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아 May 04. 2023

여전히 길고양이

자유, 그렇게 사랑이 되고 있었다.



회류는 길고양이출신답게 사람에게 안기는 것을 하지 못한다.  보살펴주는 사람 바로 옆에서 잠들고 손바닥 위에 얼굴을 내려둘 수 있지만 온전히 몸을 맡기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작은 몸을 끌어당기면 넋을 빼는 꿀잠에도 벌떡 몸을 일으키기 일쑤다. 뭔가 심심해 보이거나 하는 일 없이 어슬렁거리고 매일 보는 집안을 여기저기 염탐하듯 뒤지고 다닐 때 한 번씩 회류의 몸을 들어 올리면 앵앵하며 두려움에 가득 찬 소리를 낸다. 사람의 가슴에 안기는 불안정한 상태는 경험하지 못한 공포이다. 그래도 가끔은 품에 안고 싶은데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집고양이가 되어도 길고양이다.  

소파나 침대나 예쁜 집보다 그냥 종이박스를 제일 좋아한다. 마트에서 배송이 오면 녀석의 집이 한채 늘었다. 너무 깊고 큰 박스는 바깥이 보이지 않기에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고 고개를 들면 언제든 주변을 볼 수 있는 평범한 박스를 좋아한다. 손잡이 구멍은 창문이다. 낮에는 주로 그 안에서 자기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 것처럼 멍 때리기도 하고 지나다니는 사람을 빼꼼히 쳐다보기도 하다가 그마저도 심심하면 발톱을 세워 박스 바닥을 긁으며 발톱을 갈기도 한다. 아무리 두꺼운 박스라도 몇 번의 발톱신공으로  금방 바닥이 너덜거려지고 이내 파쇄기에 들어갔다 온 것처럼 가루가 되게 하는 놀라운 내공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녀석은 너저분한 종이 부스러기에 아랑곳없이 뿌듯한 마음으로 그것을 깔고도 불편함이 없는듯하다. 박스라는 한정된 공간이기에 박스의 크기에 몸을 맞춘다. 어떤 박스는 자신의 몸보다 작아 좁은 네모 안에 몸을 구겨 넣고 머리를 내릴 곳이 없어 박스 구석에 머리를 처박거나 아예 박스 귀퉁이 밖으로 머리만 내놓을 때도 있다. 편하게 누웠을 때의 몸의 길이를 생각해 보면 터무니없이 불편한 자세임에 틀림없다. 그럴 때면 보고 있는 내가 온몸이 아파와 녀석의 몸을 이리저리 돌려주지만 역시 당연히 쓸데없는 짓이다. 육체와 정신이 분리될 수 없어 몸과 마음이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고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사람에 비하면 몸과 상관없이 상황에 적응하여 편한 마음이 될 수 있는 고양이가 한 차원 높은 생명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집 안으로 들인 길고양이는 집 밖으로 보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아무래도 사람과 고양이의 건강이나 위생상 집안에서 돌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인공모래를 바꿔주기도 하고 밭에 있는 진짜 흙까지 담아 오는 정성에도 불구하고 회류는 집안에서의 배변에 대해서만은 실패 인지 거부를 했고 '볼일은 밖에서'라는 고집을 꺽지 않았다.  동네가 인적이 없고 조용하다는 점과 차도 별로 다니지 않아 위험하지 않기도 했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을 차단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 우리는 언제든 회류가 원할 때마다 문을 열어주었다.  우리 집을 자신의 영역으로 인식한 고양이는 행동반경을 집 주변으로 정하고 머무른다. 때로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 날은 큰 걱정을 하고 온 동네를 뒤지지만 녀석은 어디선가 튀어나온다. 고양이가 오히려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햇살이 좋은 날은 집 지키는 개처럼 대문 앞에서 집을 보기도 한다. 어느 날은 오전에 나가서 한참을 안 들어와 온 가족이 총 출동해서 찾으면 갑자기 뛰어들어오는데 그럴 때는 마치 사춘기 아이가 잠시 가출을 했다가 '어디 나를 찾나 볼까?' 하며 가족들이 자신을 정말  사랑하는지 확인해 볼 심산으로 일부러 하루종일 꽁꽁 숨어서 심통을 부리는 것 같다.  또 어느 날은 반대로 내가 긴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어쩐 일로 집 문 앞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다.  자신은 하루종일 나다니면서 내가 좀 늦게 들어왔다고 왜 이렇게 늦었냐고 말하는 듯한 그 눈빛이 얄밉기만 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저를 버리고 간 것은 아닌가 염려하는 기다림의 눈빛이라는 것을. 집에 들어오지 않고 내 속을 태울 때는 언제고 녀석의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우리는 그렇게 사랑이 되고 있었다.


집 밖이라는 것이 풀밭이나 텃밭정도가 전부지만, 시멘트 바닥에 등을 비비기도 하면서 뒹굴고, 풀이파리를 씹어 먹기도 하고, 흙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기도 하기 때문에 출타를 끝내시고 들어오시면 재빨리 큰 물수건으로 한 번에 휙 닦아내는 기술이 필요하다. 물을 싫어하는 고양이는 외출이 아무리 좋아도 비 오는 날은 절대 나가지 않을 정도라 샤워는 언감생심이다. 그러나 고양이는 깨끗한 동물이라는 말대로 이런 날은 특별히 더 오래 그루밍을 하면서 몸을 핥는다.  몸을 구부리고 돌려가며 발톱 사이사이까지 닦는다. 혀가 닿지 않는 머리와 등줄기는  물수건으로 잘 닦아준다.  여기저기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니고 때로는 사냥을 하고 화초의 풀이파리를 씹어 먹기도 하고 햇볕 아래에서 일광욕을 하는 그런 고양이의 자유가 나의 짧은 수고와 귀찮음을 상쇄할  것이라는 나의 간편한 만족감이다.  또 그런 자유를 알고 있을 고양이를 가두어 두는 것과 안전한 영역을 제공하는 것이 비교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나는 고양이 예찬론자가 아니다.  평생 고양이를 한번 제대로 쓰다듬어 본 적도 없었던 나는 내 앞에서 눈을 감고 가르랑대는 행복의 소리를 들려주며 편안해하는 작은 생명을 보면서 더 많이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해 준 그 한 마리 고양이를 좋아할 따름이다. 회류는 나에게 어린 왕자의 장미처럼 특별해진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고양이와는 다른 고양이, 더 이상 고양이가 아닌 고양이가 되는 것이다. 아직도 내게 회류가 아닌 고양이는 여전히 고양이에 지나지 않아 경계한다. 사랑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 왔으므로. 



길고양이  

   

어느 날 문득 내 길 위에 선 길고양이

만날 약속 내 잊었던가

굽힘 없는 구슬 눈빛 원망보다 희원이 어려

안부를 묻는 옛사람 목소리     

그리운 사람 한 조각 

투명한 눈 아롱진 유리알 속에 묻고

길에 흘린 가슴속 눈물 타고

흘러온다     

밤서리 아침이슬 온몸에 묻히고

가난하고 지난했던 그 세월 그대로

발소리도 없이

날아온다     

시동이 걸리지 않는 엔진소리를 내며

눈을 감고 들판을 달리고 있다

마지막 숨을 몰아 내쉬고 있는 누군가의 

갈그랑거리는 소리 고양이와  

마주 본다

서로를 인코딩하는 중이다  

실눈으로 누르고 압축한  얼굴

아무도 없는 구석에 혼자 앉아 오래오래 풀어 본다     





이전 11화 산책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