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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Apr 18. 2023

영물

영혼을 본다



검은 고양이 네로는 사람에게 억울한 죽임을 당하고 복수를 실행한다. 여러 명의 사람이 네로의 원한으로 죽고 벽속에서 발견된 시체옆에서 죽었던 네로가 살아서 튀어나온다.  이 무시무시한 공포의 주인공, 고양이다.     

스산한 여름밤, 창밖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난다. 이런 야심한 밤에 누가 아기를 밖에 데리고 다니나 하면서 내 귀는 아기 울음소리를 뒤쫓는다. 알고 보니 발정기가 온 길고양이가 내는 소리다. 성대모사도 이 정도면 달인 수준이다. 짐승이 감히 사람의 소리를 내다니. 사람의 흉내를 내는 사악한 요물이 분명하다.  

          

고양이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괴롭히면 벌을 받을 것 같은 두려움이 든다. 그래서일까. 개와 달리 고양이는 사람의 미움을 산다. 개처럼 캉캉 짖지도 못하기에 인간의 잔혹함은 더 악랄해져 처참한 학대를 당하고 죽는 길고양이의 뉴스를 어렵지 않게 듣는다.      

고양이는 왜 이렇게 사람 흉내를 내고 사람의 미움을 받고 사람에게 복수를 하고 사람과 얽혀있는지 그 이유는 아마도 사람의 영혼 그 한 귀퉁이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슬람문화에서는 고양이는 기도하는 사람을 찾아온다거나 그에게 축복을 내리기 위해 나타난다고 믿는다고 한다.  기도하는 사람의 진심이나 하늘만 아는 간절함과 슬픔 같은 한 사람만의 아픔을 고양이는 느낄 수 있어서 그런 사람을 찾아간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다. 하루하루가 지나는 것이 그 사람과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두려웠고 또 가까워지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약이고 모든 것은 흘러가고 지나간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사랑에 대해서만은 시간은 만능해결사가 아니었다.  시간이 덧칠해질수록 그리움은 더 진해졌다. 모든 것이 다 사라지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람에게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아무도 모르는 그 마음, 나와 그 한 사람만이 아는 그 마음이 작게 작게 오그라들수록 그것은 더 커져만 갔다.  그런 내 영혼의 잔잔한 울림을 아주 멀리서 듣고 고양이가 나타났다.  생각지도 않은 맥락에서.  길고양이에게 요즘 말로 이른바 ‘간택’ 된 나는 길고양이가 나를 '선택' 하여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슬프고 긴 터널 같은 몇 번의 똑같은 봄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던  내 앞에 나의 간절한 마음과 말할 수 없는 영혼의 그 안 깊은 곳을 알고 있던 길고양이가 말없이 말을 걸기 위해 내게 온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새로 이사 간 집에는 제일 먼저 고양이를 들여보낸다는 말도 있다. 고양이가 그 집에 있는 나쁜 악귀를 쫓아내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을 고양이는 보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따라오는 길고양이는 삶의 의지나 욕구가 다른 고양이들보다 뛰어나서 더 영물이라는 말이 있다. 비참한 길 위의 삶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돌볼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영악하다고 해야 할까. 말은 통하지 않지만 말 그 이상의 무엇으로 고양이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낸다.  낯선 이를 처음에 빤히 볼 때 고양이는 그의 영혼을 스캔하듯 한참을 쳐다본다. 말하지 못하는, 어쩌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어떤 마음을 가진 사람이 고양이 앞에 있다면 고양이에게는 그 마음이 보여 그에게 다가가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이 가진 그 마음을 애써 잊으려 하고 일부러 떠올리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도 고양이는 이미 알고 있다. 숨겨진 그 마음을 들켰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고양이는 다가가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나의 길고양이 회류는 생존능력이 탁월한 것 같다. 돌이켜보면 결국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이루어내었으니 말이다.  마당냥이로 있을 때는 그 나름대로 좋았고, 집으로 들어오고 싶어 했는데 결국 들어왔고, 방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결국은 침대까지 차지했다. 하고 싶은 것은 어찌 되었던 했다. 시간은 걸렸지만. 그 뒤는 자신의 선택이다. 침대에 올라가 보고 싶었지만 길고양이였던 회류는 사람과 같이 자는 것을 편해하지 않았다.  두어 번인가 내 침대에서 웅크리고 같이 잤었는데 지금은 혼자 자는 것을 선택했다. 고양이처럼 살아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하고 싶었던 것을 다 해보지 못했고 아직도 하고 싶은 리스트를 실행 중이니 말이다.  부럽다, 너.






사노요코의 백만 번 산 고양이라는 책에는 죽어도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고양이 이야기가 나온다. 아무리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고양이는 사는 게 재미가 없고 지루하기만 하다. 언제든지 다시 살아날 수 있으니까 뭐든지 다시 하면 되니까 지금이 의미가 없던 고양이는 진심으로 사랑을 하고 다시는 태어나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다. 책 제목처럼 고양이는 실제로 살면서 9번 넘게 죽을 고비를 넘긴다고 한다. 길고양이의 이야기일 것이다.  교통사고, 추위, 배고픔, 질병등 죽을 이유들 속에서 죽음과 함께 살아있는 길고양이들은 그래서 더 사는 것에 진심이 될 수 있고 그 진심이 통하는 영혼의 울림을 알게 되는 것일까. 


무슨 생각을 하는 듯 먼 그곳을 바라보는 고양이, 또 어딘가에서 외로운 영혼의 간절함을 듣고 그를 쓸쓸히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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