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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May 01. 2023

고양이의 잠

잠의 비법을 아는 고수



살면서 밤낮없이 일만 하고 편히  한 몸 누일 수도 없이 수고로운 일생을 보낸 사람은 죽어서 고양이로 태어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을 자기 위해 사는 것처럼 고양이는 온종일 자는 것이 일이다.  못 자서 한이 맺히지 않고서야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고양이에게 깨어있는 것은 잠이 안 올 때 할 수 없이 눈을 뜨고 있는 것일 뿐인 것 같다. 밤에는 당연히 자고 낮에도 꼼짝 않고 잔다. 처음 고양이를 집안으로 들이고는 고양이의 생태를 몰라 밤낮없이 자는 것이 몸에 안 좋을 것 같아서 낮에 일부러 안 재우려고 자는 고양이를 흔들어 깨우고 못 자게 하기도 하였다. 그랬더니 밖으로 나가 숨어서 자고 있었다.  어디에 있던 최적의 수면장소를 알고 있다. 조용하고, 온도가 적당하고, 약간의 바람도 불면 금상첨화. 주변에 위협이 될만한 것이 없는 장소라면 어디든 눈을 감는다.  푹신한 잠자리가 마음에 들면 온몸을 축 늘어뜨린 채 죽은 듯이 잔다. 지난겨울 전기장판 위에서 온몸이 뜨끈뜨끈 할 정도로 나른하게 몸을 지지며 거의 기절 수준의 잠만 잤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제일 먼저 올라간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자는 모습도 매번 다르다. 똑바로 앉아서 눈만 감고 기도하는지 조는지 몸을 흔들며 있기도 하고, 배를 보이며 길게 누워 다리를 꼬고 요염하게 자기도 하고,  똬리를 틀 듯 하루 한나절을 꼬박 웅크리고 앞다리를 베개처럼 배고 꼬리를 몸밑으로 넣고 동그랗게 몸을 말아 자기도 한다. 간혹 다 잤나 싶게 벌떡 일어설 때도 있는데 방향을 바꾸어 그대로 다시 눕는다. 그렇게 대여섯 시간을 누워있다.  자고 있을 때 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그 호흡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따라 같이 잠이 올 정도이다. 주변에서 공사를 하는 소리가 땅을 파고 탕탕탕 총소리를 내어도 들리지 않는지 듣고 싶지 않은 지 세상사 달관한 듯 개의치 않는다. 깨어있을 때는, 보이지도 않는 작은 벌레 움직이는 소리에도 바로 고개를 돌리고 눈을 번뜩이며 매복자세로 전투태세가 되면서 잘 때만은 모든 것을 잊은 듯  다른 생명이 된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다는 티베트의 속담대로 언제부터인가 걱정이 나를 먹여 살리며 걱정을 먹고 살아왔다. 걱정이 없으면 오히려 불안해질 지경에 이르렀을 때 가장 불안한 삶을 사는 고양이의 잠자는 모습은 내 걱정이 내 삶이 얼마나 욕심이었는지 보여주었다. 더 나은 내일, 더 좋은 선택을 위한 걱정이 현재를 잠식해도 충분한 가치가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깊은 잠에 빠진 고양이는 사람이 잠꼬대를 하는 것 같은 소리를 낸다. 자면서 얕은 신음소리를 내기도 하고 꿈꾸는 듯 음음 하는 사람소리를 낸다. 한 번은 한밤중에  자다가 사람의 숨소리를 듣고 누군가 옆에서 자는 줄 알고 화들짝 놀라서 깬 적이 있었는데 쌔근쌔근 자고 있는 고양이였다. 그렇게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는 잠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망상을 하며 다시 잠을 청하였다. 또 고양이는 갑자기 잠이 쏟아질 때 가르랑가르랑하는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는 사람이 얕게 코를 고는 소리와 비슷하다.  간혹 사람은 깊은 잠에 들어가기 전 경련처럼 다리나 몸을 떨기도 하는데 고양이도 그와 같은 미세한 경련을 하며 움찔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 것을 보면 사람과 유사한 잠의 패턴을 가지고 있는 고양이는 사람과 같은 꿈을 꾸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처럼 꿈속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고 가장 즐거웠던 일과 가장 슬펐던 일을 파노라마처럼 재생하고 있을 지도.  자면서 야릇한 소리를 내며 입가에는 미소를 띠기도 하는 고양이는 분명 행복한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길 위의 힘든 시간을 잊는 듯 편안하게 자는 고양이 옆에 나는 눕는다. 한 손을 고양이의 몸 위에 올리면 푹신한 털의 감촉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내 손이 오르락내리락하다가 나의 숨소리가 고양이의 호흡과 하나가 될 때 나는 고양이의 잠 속에 있다. 고양이는 자신의 깊은 잠을 내게 조금 나누어 주었다. 나도 금방 잠이 들었다.



다른 고양이도 그런지는 모르지만 회류는 자기 전에 먼저 잘 자기 위해 숨을 고르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의식처럼 한숨을 한차례 크게 쉬는데 마치 사람이 한숨을 쉬듯 가슴을 올렸다가 내리고는 눈을 감는다.  그 한숨이 사람의 숨 같아서 의외로 편안해 보였다. 그래서 잠이 잘 안 오던 어떤 불면의 밤, 가만히 누워 눈을 감고 고양이처럼 깊은 숨을 한번 크게 쉬었는데 신기하게도 잠이 솔솔 왔다. 잠에 대해서라면 고수인 고양이는 역시 이런 잠의 비법을 혼자만 알고 있었다. 



   


                      잘 때만 주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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