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책과 노트를 펼쳤지만 아니나 다를까 하나도 기억나질 않는다. 마침 누워계신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말씀드렸지만 어쩐 일인지 엄마는 냉담하기만 하다.

“공부는 혼자 알아서 하는 거야 그러니 귀찮게 하지 마” 

그러고는 마저 낮잠을 주무셨다. 의기소침해진 나는 혼자 끙끙대다 결국은 숙제를 다 해가지 못했다. 내일은 숙제를 도와주시겠지. 

 다음날 집에 돌아오니 온 집안이 담배연기로 가득하다. 오늘도 일찍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와(어쩌면 일을 안 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몇 개비째 담배만 태우고 계신다. 무심한 표정으로 하교하는 나를 보는 둥 마는 둥 하신다. 담배연기 때문에 눈도 따갑고 기침도 난다. 하지만 훌쩍거리거나 마른기침소리가 아빠 귀에 거슬리기라도 하면 바로 손이 날아들 것이기에 꾹 참아야 한다.



 내일은 엄마가 시장에 가자고 한다. 늘 구경만 하는 것이지만 혹시라도 엄마 기분이 좋으면 머리핀이나 과자라도 하나 사줄지 모르니 잔뜩 기대됐다. 그런데 뜻밖에도 엄마가 처음으로 나에게 옷을 사주셨다. 위아래 짙은 녹색 투피스로 어깨에 퍼프가 들어가 있는 꽤 여성스러운 옷이었다. 5천 원도 안 하는 시장 옷이었지만 매일 사촌들 옷이나 모르는 동네 사람들 옷을 주워 입다가 처음으로 내가 고른 옷을 입어본 거라 너무 신이 났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자 문제가 생겼다. 

"내가 번 돈으로 감히 허락도 없이 애 옷을 사줘?"

아빠가 엄마를 쥐 잡듯이 잡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라면 옆에서 잔뜩 풀이 죽어 있을 텐데 그날은 새 옷에 너무 신이 나서 입이 귀에 걸려있었다. 그런 나를 향해 아빠는 웃는 게 꼴 보기 싫다며 고함을 치며 윽박질렀다. 

"그렇게 좋으면 그 옷 입고 당장 집에서 나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어린 마음에 안 나간다고 하면 옷을 벗으라고 할까 봐 겁이 나 바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맞는 것보다 옷을 뺏기는 게 더 무서웠다. 이 잠깐의 행복이 사라질까 봐, 다신 돌아오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이미 해 질 무렵이라 친구들은 다 집에 가버렸고 저녁도 못 먹어서 배도 무척 고프다. 친구 하나 없이 혼자서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 

엄마는 또 아빠에게 맞고 있는 걸까? 갑자기 너무 서러웠다. 

단지 처음 입어본 새 옷이 마음에 들어서 기분이 좋았을 뿐인데 신이 난 나를 보고 부모님은 왜 화를 내고 싸우는 걸까? 

나는 이 옷 한 벌조차 입으면 안 되는 아이일까? 웃어도 안 되는 아이일까? 

나는 기뻐하면 안 되는 아인가보다, 더 안 좋은 일이 일어나니까. 

너무 슬픈데 이상하게 눈물이 안 났다. 

울어버리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한 어린이가 될 것 같아서. 

그날부터였던 것 같다. 잘 웃지 않아서 화난 사람처럼 보였던 것이.     

아마도 난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끔찍한 아이인가 보다.     


 다음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마당에는 낯선 자전거들이 죽 늘어서 있다. 집에 누가 온 걸까? 

기대감에 방문을 활짝 열었지만 역시나 방안은 너구리 굴처럼 뿌연 담배연기로 가득했다. 여기저기 술병도 나뒹굴고 있었다. 방 안 가득 동네 아저씨들이 빙 둘러앉아 있었고 그 가운데 짙은 녹색 담요 위에서는 화투짝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척척 화투짝을 내리치는 경쾌한 소리와 돈이 오가는 묵직한 손들이 분주하고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담배꽁초와 술잔들로 방안은 발 디딜 틈 하나 없었다. 

오늘도 숙제는커녕 저녁조차 먹기 힘들 것 같다. 

배가 고파 부엌에 가보니 늘 그렇듯 찐 고구마와 라면뿐이다. 부족하면 찬밥이라도 말아먹어야 한다. 아빠는 오늘도 일을 하지 않으신 모양이다. 아마도 동네 아저씨들에게 화투 자리를 펴주고 푼돈을 챙기셨을 것이다. 아빠는 그 푼돈으로 노름을 하고 돈을 잃으면 열이 받아서, 돈을 따면 기분이 좋아서 술을 마시겠지. 자주 있는 일이다. 

 한 칸뿐인 방이 화투판이 되어버렸으니 이런 날은 부엌에서 쭈그려 앉아 겨우 밥을 먹어야 하고 숙제는 친구네 집에서 하거나 마당에다 돗자리를 펴고 해야 한다. 동생과 함께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집 바로 뒤에 지나다니는 기차를 구경하며 숙제를 했다. 그래도 동생이 있어,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도 친구들처럼 내 방에서 숙제도 하고 라디오도 듣고 싶은데. 

교실에 있는 반듯반듯한 내 책상이 문득 생각이 났다. 내일은 학교에 남아서 숙제를 하고 와야겠다. 

내 속도 모르고 아저씨들은 오늘도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술과 담배심부름을 시킨다. 안 하겠다고 하면 아빠가 윽박지르고 협박을 하는 통에 몇 번이나 동네슈퍼를 다녀와야 한다. 가끔 돈 땄다고 기분 좋아진 아저씨들이 수고했다고 몇 백 원씩 손에 쥐어주기도 하지만 그것도 나중에는 아빠가 다 빼앗아간다. 

마침 옆집으로 마실을 다녀온 엄마가 사과상자 하나를 힘겹게 들고 오셨다. 동네 과수원에서 썩은 사과를 떨이로 사 오셨단다. 썩은 부분만 도려내면 먹을만하다면서 바로 하나 깎아주셨다. 사과의 절반 이상이 잘려나갔지만 생각보다 먹을만했다. 매일 라면만 먹는 게 지겨운데 이렇게라도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게 좋았다. 늦은 밤이 되자 드디어 아저씨들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밖에서 한참을 기다리다 온 몸이 뻐근해진 우리는 난장판이 된 방을 치우기 바빴다. 오늘은 돈을 잃었는지 잔뜩 성이 난 아빠는 치우는 게 굼뜨다면서 엄마와 나를 번갈아 가면서 때리기 시작했다. 오늘 밤도 편히 잠들기는 힘들 것 같다.       

나는 어쩌다가 맞는 것이 일상이 되었을까?

     

 그날은 동생 생일이었는지 아침부터 미역국이었다. 그것도 소고기 미역국. 좋아하는 메뉴인 데다 소고기는 정말 구경하기 힘든 음식이라 보자마자 눈이 돌아갔다. 그런데 내가 코를 훌쩍거렸다는 이유로 숟가락을 들자마자 아빠의 거친 손이 날아들었다. 

아파서 눈물이 핑 도는데 미역국이 너무 맛있어서 숟가락을 멈출 수가 없었다. 미역국을 들이켜면서 맞았고 맞으면서도 미역국을 들이켰다. 너무 아파 울면서도 우걱우걱 미역국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더 먹고 싶었지만 눈치가 보여 도저히 더 달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난 도대체 왜 맞았을까? 

아빠보다 먼저 수저를 들지도 않았고 밥그릇을 엎지도 물컵을 쏟지도 않았는데. 

애들 밥상머리 교육을 못 시켰다는 이유로 엄마도 맞았다. 밥상을 엎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줄 알라며 아빠는 의기양양했다. 

이렇게 맛있는 미역국을 앞에 두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웃으며 식사해도 부족할 이 시간이, 

서로 감사하며 기뻐해도 모자랄 이 시간이 어쩌다 공포의 시간이 되었을까? 

그날 밤 나는 잠들기 전에 간절히 기도했다.      


내일은 제가 더 착한 아이가 되어서 맞지 않게 해 주세요.

저와 제 동생이 더 착한 아이가 되어서 엄마 아빠가 안 싸우게 해 주세요.     


그 기억이 얼마나 서러웠던지 어른이 되어서도 미역국만 보면 목이 메었다. 그래서 생일 날조차 그 좋아하는 미역국을 한동안 잘 먹지 못했다.

이상하게 아빠는 우리가 즐거워하거나 신나는 모습을 보기 싫어하시는 것 같다. 티브이를 보다 웃으면 그게 뭐가 재밌냐고 호통이었고 동생이랑 놀다가 신이 나 있으면 시끄러우니 잠을 자든 공부를 하든 조용히 하라고 화를 내신다. 

그래서 집에서는 잘 웃지 않는다. 일부러 화난 사람처럼 있으면 아빠가 화내는 일도 적었으니 편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데.. 

티브이 속 가족들도 매일 화기애애하던데 우리 집은 참 신기했다. 

 난 키가 커서 어떤 운동이든 잘했고 좋아했다. 그리고 방과 후에는 책 읽는 것을 참 좋아했다. 하지만 달리기 1등을 밥 먹듯이 해도 독후감을 잘 써서 상을 받아도 집에서는 자랑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부모님의 반응은 무심했으니까. 

내가 반에서 몇 등을 하는지 어떤 과목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 꿈이 뭔지 물으신 적도 없다. 

관심이 없으니 ‘공부 열심히 해라, 책 좀 읽어라’ 그 흔한 잔소리도 없었다. 알아서 좋아하는 과목을 공부했고 집에 가기 싫은 날에는 학교 도서실에 처박혀 좋아하는 책을 실컷 읽었다. 

내 비밀친구는 동생이었다. 학교에서 칭찬받거나 혼난 일은 동생에게 자랑하고 고자질했다. 동생이 없으면 매일 산길로 빙 돌아가면서 혼잣말로 나무나 길고양이들과 대화했다. 

하루는 미끄럼틀에서 놀다가 친구가 일부러 날 밀어서 상처가 크게 났는데 괜찮냐는 말은커녕, 

‘네가 잘못했으니 친구가 그랬겠지’ 라며 오히려 나를 나무랐다. 

내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셨고 공감해주지도 위로해주지도 않으셨다. 그래서 집에서는 말을 잘 안 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할 얘기도 하고 싶은 얘기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부모님과 어른들과 소통의 문을 닫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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