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유리구슬 같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빤히 본다고 해서 좋다고 똑같이 눈을 크게 뜨고 마주 보면 안 된다. 웃으며 시작된 눈 맞춤이 "한판 해보자는 거야?" 하면서 눈을 부라리는 절대 지지 않는 기싸움으로 비화될 수 있다. 무슨 말을 할 것 같은 깜빡임도 없는 눈. 그 눈을 감기는 방법은 내가 눈을 가늘게 뜨는 것이다. 실눈을 하고 몇 번을 깜빡이면 녀석도 같이 깜박여준다. 대화가 시작되었다. 내가 한번 너도 한번, 네가 가늘게 나도 가늘게. 대화란 이런 식이어야 마음이 오가는 법. 우리는 서로 짧고도 긴 대화를 하고 다시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각자의 일을 한다. 쑥스러운 듯 녀석은 자신의 온몸을 그루밍하고, 나는 몸을 씻는 녀석을 위해 못 본 척 눈길을 돌려준다.
나를 바라보며 큰 눈을 가늘게 뜬다. 고양이가 눈을 가늘게 뜨는 것은 상대에게 우호적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고양이의 실눈은 사랑한다는 말이다. 나도 따라서 눈을 살짝 감으며 작은 눈을 만든다. 그러면 고양이는 다시 눈을 크게 동글렸다가 가늘게 오므린다. 나도 그대로 흉내 낸다. 고양이를 마주 보며 마치 대화를 하듯 마음이 통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사람의 큰 눈이 고양이에게는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맞는 말인지 고양이는 사람이 자신의 편인지 아닌지 시험하는 것처럼 나 따라 하면 친구 해줄게 하는 표정으로 계속 눈을 크게 뜨다가 거의 눈을 감은 듯 작게 뜨다가를 반복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려고 한다.
고양이의 눈은 영화에 등장하는 화성인이나 UFO를 타고 다니는 우주인의 눈을 닮았다. 어떤 날은 눈동자 전체가 까맣게 보이고 어떤 날은 두껍고 어떤 날은 깨끗한 유리 깊숙한 안쪽에 가늘고 길쭉한 눈동자가 들어있다. 맑고 영롱한 고양이의 완벽한 눈은 대신에 눈병에 취약하다. 눈물에 젖어있고 눈곱도 자주 끼인다. 어떤 날은 우는 것처럼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결막염도 쉽게 걸린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대로 완전함은 언제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살아있는 지상의 눈이 아닌 것 같은 완벽한 눈은 어쩌다 한번 우연하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볼 수 있다.
투명하여 초록빛이 도는 영롱한 구슬 같은 눈이 깜박임도 없이 나를 본다. 그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가장 아름다운 몇 번 안 되는 찰나와 같은 순간들이 사람을 살게 하고 그런 순간들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며 우리는 산다. 숨을 쉬는 것처럼 아무것도 아니고 일상적이어서 때로는 바람에 너덜거리는 종이처럼 굴러가는 시간들을 사는 존재를 존재하도록 하게 하는 그 보석 같은 순간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그 순간이 전부가 되는 기적을 경험한다.
보통 때와 달리 가끔씩 뭔가에 자극받아 털끝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계속 발톱을 세우고 두 앞발을 휘두르며 권투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짜증이 제대로 났는지 화가 나 죽겠다는 투로 내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경고를 한다. 그러나 그런 모습도 내게는 사랑스러울 뿐. 만약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이 내게 이렇게 이유 없는 짜증을 내어도 여전히 지금처럼 사랑스러울까. 나는 사랑을 몰랐다. 내가 한 것은 사랑이 아니었나 보다. 이렇게 화가 난 고양이의 눈을 볼 때면 나는 언제나 가늘게 눈을 감는다. 나는 너를 좋아해. 하고 눈이 말한다. 그러면 회류도 동그란 눈을 옆으로 눌러 말한다. 나도 좋아해. 이 대화는 진실이다. 왜냐하면 이후에 회류는 화난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나의 손길을 받아준다. 앙칼지게 거부하던 나의 어루만짐은 눈대화를 하고 나면 짜증은 눈 녹듯 사라지고 이마를 쓰다듬으면 눈을 감고 내 손에 기댄다. 나는 너를 좋아해 이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해결되는 사랑이 사람은 왜 그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그 말 한마디를 못해서, 안 해서, 하고 싶지 않아서 사랑하지 못한다. 사랑의 대화는 말 이전에 벌써 눈이 다 해버렸기에 그 말이 필요없을 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신 안의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일까. 고양이의 눈 속에 내가 있다. 고양이가 간직한 나를 보고 나는 고양이와 대화할 수 있다. 서로의 눈 속에 자신이 비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눈 속에 자신으로 가득 차 있어 타인을 볼 수가 없다. 눈 속에 내가 없는 사람과 마음의 이야기는 말일뿐이다. 말이 마음이 되지 못하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그나마 있는 마음을 잃지 않는 길이다.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는 나를 하염없이 까만 눈으로 혼자 보고 있다. 원하는 것을 알아주지 않는 나를 원망하지도 않고 쳐다만 보는 까만 눈. 사랑은 그저 바라보는 것이라는 듯이. 내가 바라보기를 기다리며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나를 보고 있었을까. 눈이 마주친 나는 회류를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뜬다. 그제서야 고양이는 알았다는 듯 마음을 놓고 다른 곳을 본다. 마음이 통하고 나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