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길 Nov 08. 2022

김장철, 아내는 안녕하십니까?

- 아내의 충전법

아내는 김장철이면 친정에 가곤 한다

뻔뻔한 김치통에

장모님 힘

꾹, 담아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발효를 시작한다.


- 김진길의 시 '아내의 충전법' 전문[화석 지대](지혜, 2016)



 아내가 슈퍼우먼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퇴근을 하면 집안의 서랍장, 장롱 등 방안 배치가 모두 바뀌어서 남의 집에 온 줄 착각하곤 했었기 때문이다.


 저 무거운 가구들을 혼자서 어떻게 옮겼던 것일까. 아내는 직업군인인 남편을 따라 전. 후방의 낯선 곳을 옮겨 다니며 결혼생활을 했다. 문만 열면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는 겹겹의 산들.  마치 다중의 벽 속에 갇힌 듯한 아내의 신혼은 모든 것이 불비한 오지에서 누구 하나 의지할 데 없이 갓난아이를 돌보며 나날이 지쳐갔 남편 얼굴 보는 것이 유일한 위안거리였지만 매일 야근과 당직으로 피로에 찌든 남편을 붙잡고 하소연하는 것도 어려웠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때 아내에겐 우울감마저 찾아왔었다고 했다. 


 그래서  아내는 아이를 재워놓고 가끔씩 저 묵직한 가구들과 씨름을 했었는데 그러고 나면 숨통이 좀 트였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해법을 찾지 못할 때면 친정에 다녀왔다. 최전방에서 장모님이 계신 포항까지는 거리가 멀어서 자주 갈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기껏해야 연례행사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그래도 친정에 다녀오면 한동안 안정감을 찾곤 했다. 조그마한 반찬통에 김치를 담아오곤 했는데 아내는 장모님의 응원이 담긴 그 힘을 아끼고 아끼면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해냈던 것이다. 돌아보면 참 고마운 김치통이다.  


 지금은 많이 바뀌어가고 있지만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에서 어머니와 아내는 늘 억울해도, 힘들어도 입을 꾹 다물고 속으로 삭이며 살아왔다. 유일한 위안이 남편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사랑의 표현인데... 그 쉬운 것을 잘 못해 불화가 일고 파탄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내와의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그동안 못한 것을 만회하기 위해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자처한다. 이따금 아내로부터 인정을 받기라도 하면 춤추는 고래가 된다.


 곧 김장철이다. 온 가족이 매일 식탁에서 마주할 주된 반찬을 만들고 저장하는 일이 집집마다 펼쳐진다. 김장은 가족 공동체를 위한 일이다. 시어머니와 집안 여인들이 다 모여서 할 수도 있고, 독립적으로 할 수도 있다. 속된 말로 '눈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외려 시어머니 앞에서 더 분주히 움직이는 남편이어야 한다. 그러면 아내의 사랑이 잘 발효되어 평생 무르익을 것이다.

이전 09화 자화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