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그렇게 사랑이 되고 있었다.
집 안으로 들인 길고양이는 집 밖으로 보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아무래도 사람과 고양이의 건강이나 위생상 집안에서 돌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인공모래를 바꿔주기도 하고 밭에 있는 진짜 흙까지 담아 오는 정성에도 불구하고 회류는 집안에서의 배변에 대해서만은 실패 인지 거부를 했고 '볼일은 밖에서'라는 고집을 꺽지 않았다. 동네가 인적이 없고 조용하다는 점과 차도 별로 다니지 않아 위험하지 않기도 했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을 차단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 우리는 언제든 회류가 원할 때마다 문을 열어주었다. 우리 집을 자신의 영역으로 인식한 고양이는 행동반경을 집 주변으로 정하고 머무른다. 때로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 날은 큰 걱정을 하고 온 동네를 뒤지지만 녀석은 어디선가 튀어나온다. 고양이가 오히려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햇살이 좋은 날은 집 지키는 개처럼 대문 앞에서 집을 보기도 한다. 어느 날은 오전에 나가서 한참을 안 들어와 온 가족이 총 출동해서 찾으면 갑자기 뛰어들어오는데 그럴 때는 마치 사춘기 아이가 잠시 가출을 했다가 '어디 나를 찾나 볼까?' 하며 가족들이 자신을 정말 사랑하는지 확인해 볼 심산으로 일부러 하루종일 꽁꽁 숨어서 심통을 부리는 것 같다. 또 어느 날은 반대로 내가 긴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어쩐 일로 집 문 앞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다. 자신은 하루종일 나다니면서 내가 좀 늦게 들어왔다고 왜 이렇게 늦었냐고 말하는 듯한 그 눈빛이 얄밉기만 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저를 버리고 간 것은 아닌가 염려하는 기다림의 눈빛이라는 것을. 집에 들어오지 않고 내 속을 태울 때는 언제고 녀석의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우리는 그렇게 사랑이 되고 있었다.
집 밖이라는 것이 풀밭이나 텃밭정도가 전부지만, 시멘트 바닥에 등을 비비기도 하면서 뒹굴고, 풀이파리를 씹어 먹기도 하고, 흙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기도 하기 때문에 출타를 끝내시고 들어오시면 재빨리 큰 물수건으로 한 번에 휙 닦아내는 기술이 필요하다. 물을 싫어하는 고양이는 외출이 아무리 좋아도 비 오는 날은 절대 나가지 않을 정도라 샤워는 언감생심이다. 그러나 고양이는 깨끗한 동물이라는 말대로 이런 날은 특별히 더 오래 그루밍을 하면서 몸을 핥는다. 몸을 구부리고 돌려가며 발톱 사이사이까지 닦는다. 혀가 닿지 않는 머리와 등줄기는 물수건으로 잘 닦아준다. 여기저기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니고 때로는 사냥을 하고 화초의 풀이파리를 씹어 먹기도 하고 햇볕 아래에서 일광욕을 하는 그런 고양이의 자유가 나의 짧은 수고와 귀찮음을 상쇄할 것이라는 나의 간편한 만족감이다. 또 그런 자유를 알고 있을 고양이를 가두어 두는 것과 안전한 영역을 제공하는 것이 비교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길고양이
어느 날 문득 내 길 위에 선 길고양이
만날 약속 내 잊었던가
굽힘 없는 구슬 눈빛 원망보다 희원이 어려
안부를 묻는 옛사람 목소리
그리운 사람 한 조각
투명한 눈 아롱진 유리알 속에 묻고
길에 흘린 가슴속 눈물 타고
흘러온다
밤서리 아침이슬 온몸에 묻히고
가난하고 지난했던 그 세월 그대로
발소리도 없이
날아온다
시동이 걸리지 않는 엔진소리를 내며
눈을 감고 들판을 달리고 있다
마지막 숨을 몰아 내쉬고 있는 누군가의
갈그랑거리는 소리 고양이와
마주 본다
서로를 인코딩하는 중이다
실눈으로 누르고 압축한 얼굴
아무도 없는 구석에 혼자 앉아 오래오래 풀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