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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공간: 분위기, 느낌의 커피

by doklip coffee



#1.커피향미와 공간의 분위기


아래 사진은 서울 연남동의 ‘커피리브레’와 이태원의 ‘하하우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애착하는 커피공간입니다. 사진처럼 두 커피공간은 서로 다른 느낌,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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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페들에서 우리는 특정한 분위기를 느낍니다. 그러나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느끼는 이 공간의 분위기, 오감(五感)으로 경험한 이 느낌을 구체적 언어로 설명하면 어색해 집니다. 우리가 느끼는 공간의 분위기는 언어를 초월하는 미학적 경험, 체험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분위기는 직관적 감각과 융합된 지각의 상태로서 의식됩니다. ‘분위기(氣分, Stimmung)’는 미학 용어입니다. 분위기는 마치 미적 경험에 따른 미적 감정처럼 커피공간의 내용, 형식, 정체 등이 사람들의 내부에서 환기되는 갖가지 상태를 의미합니다.


커피리브레는 지루한 일상을 탈주하려는 맥시멀리즘이 빼곡한 느낌의 커피공간입니다. 반면 이태원 하하우스의 이성적 미니멀리즘은 혼탁한 일상에서의 쉼(pause)을 제공하는 커피공간입니다. 물론 이러한 공간의 분위기, 카페 공간의 미학적 체험이란 사진이미지처럼 2차원의 평면에서는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커피공간의 완벽한 체험이란 길이(x), 너비(y), 깊이(z)가 존재하는 3차원의 실제 공간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남동 커피리브레에서의 한잔커피, 정성껏 내린 ‘에티오피아 코케’ 한잔을 상상해 보겠습니다. 이곳에서의 공간 체험, 커피향미의 경험을 상상해 보겠습니다. 커피리브레는 자기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코케 역시 고유한 대체불가의 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고유함은 커피리브레에서 하나가 됩니다. 공간의 분위기와 커피의 향미는 하나로 융합되어 체험, 경험됩니다.


또한 하하우스에서의 에티오피아 코케 한잔을 상상해 보겠습니다. 이 커피는 커피리브레에서의 그것과 동일합니다. 그러나 하하우스에서의 에티오피아 코케의 경험은 커피리브레에서의 그것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에티오피아 코케의 향미란 이 커피가 품은 대체불가의 향미와 함께 특정 공간의 분위기와 함께 융합되어 경험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최종 경험하는 커피향미란 ‘커피x공간’이라는 현상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커피향미란 상대적이며 관계적인 것입니다.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향미에 대한 공식은 아래 도표처럼 규정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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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러한 공식은 커피향미의 화학적이며 물리적 특성을 위한 것으로는 유효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절대적 특성이란 ‘커피의 경험’이라는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공간에서 분리된 독립된 실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경험하는 커피향미란 공간의 분위기와 융합된 것으로 공식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커피향미=커피x공간.


커피향미의 경험, 곧 커피와 공간에 대한 지각(知覺)이란 다양한 학습을 통해 구축된 개인의 세계관 또는 세계를 해석하려는 두뇌활동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두뇌활동은 우리의 오감을 통해 입력된 정보를 이해하고, 체계화하며, 수정하는 인간 고유의 활동입니다. 지각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 두뇌 신경계의 성숙함, 곧 다양한 경험과 학습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달, 구축된 것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라는 경구는 인간의 지각활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각이란 개인의 문화역사, 세계관, 정체성을 표출하는 과정입니다.


(커피x공간) 커피향미에 대한 지각이란 감각기관의 판단에 대한 의심과 비판을 전제한 두뇌활동입니다. 특히 맛과 향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본능적인 의심에서 출발합니다. 음식을 잘못 먹으면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비자) 존재는 언제나 자기방어적이며 개인적이고 까다롭고 섬세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미각과 후각으로 경험하는 것 이상의 욕망, 커피x공간이 만들어 내는 커피향미를 요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에게 커피향미란 미각, 후각, 촉각으로 느끼는 경험이며 이 것이 커피의 본질이자 전부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에 공간과 인간은 없습니다. 식품공학자 최낙언의 저서 『감각·착각·환각』에 따르면 이러한 방식으로는 커피향미를 30%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는 “혀와 코에서 느끼는 감각은 그저 맛의 시작일 뿐이고, 감각과 일치하는 풍경을 뇌에서 그릴 때 우리는 비로소 감각의 의미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커피향미는 “커피30%x(공간+@)70%”의 공식도 가능하게 됩니다. 이태원의 하하우스, 연남동의 커피리브레에서 느끼는 커피향미, 예를 들어 에티오피아 코케 한잔의 향미의 70%는 커피공간 하하우스와 커피리브레의 분위기와 함께 다양한 것들(+@)에서 오는 것이며 나머지 30%는 에티오피아 코케가 품고 있는 대체불가의 향미라는 뜻입니다.


공간(空間)과 공간의 분위기(雰圍氣)가 커피향미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주장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닙니다. 공간 자체를 활용하고 상품화하는 공간마케팅(space marketing)은 이미 흔한 전략입니다. “커피향미=커피30%x(공간+@)70%”와 같은 공식은 글로벌 대기업들에 의해 오래 전부터 전유,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커피보다 인테리어에 더 투자합니다. 스타벅스가 좋은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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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대공간과 관계공간


“공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향미란 무엇인가”처럼 본질적이며 답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학자와 철학자들은 공간을 크게 절대적 공간(absolute space), 관계적 공간(relational space)으로 나눠 설명합니다. 전자는 마치 우주처럼 변하지 않고 독립되어 있으며 그 어떤 것이라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 같은 공간을 의미합니다. 반면 후자는 그 공간 안에 찬 내용에 의해 규정되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인공적으로 구축된 (건축물) 공간들은 대부분 절대적인 것입니다. 오래된 교회, 왕궁부터 현재의 관공서, 학교, 도시의 빌딩과 아파트는 모두 절대적 공간의 대표적인 사례들입니다. 이러한 절대공간의 특징은 권위적이거나 기하학적 합리성과 효율성, 곧 공간의 경제성을 반영한 기계적인 공간형태를 보여 줍니다.


반면 관계적 공간 대부분은 반권위적이거나 비효율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대신 특정한 실존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공간입니다. 관계적인 공간은 그곳에 채워지는 다양한 콘텐츠에 의해 공간의 서사가 완성되고 규정되는 장소(place)와 같은 공간(space)을 의미합니다. 도시의 카페와 같은 공간, 곧 커피와 공간이 만나서 커피공간이 되는 것과 같은 메커니즘입니다.


물론 모든 카페가 관계적 공간은 아닙니다. 커피와 공간이 만난다고 모두 관계적 공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이야기의 공간과 향미 좋은 커피가 만나야 좋은 관계적 공간이 형성됩니다. 사실 도시에는 좋은 커피공간보다 나쁜 커피공간이 더 많습니다. 자본의 욕망이 과도하게 투영된 공간, 반복적으로 답습되는 게으른 클리셰(cliché)의 공간, 타인의 감성을 고려하지 않는 기계적인 공간, 미학적 상상력이 전무한 공간이 많습니다. 좋은 관계적 커피공간이란 특정한 분위기가 존재해야 하며, 미학적으로 충격적이며 새롭고, 특정 정체의 느낌이 공유가능하며, 문화사회적이며, 탄력적인 동시에 체험 가능한 공간을 말합니다. 좋은 공간(good place)은 좋은 커피한잔 만들기처럼 어려운 일입니다.


사실 관계적 공간이란 최근에야 수용된 새로운 생각입니다. 대부분의 공간은 절대적 개념으로 이해되고, 구축되었습니다. 절대적 공간을 기획하고 점유한 사람들은 왕, 교회, 귀족처럼 보수적이며 권위적인 사람들입니다. 절대주의자들은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이들에 의한 도시계획의 목적은 사람들의 감시와 관리였습니다. 동시대 건축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공간의 폭력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절대적 공간이란 관공서, 학교, 아파트, 도시에 솟은 기하학적 빌딩의 공간처럼 인간을 훈육하거나 대상화하려는 일방적인 공간을 의미합니다.


반면 관계주의자들은 “사람들이 공간을 만든다”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공간에 대한 상반된 입장은 철학적 실천이 됩니다. 절대주의 디자이너들은 공간 자체를 위해, 혹은 권력과 자본의 이해를 반영하여 공간을 설계, 디자인합니다. 반면 관계주의자들은 사람들이라는 실존을 위한 공간을 기획, 설계, 실행합니다. 이태원의 하하우스, 연남동의 커피리브레는 좋은 관계적 공간의 대표적인 사례이며 실존의 공간입니다. 실존의 공간이란 나(몸 body)의 경험으로 규정되는 공간, 나의 정체(identity)가 확인되며 이러한 정체성이 인정받고 이 정체로 타인과의 소통 가능한 공간을 의미합니다.




#3.커피향미, 커피공간의 지각, 개인의 지향성


관계주의적 관점에서 커피공간은 커피라는 콘텐츠로 완성된 공간입니다. 따라서 “커피공간=공간x커피”라는 공식이 가능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감각·착각·환각』의 주장을 수용하면 “커피향미=공간x커피”라는 공식은 적절하며 합리적인 공식입니다. 그렇다면 커피공간의 체험, 커피향미의 경험이란 ‘공간x커피’에 대한 체험과 경험을 의미하며 이때 공간과 커피에 대한 체험, 경험은 구분되거나 분리되지 않습니다.


아래 도표는 특정 개인이 세계(커피공간, 커피향미)를 체험하고 경험하는 방식을 요약한 것입니다. 이 도표는 현상학적 공간체험을 설명한 프랑스의 철학자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의 저서 『지각의 현상학』의 주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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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의 현상학』에 따르면 지각(知覺)은 외부세계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말합니다. 지각이란 커피공간, 혹은 커피향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인데 이때 지각은 오감 전체의 총체적 활동을 의미합니다. 커피공간, 커피향미에 대한 체험과 경험은 개별적인 감각기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몸 전체의 총체적인 활동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거꾸로 말하면 커피공간, 커피향미란 우리 몸의 총체적 활동, 곧 우리 몸의 개입에 의해 완성됩니다. 이 말은 커피공간, 커피향미란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이며 관계적인 것입니다. 『지각의 현상학』에 근거하면 이를 현상학적 커피공간, 현상학적 커피향미로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커피공간의 분위기, 커피의 향미는 결국 우리 몸의 개입에 의해 만들어지고 완성된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이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특정 커피공간, 커피향미에서 의미가 발생한다는 것은 우리의 지향성(intentionality)에 의해서 만들어진 삶의 체험이 축적된 결과라는 것입니다.


『지각의 현상학』에서 공간이란 단순히 물리적 좌표나 기하학적 구조가 아닌, 인간의 체험과 의식이 구성하는 살아 있는 현상적 공간입니다. 현상학적 공간이란 개인의 지향에 의해 완성되는 주관적 느낌의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개인은 자기를 느끼며 확인하며 안도합니다. 이곳에서 개인은 시간을 정지시키며 또 다른 세계와 관계 맺기 시작합니다. 다음 사진들은 다양한 존재들의 정체를 반영하는 다양한 분위기의 커피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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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속 공간들은 모두 커피공간입니다. 사진을 보는 순간부터 네 개 커피공간의 다른 감각적 분위기가 지각되어 인지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분위기’는 그곳에 존재했던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헤석) 생성된 것입니다. 누구한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나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모든 텍스트는 독자에의해 완성되는 것입니다. 개인들의 ‘지향성(指向性)’에 의한 세계관, 정체성, 미학적 판단에 따른 공간의 정체가 완성된 것입니다.


커피공간, 커피향미를 완성시키는 것은 우리의 (뜻) 지향성입니다. 주지하듯이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입니다. 인간에게 무념, 무상의 시간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늘 무엇을 욕망하며 의식은 그것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지각의 현상학』은 이렇게 특정 방향으로 열려 있는 개인의 의식, 욕망을 ‘지향성’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이 지향성으로 자기 존재를 확인합니다.


위 네 개 커피공간의 선명한 조형언어는 특정 개인의 (취향) 지향성과 조우할 때 그 기쁨을 최대치로 증가시킵니다. 이러한 기쁨이란 문화적 상상의 힘이며 이런 커피공간을 기획, 설계한 사람들의 배려입니다. 관계적 커피공간에서 개인은 자기 정체를 확인하며 익명의 다른 존재들과 특별한 정체를 공유하고 위로 받습니다. 공간의 느낌, 분위기의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커피의 역사는 이러한 공간과 어우러지는 커피의 미덕을 커피의 향기라고 불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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